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3주일 및 평신도주일로 지키며 공동설교로 진행하였습니다. 공동설교 해주신 최근규 청년께 감사드립니다.
2. 다음주일 오후활동으로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3. 공동식사 후 소설읽기 동아리 모임이 열립니다. 조라 닐 허스톤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이미선 역)으로 함께 나눕니다.
4. 수요성서대학이 수요일 오전 11시에 열립니다. 이번 주는 봄학기 일곱 번째 강의로 진행됩니다. 많은 참석 바랍니다.
5. 수요성서대학 교재인 '예수, 선생으로 만나다'(한인철 저, 연세대출판부)가 출간되었습니다. 교재가 필요하신 분은 신청해 주십시오.
6. 강화북지방 일벗교회와 도시-농촌 교회 간 결연을 맺고 6월 중에 연합예배를 드리고자 하니 일정을 논의해 주십시오.
7. 건강 상의 여려움 겪는 교우와 교우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목회서신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작년 이맘때쯤 출판한 책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는 성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저자인 존 도미닉 크로산은 이 책에서 성서의 모든 내용이 다 하나님 혹은 예수님의 의지이고 뜻이라고 볼 수 없으며, 하나님은 급진적인 '분배의 정의'를 원하시지만 그것이 점차 문명의 정상성이라는 '보복의 정의'에 의해 뒤집혔다고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을 원하시지만 세상은 소위 문명이라는 것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와 규율에 따라 사랑을 보복으로 뒤바꿔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세상이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크로산에 따르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폭력을 거부하고 가부장제에 따른 여성차별, 노예제도에 따른 계급차별, 위계질서에 따른 인종차별을 반대하셨지만, 예수운동이 종교화되고 당대 최고의 문명이라는 로마문화권으로 흡수되면서 로마의 기존 가치관, 즉 가부장적 성차별, 종과 자유인의 계급차별, 혈연 문화적 인종차별에 의해 뒤집히고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서에 있는 진정한 가르침과 그것을 뒤집어엎은 인간의 문명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고 학자들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차별적인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르네상스(문예부흥) 이후 인간의 이성은 눈부신 진보를 이루었고 과학의 발달은 무명(無明)의 영역을 개명(開明)시켰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명이 여전히 미래의 희망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왜냐하면 문명은 재산, 권력, 인기, 성별, 계급 혹은 계층, 학벌, 인종 등에 의한 줄 세우기와 차별을 '문명적'인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봅니다. 예수의 분배적 정의를 따르는지 문명의 보복적 정의를 따르는지, 우리가 잘난 문명인이 되기 원하는지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지!
■ 좋은만남 이모저모

“심방을 마칩니다”
5월 한 달 동안 열심히 교우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유동숙 집사님댁에 심방했습니다. 고남곤 권사님, 오호숙 권사님 내외는 수요성서대학을 마치고 참석자들에게 점심식사를 잘 대접하시면서 심방을 받으셨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심장에 응해주셔서 담임목사가 교우 가정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아울러 매번 심방 때마다 귀한 음식들로 섬겨 주신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미처 심방을 받지 못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조만간 지역별로 속회 형식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청년들도 전혀 심방하지 못하였습니다만 역시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만나서 식사자리라도 갖도록 하겠습니다. 목회에 협조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심방에서 나눈 기도의 제목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관심 갖겠습니다.
“평화산책의 사랑노래 미니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우리교회 강경숙 집사님, 안상호 청년, 채보란 청년, 이관택 목사님(엔지니어로 참여)이 참여하는 시민합창단 평화산책의 첫번째 미니콘서트 'Liebeslieder(사랑노래)'가 6월 2일(목) 저녁, 서대문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빌딩 이제홀에서 20여명의 단원들과 60여명의 관객들, 스페셜 게스트 길가는 밴드의 장현호님 등이 함께 한 가운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냈습니다.
SNS를 통해 보니 우리교회의 단원들은 낮 시간 동안 직장에서 매우 험난한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공연에 참석하신 것 같았고 교우들도 이런저런 사정들 때문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방 목사도 한국기독교연구소 회의와 겹치는 바람에…). 그러나 모두가 사랑과 평화의 노래로 하나가 되는 뜻 깊고 은혜 넓은 자리였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노래로 희망을 전하는 시민합창단 평화산책에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얼마전 가깝게 지내는 강화도의 이필완 목사님 댁에 방문하였다가 부근 일벗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서정훈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서 목사님은 일찍부터 농촌목회 운동에 참여하시며 강화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하고 그 농산물을 가공하여 두부, 콩나물, 장 묵 등을 생산하는 사회적기업 콩세알을 운영, 지역사회를 위한 선행에도 앞장 서고 계십니다. 서 목사님은 도시와 농촌 간 건강한 교류와 연대를 고민하시던 차에 저를 만나 우리 교회와 연합예배라도 한 번 드리면서 교류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셔서 6월 중에 먼저 우리가 방문하면 어떨까 생각하는 중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교회와 사회 | "구경꾼이 되지 맙시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구의역’-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이 분주히 오가는 공간.
