강물도, 사람도, 생명도 죽어간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살고, 이 강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강 주변엔 온갖 과실들이 끊이지 않고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에서 흘러나온 까닭이다.” (겔 47:9~12)
나는 어릴 때 친구들과 모래로 댐 쌓기 놀이를 하곤 했다. 모래를 가져다가 움푹 들어간 곳은 메우고 구불진 곳은 곧게 펴서 수로를 만든다. 이쪽 댐에서 저쪽 댐까지 얼마나 잘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물이 잘 흘러 갈 수 있도록 눈에 확 띄지 않을 만큼의 경사로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친구들과 한참을 노닥거리며 작업을 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그 중 꼭 한명 정도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댐 위쪽에 멋스러운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수로에 멋진 장식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조금 짖굳은 녀석들은 그 수로 안쪽에 땅강아지나 풍뎅이 같은 벌레를 집어넣고 잔인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이러저러한 과정 끝에 완성된 댐 쌓기 놀이의 하이라이트는 만들어 놓은 수로에 주전자로 물을 붓는 과정이다. 주전자의 물을 온통 쏟아 부을 때, 비로서 그 동안의 노력은 빛을 발한다. 수로를 통해 흘러가는 물이 댐 주변에 모여들어 차고 넘치는 웅덩이가 된다. 물론 그 수로 안에 있던 땅강아지와 풍뎅이는 수장되고 만다. 하지만 이 놀이의 진짜 핵심은 다 만들어 놓은 그 댐을 폭파시키는데 있다. 모래로 만든 댐을 툭하고 짓이기면 가득 모아진 물이 사방으로 넘쳐흘러 그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의 순진함이 사실 얼마나 잔인했던가!
지난 4월 4일 부활절 오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연합예배>는 팔당의 한 작은 공원에서 진행되었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은 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삶으로 떠안고 있는 이들에게 향해야 한다!”라고 외치며, 부활절 오후에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 예배드리기 시작한지가 벌써 5년째, 매해 부활절이 다가오면 부활의 기쁨보다 온갖 고난에 처한 이들의 얼굴이 먼저 떠오르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자 부활의 의미 그 자체가 아닐까.
올해 팔당으로 진정한 부활을 꿈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향한 이유는 바로 ‘강’ 때문이다. 아니 그 강이 품고 있는 ‘생명’ 때문이며, 그 생명들이 죽어가는 탄식의 소리 때문이다. 소위 정부의 ‘4대강 죽이기 사업’ 때문에 이리저리 난도질당하는 강줄기! ‘강’은 단순히 흐르는 물이 아니라 생명을 품은 거대한 모태이며, 창조세계의 혈관임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계급사회이자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강’은 그저 유용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한반도 대운하’ 따위를 운운하다가 국민들의 반대로 공약을 철회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살리기’라는 허울 좋은 구호로 다시금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살린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죽이는 무서운 거래, 이는 자본 앞에 모든 가치를 무릎 꿇리고 죽음을 향해 눈감고 달려가는 미친 기차의 모습이다. 또한 내가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저질렀던 그 잔인했던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과정과 결과를 뻔히 내다볼 수 있기에 나는 이 정부의 순진한 구호 밑에 은폐된 잔인함에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우리의 역사적 경험상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개발’이라는 것은 필시 누군가의 탄식과 피눈물을 동반하는 과정일진대, 하물며 수많은 생명을 품은 ‘강’을 제 맘대로 개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팔당은 이러한 생명파괴의 현상이 가장 축약되어있는 상징적 공간이다. 팔당에는 지금 대규모 유기농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는 지난 1973년 팔당댐 건설로 인해 농토의 대부분이 유실되었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작은 공간을 생명농법으로 지켜온 농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서울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온갖 개발정책에 끊임없이 시달려오면서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생명’의 가치로 일구어 온 이들은 지금 또다시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유기농지를 자전거 도로 및 대규모 위락시설로 개발한다며 이미 2009년 4월, 이곳에 살고 있는 농민들에게 이주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이 곳 팔당, 그 심오한 생명의 물줄기를 그저 한낱 사람들의 눈요기 거리로 만들고자하는 정부의 얼토당토 않는 요구 앞에서 팔당의 주민들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부의 정책과 폭력에 맞서 싸우는 중에 있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강을 지키고 생명의 가치를 살아내자’라는 말을 할 때, 어떤 이들은 배부른 소리로 폄하하기도 하는데, 실상 이 곳 팔당 주민들의 상황을 볼 때 강을 죽이는 것, 또 생명을 죽이는 것은 바로 사람을 죽이는 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팔당 농민들의 신음소리는 비단 그들만의 흐느낌이 아니다. 소리쳐 외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뭍 생명들의 소리, 창조질서의 혈관인 흘러가는 강물이 막혀버림으로써 숨 막히는 정적의 소리, 이는 곧 지금도 세상을 창조하고 계시지만 또 다시 어리석게 쌓여만 가는 바벨탑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시는 하느님의 탄식 소리이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강물도, 사람도, 그 안의 모든 생명이 죽어가는 소리를...
글. 이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