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8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2. 다음주일 오후에 종교영화 동아리 모임으로 '이웃집에 신이 산다(자코 반 도마엘 감독)'를 감상하고 감상평을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3. 수요성서대학이 13일(수) 오전 11시에 봄학기 마지막 강의로 진행되며 종강축하를 하겠습니다.
4. 성서대학에 참여하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계절학기를 개설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석 부탁드립니다.
7월 22(금)~23일(토) 저녁 8시 / 24일(주일) 오후 2시
5.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는 8월 1(월)~2일(화)에 진행합니다.
6. 청소년들은 전국예수살기가 8월 1(월)~3일(수)에 천안 아힘나평화학교에서 개최하는 청소년수련회에 참가하겠습니다.
7. 공동식사 후 소설읽기 동아리모임이 '좁은문'(앙드레지드)으로 함께 나눕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8. 이덕환 청년이 지난 주 중국 인민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여행 중인 장혁청년을 기억하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9. 7월에 생일을 맞으신 김형휘 성도님(14일, 음6/11), 생일을 축하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 목회서신
아무리 목사이고 아무리 신앙인이라지만 도지히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서 멱살잡이를 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혼자말이라도 소심한 욕설 한 마디 뱉지 않으면 안 풀리는 그런 경우입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보거나 그런 행위로 인해서 불편함을 겪게 되는 일 때문입니다.
엊그제도 승용차를 타고 나가 일을 보고 오는데 큰 길에서 들어오는 길목을 인터넷 공사하러 온 듯한 SUV가 떡하니 막아놓고 있어서 몇 분을 기다렸습니다. 조금 앞에 혹은 조금 뒤에 세워놓으면 될 것을 자기 나름에는 금방 가서 일 보고 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뒤 트렁크의 해치까지 활짝 열어 놓은 채였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 차가 경차라서 다행히 앞쪽으로 간신히 들어갈 공간이 있어서 곧 들어오기는 했지만 제 머리 속에는 그 차주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끓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양심이라는 게 있는 사람인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 역시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양심 없어 보이는 일을 종종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저도 뜻하지 않은 시비에 휘말리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크고 작은 분쟁들, 어쩌면 한낱 작은 소동이나 에피소드로 끝날 법한 일들임에도 쓸 데 없이 커져버리는 그런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인정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보편적인 양심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있지만 타인에게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은 종종 자신은 좋은 사람, 그래서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만한 존재이지만 타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그릇된 선입견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의 오류가 너무나 자주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사랑받을만한 존재이지만 타인, 특히 비신자나 타종교인들은 벌 받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비난과 저주를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동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야 그냥 시끄러운 말싸움으로 끝나겠지만 국가 혹은 민족 단위에서 벌어진다면 분쟁, 테러, 전쟁, IS, 인종차별 등등의 단어로 설명되는 현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나만 옳고 타인은 틀리다는 생각이야말로 가장 교만하고 비신앙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지난 주일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우선 세상에 태어나서 좋은만남교회에 첫 선을 보인 박차오름 아기가 엄마 임수현 전도사님과 함께 온 것이 가장 반갑습니다. 차오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을 와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처음 만나서 무척 반갑습니다. 부디 차오름이 살아가는 인생이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하심으로 든든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의 최고학벌(?)인 이인건 청년도 대전에서 학업에 열중하다가 방학을 맞아 교회에 예배하러 오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학기까지 다 마치고 다음 학기부터 졸업논문을 쓴다고 합니다. 논문을 쓰고 난 후에도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다는데 교우 여러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여름행사 일정을 확정합니다”
올 여름에는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딱 맞춰 임수현 전도사님이 구원투수로 등장하셨네요. 도움을 주실 분이 있을까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올해에도 작년에 함께 교회학교를 해준 전도사님들, 사모님들이 올해도 힘을 실어주시기로 하였습니다. 8월 1일과 2일에 열립니다. 감사하며 잘 부탁드립니다.
청소년들은 전국예수살기에서 준비한 청소년 수련회에 참석하고자 합니다. 수련회는 천안 아힘나평화학교에서 8월 1~3일에 '예수에게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는 주제로 50명의 청소년이 함께 만들어가는 수련회로 강연과 활동 프로그램, 밴드의 작은 콘서트까지 다양한 순서로 만들어 진다고 합니다. 문제는 장년 여름행사네요. 고민고민 중입니다. F-_-ㅋ
■ 이관택 목사의 교회와 사회 “생명과 평화를 향한 요구”
지난 목요일 강원도 춘천에 다녀왔다. 267차를 맞이하는 ‘강원생명평화기도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강원도에는 벌써 여러해 전부터 자본과 정권의 무차별적인 개발 사업이 전 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홍천 골프장 건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가리왕산 파괴, 삼척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이어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및 관광단지 조성사업까지.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천은 곳곳이 파헤쳐지고, 갈아엎어지며 황폐해져가고 있다.