최근 사람들의 시선이 이 분주했던 공간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강남역 화장실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 그리고 지난주에 구의역 승강장에서 발생한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사고사’는 출퇴근 지하철 풍경처럼 각자의 삶에 쫓겨 그저 제갈 길로 걸어가기 바빴던 한국사회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였다. 현재 추모를 위한 꽃들과 추모문구가 적힌 종이는 강남역과 구의역 승강장의 한켠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고, TV 뉴스와 신문도 희생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한국사회의 시계가 안타까운 두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그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모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주목할 할 것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숙연해 지자 우리 모두의 시선도 달라졌는데 ‘두 죽음’을 단지 ‘타인의 불행’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묻지마 살인’을 ‘여성혐오’의 문제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가 사고당한 노동자의 재해’를 ‘살인적인 비정규직 현실’의 문제로 인식하며 변화를 촉구하는 사회적 움직임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어찌 보면 ‘세월호 참사’와 ‘헬조선’의 현실 등 수많은 불의와 억울한 현실을 경험했던 우리의 집단적 기억이 본능적으로 발걸음과 시선을 이곳에 머물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구경꾼의 발걸음과 시선처럼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또 다시 제갈 길로 바쁘게 걸어가는 풍경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에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은 타인의 아픔(예수의 고난)을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그 아픔을 기억하고 새로운 부활을 일구어나가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 작금의 안타까운 죽음을 향해 우리의 ‘발걸음과 시선’을 집중하고 기도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변화’의 물꼬를 트는 일에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엄청난 일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동안 게을렀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타인의 아픔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발걸음을 더욱 조심스럽게, 시선은 더욱 또렷하게 하여 단지 구경꾼으로 남지 않은 일을 고민해보자. 타인의 아픔을 ‘구경’하는 것만큼 악마적인 일도 없다.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다른 교회에 행사가 있어 초청을 받은 목사를 따라간 사모가 교인들 틈에 함께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남편 목사가 그 행사의 설교자로 초청을 받아 사모가 함께 간 것이었다.
남편 목사의 설교가 끝나고, 예배도 모두 끝이 났다.사모는 그 날 남편의 설교에 만족했다.
안내를 하던 그 교회의 집사가 사람들 틈에 섞여 나오는 사모를 발견하고는 못 보던 새 얼굴인지라, 얼른 다가와서 친절하게 말했다.
“다음 주일에도 꼭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주일 설교가 늘 저렇게 시시하다고 생각지 말아 주세요. 오늘 설교하신 목사님은 다른 교회에서 오신 목사님이니까요.”
내 편의 것은 커 보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보면 늘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커보이고
자기 잘못은 늘 변명꺼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합리적인 근거보다는
그것과 관계된 사람이 내 편이냐 아니냐 하는
감정적인 이유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무슨 말을 했느냐보다 누가 그 말을 했느냐가
더 신뢰를 주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보다는
“네 말은 맞는 데 네가 싫기 때문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내리는 결정이 더 많기에
역사의 진보는 더딜 수 밖에 없습니다.
통찰력은 주관적인 감정을 최대한 제거했을 때 오는 지혜입니다.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성서상식 | 성서의 다양한 문학적 유형
문학에는 시, 수필(에세이), 논설문 설명문 등등 다양한 유형, 장르가 있습니다. 또 성격에 따라 다양한 양식을 차용하는데 예를 들어 시만 하더라도 내용상 서정시, 서사시, 극시로 나뉘고 형식상 자유시, 산문시, 정형시로 나뉩니다. 성서에도 이런 다양한 내용과 유형의 글들이 실려있습니다. 성서에는 율법서(법전)와 시가서, 역사서, 예언서, 복음서 등등이 다양하게 있고 또 각 권 역시 설명문, 시, 연설문, 기행문 등 다양한 문학적 양식에 따라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의 섭리와 가르침,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려는 목적에 따라 적절한 형태로 구성 및 편집돼 있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또 열아홉 살 젊은이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중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방관하며 이땅의 젊은 노동자들을 그저 기계처럼 값싸게 강도 높게 부려먹으려는 탐욕을 심판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