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6.08.07 00:22

2016년 8월 7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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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2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2.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3. 교회학교 여름성경학교와 청소년 수련회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애써주신 분들과 후원해주신 분들,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 장년부 공동휴가 및 수련회는 이번주 토요일(13일) 아침 7시에 강화도 볼음도로 출발합니다. 강화도 외포리에서 아침 9시 배로 입도하여 14일 오후 3시 배를 타고 나오는 1박2일 일정입니다. 참가비는 1인당 3만원(청소년 2만원)입니다. 신청해 주십시오.

5. "사드배치반대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광복절 연합기도회"가 8월 14일(주일) 오후 3시, 광화문KT 앞에서 열립니다. 공동휴가에 참석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주일예배로 기도회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6. 8월 마지막주일(28일) 오후 안산세월호분향소에서 우리교회가 주관하여 기도회를 합니다. 


■ 목회서신

지난 주에는 여름성경학교를 하였습니다. 매년 우리교회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참 좋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감신대대학원 원우회장인 박장훈 학생과의 좋은 만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진지한 소망과 더불어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장훈군이 교회정치에 대해서 질문을 하더군요. 그는 교회가 바른 길을 가도록 교회 안에서도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평소 소신에 따라 제가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현대인은 정치적 동물(Homo Politicus)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의사표현을 명확하게 하든 하지 않든 어떤 정치적인 입장에 자의든 타의든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너무 정치를 못하니 물러나라'고 생각하더라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찬성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입장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리교회의 중요한 규정은 원로급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총회에서 결정됩니다. 감리교회의 10년 후는 미래는 지금 3-40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3-40대의 목회자와 평신도들에게 미래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불합리한 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그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지금 목소리를 내야 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해주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정치도 마찬가지이고요.

구세대는 하나님이 독재자이시며 독재방식이 교회에 맞는다고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신앙의 모습이 그 시대를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라고 봅니다. 독재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도 독재자라고 생각하지만 민주주의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야말로 백성의 주권을 옹호하신다고 확신합니다. 무엇이 맞는 지 모릅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장성한 자녀는 부모로부터 자유의 권리를 위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좀더 정치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위한 정치적 그리스도인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20160807-504.jpg “지난 주일의 정전 깜짝쇼 @_@;;”

지난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데 정전이 됐습니다. 당황하지 않고! 복구를 한 후 예배를 시작하였는데 입례송을 부르자마자 다시 정전이 됐습니다. 우리교회 예배는 프로젝트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전이 되면 찬송가 한 곡도 제대로 부를 수가 없지요. 서둘러 1층 사랑방으로 자리를 옮겨 예배를 하였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입장에서는 시간도 늦어져서 순서도 뛰어넘으며 서두르다 보니 설교할 때 말도 빨라지고 등골에서는 식은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만 교우들은 새로운 느낌이라며 오히려 좋아하시네요.

새삼스레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기에 의존하는 우리 삶의 한계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새삼스러우면서도 가장 큰 발견은 우리 교우들의 낙관주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은총의 낙관주의! 비록 식은 땀을 한 바가지나 흘렸지만 여러분의 낙관주의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20160807-501.jpg “교회학교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20160807-502.jpg

어린이 여름성경학교와 청소년 수련회를 아무 탈없이 즐겁게 마쳤습니다. 1일에 청소년들을 천안 수련회 장소로 데려다주고 오느라고 성경학교를 제대로 돕지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오셔서 진행해 주셔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2일에는 예배당에서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임정희 집사님 댁으로 이동하여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김형휘 성도님이 조그만 간이풀을 설치해주시고 물도 받아 주셔서 어린이들이 신들린 듯이 놀았습니다. 저녁은 임정희 집사님 댁에서 훈제 갈비를 잘 요리해 주셔서 선생님들과 어린이들이 맛나게 먹었습니다. 3일은 청소년 수련회가 마치는 날이라 다시 천안으로 갔습니다. 예상대로 청소년들이 수련회를 썩 잘 즐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표정이 밝았습니다. 그래도 얼마 안 돼는 청소년들이 나름대로 2박3일을 보내면서 더욱 우정이 돈독해진 것 같았습니다. 잘 해준 청소년들이 기특해서 예일여고 앞 햄버거 집에서 햄버거 하나씩 사먹고 헤어졌습니다.

이번 여름행사에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기도와 물질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경학교를 위해서 도움 주신 목사님, 전도사님, 사모님, 신학생들과 수련회에서 진행해주신 예수살기 교역자들, 오가는 길에 간식을 지원해주신 교우들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



■ 교회와 문화 

히브리 노예들에게 필요했던 노래 (4) -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 - | 이관택 목사


파리코뮌 :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의 시작(계속)

이렇듯 ‘파리코뮌’은 노동자 민중의 사회주의 자치정부로서 이전에는 상상치 못했던 급진적이고 민주적이며 민중적인 사회를 구현하려고 무던히 노력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상가와 혁명가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정부의 모델로 남아있다. 일례로 동시대 생존해있던 위대한 사상가 칼 마르크스는 같은 해(1871)에 저술한 그의 저서 <프랑스 내전>에서 ‘파리코뮌’에 대하여 ‘미래적 이상사회의 정치체제’라고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본가 계급의 억압적 통치체제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민주적 통치체제로 인류역사에 처음 등장한 정부”