이런 천인공로할 일에 반대하며, 창조질서의 ‘생명’과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자리가 바로 ‘강원생명평화기도회’이다. 매주 목요일 4시 강원도청 앞에서 진행하는 이 기도회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개신교 목사, 성공회 신부, 가톨릭 수녀 등 종교인들과 노동운동가, 환경운동가, 무차별 개발로 인해 피해를 당한 주민 등 시민들이 함께 모여 외치고, 기도하고, 토론하고,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지난 목요일 기도회는 ‘267차’였는데, 일주일에 한 번 진행하는 기도회가 ‘267차’를 맞이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원도의 생태자연과 시민의 민주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이 운동을 이끌어 가시는 ‘강원기독교교회협의회’ 박성율 목사님께서는 최근에도 계속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하신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골프장 사업과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사업을 주구장창 반대하는 이 분을 자본과 정권이 가만두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위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써 당신과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수의 사람들이 돈에 대한 무저항적 탐욕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정부와 지자체는 수 만년을 지켜온 이 땅의 산천을 단지 소수 재벌의 돈벌이 수단으로 하나씩 하나씩 민영화시키고 있다. 감히 어떻게 설악산 대청봉 근방에 고급호텔을 짓겠다는 발상을 입 밖에 꺼내고, 수많은 인력과 재원을 동원하여 실제적으로 그 일을 추진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비단 생태계 파괴의 문제만도 아니다. 강원도 골프장을 짓기 위해 정부는 수많은 주택가를 철거하고, 지역주민의 땅을 헐값으로 빼앗아 개발사업자에게 넘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유로 수조원에 달한 빚을 지고, 그것을 지역주민들에게 떠넘기려하고 있다. 결국 소수의 자본가와 고위공무원들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있는 현대판 귀족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에너지 산업에 대한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발표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필수불가결한 생존수단인 ‘에너지’가 소수 재벌의 돈벌이 사업으로 넘어가는 것이 마치 ‘상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요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신앙인으로써 이 ‘맘몬’이라는 우상숭배의 풍조가 가득한 세상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고, 힘없는 자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키는 이 불의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기도를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꼭 강원도에서만 생명과 평화의 기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 터, 먼저 당신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생명과 평화를 향한 요구가 이어져야 한다.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미국 몬타나 주의 ‘세븐 일레븐’ 체인본부에서 서비스를 감독하는 감독관이 나와서 체인점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추운 겨울 눈바람이 흩날리는 날은 손님이 별로 없게 마련이다.
그런데 아주 산마루에 접해 있는 체인점에는 의외로 손님이 많았다.
감독관이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로베르트’라는 명찰을 하고 판매대에 앉아서 돈을 받는 자매가 친절하고 상냥하게 사람들을 맞아 주고 있었다.
감독관은 역시 서비스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몇 사람들이 왔다가 나간 후에 노인이 들어왔다.
행색이 매우 초라해 보이는 노인은 매장을 빙빙 돌더니 바나나 하나를 샀다.
그리고 노인은 사람들이 다 나가기를 기다려서 판매대에 와서는 바나나를 올려놓았다.
직원은 노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이름을 부르면서 여러 가지 개인 생활을 물어보고 바나나 하나를 잘 포장해 주었다.
그리고 밖에까지 나와서 ‘힘내서 사시라’고 격려하면서 옷도 만져주고 씩 웃으면서 ‘내일 또 오시라’고 인사했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맞아, 저 노인은 바나나를 사러 온 것이 아니야.
저 노인은 사랑을 사러 온 것이지.’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달변의 설교에 취해보려고 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목사의 착각입니다.
분명 교인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THE BOOK : 남기평 목사가 강추하는 한 권의 책
자유의 보존 : 사회사적 관점에서 본 십계명의 주제
프랑크 크뤼제만 지음
이지영 옮김
크리스천헤럴드
1999년 03월 30일 출간
성서는 텍스트입니다. 텍스트, 즉 글자로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단어와 단어의 연결, 문장과 문장의 연결로 된 텍스트는 독자에게는 오해와 오독을 충분히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러면, 맥락이 중요하게 됩니다. 한 문단 더 나아가 한 책은 문맥과 맥락이 중요하게 되지요. 그런데 혹자들은 ‘무오설’을 지지합니다.
이 또한 엄밀하게 따지면, 해석입니다. 글자 그대로를 '자신의 믿음과 아무런 해석을 하지 않겠다'라는 다소 의아한 해석의 방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펴볼 책, 『자유의 보존』은 바로, 충분한 의도와 관점을 가지고 십계명을 해석합니다. 그 의도는 바로 “사회사”의 관점입니다.
성서의 역사 순으로,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십계명의 필요성을 갖습니다. 거칠게 표현자면, 광야생활을 기본적인 규율을 통해, 통제가 필요했기에, 십계명을 만들었음을 우리는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크뤼제만의 『자유의 보존』에서는 십계명의 기본정신은 자유이며, 모든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헌법의 개념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석합니다. 십계명 또한 포로기 말 문서로, 신명기 저자들이 많이 관여한 계명입니다. 따라서 사회사적으로 볼 때, 포로기 말의 이스라엘 공동체의 사회상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가 여기서 하나의 실제적인,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근거를 갖는다는 것이다. (50쪽)
십계명에 해당되는 이들은, 자유농민 그리고 법적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자유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회생 불가능한 처지에 떨어지기 일보직전인 상태에서 십계명이 등장합니다. 마지막까지 자유를 지키고 싶은 이들의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은 이 계명들이 보편적으로 효력을 갖는 것임을 뚜렷이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80쪽)
■ 성서상식 | (모세)오경의 네 자료층
오경을 흔히 모세오경이라고들 하니까 모세라는 한 인물에 의해서 작성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오경은 모세가 쓴 것도 아니고 한 사람(집단)이 쓴 것도 아닙니다. 오경에는 총 네 개의 자료층들이 있습니다. 야훼스트계 전승(Y전승)은 하느님을 지칭하는데 '야훼'라는 적으나 엘로힘계 전승(E전승)은 하느님을 '엘로힘'이라는 이름으로 부름으로 구별이 됩니다. 신명기계 전승(D전승)은 계약 관계에 기반을 둔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심판과 축복의 관점이 도드라지며 제사장계 전승(P전승)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교육하고자 했던 관심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한미가 한반도에 싸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하였고 동아시아 각국은 긴장과 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안보와 무관하고 미국의 패권전략에만 이익이 되며 평화가 아니라 위기와 갈등만 야기하는 싸드를 이 땅에서 물리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