   

 <인터내셔널가>의 가사를 작사한 외젠 포티에는 코뮌 평의회 의원으로 선발된 80명 중 한 명이었다. 의상디자이너이자 시인이었던 포티에는 처음부터 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그가 꿈꾸던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비참하게 무너졌는데, 혁명정부에 반대하는 보수반동 지배세력에 의해 수만 명이 학살당하며 ‘파리코뮌’이 실패한 것이다. 1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가장 이상적인 신화로 남아있는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는 단지 72일(1871년 3월18일에서 5월28일까지)만에 수많은 사람의 피울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학살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살아남은 포티에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가 혁명의 어느 시점에 <인터내셔널가>의 가사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가사에는 파리코뮌의 정신과 처절하게 유린당하고, 무참히 학살당한 노동자 민중의 꿈이 담겨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후 수많은 혁명가들이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사에 맞는 곡이 없어서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서 불렀고, 1888년 피에르 드제이테가 작곡을 하여 지금의 <인터내셔널가>가 완성되었다.  


<인터내셔널가>가 끊임없이 소환당하는 현실

 ‘파리코뮌’의 정신과 노동자 민중의 피가 서려있는 <인터내셔널가>는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다시 등장하였다. 마치 비행기 조종사들이 긴급 상황이 되면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외치는 것처럼 이 혁명과 투쟁의 노래는 새로운 세상이 절실한 노동자 민중에 의해 계속해서 소환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 블라디미르 레닌은 직접 <인터내셔널가>의 가사를 러시아어로 번안하여, 소련의 공식국가로 사용하였다.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 정부(파리코뮌)의 틈바구니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결국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나라의 공식국가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상징이다. 하지만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도래했다고 하여 노동자 민중에게 ‘신세계’가 펼쳐진 것은 아니다. 

(다음 주에 계속 이어집니다)


■ 한자락 詩20160807-503.jpg

 비스듬히                    | 정현종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


생명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란다

곧은 신작로보다는 

굽이돌아가는 길이 정깊다


수직으로 내리 꽂은 나무보다는

몸을 비틀며 비스듬히 자란 나무가

아름답다


시인은 

기대어 사는 존재들을 본다

서로를 바쳐주는 존재

기대어 사는 것들의 일상이 곱다

[지리산]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모르는 곳으로 옮겨 가기 「영적 발돋움」

안전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옮겨 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그 '안전한 곳'이 우리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못하고, '모르는 곳'이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누리는 진정한 안전을 약속한다 해도 그렇다. 우리는 몸에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우리가 잡고 있는 것 너머에 계시는 분께 손을 내밀수록 자신의 나약함을 알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비록 환영幻影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불완전한 삶으로 이끈다 해도 사랑에 굴복하는 것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자신을 통제한다는 착각을 버리고 하느님께 손을 내미는 것은 그만큼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표시다. 하지만 하느님께 손을 내밀면 모든 아픔과 괴로움에서 해방되리라고 믿는 것 또한 착각이다. 오히려 우리가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갈 때도 많다. 예수님은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사랑은 고통 속에서 순수해짐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기에 기도는 달콤하고 쉬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의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방편인 기도는 우리한테서 아픔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괴롭게 한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 사랑이 곧 괴로워하시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요,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하늘 자비가 감싸는 곳으로 들어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기도가 우리 중심에서 나올수록 더 많은 사랑과 아픔, 더 많은 빛과 어둠, 더 많은 은혜와 죄, 하느님과 인간에 대해 더 많을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중심으로 내려가 하느님께 손을 내밀수록 홀로가 홀로에게, 깊이가 깊이에게, 가슴이 가슴에게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아픔을 발견하는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집 떠나기「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오랫동안 나는 “내 이름을 위하여 네 아버지, 어머니, 형제, 누이들을 떠나라.”는 예수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이 말씀이 가족을 떠나 결혼하지 않고 수도원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선교사가 되어 먼 나라로 가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들한테서 격려와 영감을 받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 나이를 먹어가면서 ‘떠나라’는 말에 더 깊은 뜻이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우리의 정서생활이 부모·형제·누이들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때때로 그 영향이 너무 커서, 성년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정서적으로 묶인 사람들을 본다. 최근에 나는 여전히 아버지가 바뀌기를, 그래서 좀 더 친절한 아버지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나를 보았다 또한 많은 친구가 어린 시절 가족관계에서 생겨난 분노·앙심·환멸 같은 감정의 족쇄에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부모와 떨어져 산 지 오래되고, 심지어 부모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한테서 학대받은 희생자라고 생각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픔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이런 뜻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누이들을 ‘떠나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참으로 새롭다. 우리는 과연 ‘주님의 초대에 선뜻 응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과거에 얽힌 정서적 족쇄에서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는가? 그럴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정서적·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먼저 이 물음과 씨름해야 한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한국사회의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재판관이 법을 어기고 군인들은 방산비리를 저지르며 공무원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리는데 부정청탁을 방지하자는 김영란법에는 딴지를 겁니다. 부정부패와 비리가 판치는 이 나라를 깨끗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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