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1일 주보

by 좋은만남 posted Aug 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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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4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2. 지난 주 공동휴가에 총 11명이 참석하였고 일벗교회 김정택 목사님이 동행하여 안내해주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3. 다음주일 (28일) 오후 5시 안산세월호분향소에서 우리교회가 주관하여 기도회를 합니다. 3시에 교회에서 출발하겠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십시오.
4. 임정희 집사님이 골절상으로 병원에 입원중이십니다. 쾌유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5. 이관택 목사님이 처가 식구들과 해외여행 중이십니다. 즐겁고 안전한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 목회서신
지난주에 같이 신학대학교에 다녔던 동역자들을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네 명의 목사와 한 명의 감리교회 본부 직원이 모여 옛날이야기도 하고 현재 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본부의 사회선교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 외에 목사들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서 기관목회를 하는 친구, 목회를 하면서 연구소 일을 병행하는 친구, 목회를 하면서 예배당 리모델링 공사를 하러 다니는 친구, 그리고 저였습니다. 다들 나름대로 교회와 사회 모두에 관심을 갖고 진지하게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종종 일 때문에라도 마주치는 사람들이었지만 오랜만에 허리띠 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분위기는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돈이 장악한 감리교회의 정치판 이야기며 사회적 흐름과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기독교계의 보수적인 분위기, 성장에 한계를 맞아 존립 자체에 위기를 맞게 될 교회, 직장에서의 가부장적 위계질서,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퇴행 등등 어느 것 하나 희망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각자가 처한 개인과 교회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노후에 대한 최소한의 준비도 하지 못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현실은 그저 한숨만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다섯 명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새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웃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만큼 보이는 곳에 그가 서있었고 몇 걸음 앞에는 또 다른 그가  서있었으며 내 뒤에 있는 그는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비록 불안하긴 하지만 넘어지지 않고 서서 앞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서로를 보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큰 위로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는 일이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비우고 덜어내며 손잡고 도우면서 사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잠간만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의 예수님께서 저 앞에서 우뚝 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또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고 오늘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여러 장애물들을 꿋꿋이 이겨내며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이루며 살아갈 때, 바로 거기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20160821-10.jpg “공동휴가를 잘 다녀왔습니다”
2016년 공동휴가를 8월 13, 14일 양일간 강화군 볼음도로 다녀왔습니다. 우선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지 못한 것을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목회적 기술이 부족한 저의 과오를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년에는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알찬 공동휴가 계획을 세워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3일 오전 아홉시 배를 타고 들어가기로 해서 서둘러 선착장에 갔지만 배에 싣고 탈 수 있는 인원과 차량 수가 이미 매진이 됐습니다. 할 수 없이 차 안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오후 1시 배를 타려고 기다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락도 없이 일벗교회 김정택 목사님이 우리를 안내해주시겠다고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덕분에 선착장 부근 돈대 구경도 하고 잘 아시는 횟집에서 시원하게 기다리면서 점심식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1시 배를 타고 한시간 반을 가니 볼음도에 도착하였습니다. 정말 조용한… 상업시설도 거의 없는… 에어컨을 한 대도 볼 수 없었던 그런 섬마을이었습니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갯벌체험도 하면서 조개도 잡고 망둥이 낚시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가장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쉬운 것은 북녘이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800년을 살아온 볼음도 은행나무 밑에서 평화통일예배를 드리고자 하였으나 혹시라도 뭍으로 나가는 배가 전날처럼 만석이 되어 나가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봐 서둘러 선착장으로 나가 줄서서 기다리기로 하여 그냥 숙소에서 예배한 것입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김정택 목사님이 부탁드리지도 않았는데 동행해주셔서 많은 도움을 주신 것입니다. 또 김 목사님이 호형호제하시는 볼음도 환경농업인 오형단 선생님도 숙소 소개, 체험지 안내, 망둥이 낚시 안내를 해주셔서 더욱 알찬 휴가가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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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110.jpg “세월호 기도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지난 금요일(19일) 저녁 7시, 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의 주관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개신교 기도회에 교역자와 교우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세월호, 위험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기도회에서 박성중 목사님이 기도 순서를 맡으시기도 하였습니다. 진광수 목사님(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이 누가복음 12장 1~7절의 말씀으로 '감춘 것은 드러나고 숨긴 것은 알려질 것이다'라는 설교를 해주셨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보장하라며 단식 중인 서희정 조사관님의 현장의 소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회 감독회장에 출마한 목원대 민주동문회장 허원배 목사님이 기도회 축도를 해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감독회장 출마자로서는 쉽지 않은 행보였을 텐데 말입니다. 0416,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

■ 교회와 사회  ‘더위’를 나누는 사람들 | 이관택 목사
올여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더위를 경험하였습니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으로 온도계의 수은주는 올림픽 신기록을 갱신 하듯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만큼 사람들의 얼굴표정도, 삶의 모습도 찌뿌려졌던 여름날이었습니다. ‘무더위’의 우리말 어원은 ‘물더위’라고 합니다. 밤이고 낮이고 마치 습식 사우나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저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더위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서글픈 것은 환경이 혹독해질수록 인간의 관심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망망대해에 떨궈진 채 제 한 몸의 생존을 위해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삭막한 ‘물더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였고, 무엇을 망각하였나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연신 스마트폰의 날씨 어플을 들여다보며 온도를 체크하고, 온몸을 감싸는 고온다습한 무기력과 맞서 싸우는 동안에도 이 땅의 고난 받는 이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에서 힘겨운 삶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특별히 지붕 없는 길거리에서 지옥 같은 뜨거움에 노출된 채 밤잠을 뒤척이고 있을 노숙인, 폭염기간에도 자본의 횡포에 맞선 투쟁을 멈출 수 없는 해고노동자, 그리고 단원고 교실존치와 시작조차 못하고 강제로 끝나버린 특조위의 활동을 이어가기 위하여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무더위 속에서 문득 옛 풍경 하나를 떠올려봅니다.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의 하나로 '더위팔기'를 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아침에 해가 뜨기 전에 이웃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가라" 또는 "내 더위, 내 더위, 먼디 더위" 하면 그 사람이 나의 더위를 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위를 팔면 그해 여름에는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지요? 따라서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친구가 나의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내가 먼저 "내 더위 사가라" 하고 응수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더위를 팔려고 했던 그 사람이 오히려 나의 더위를 사가게 되는 거죠. 
 ‘더위팔기’를 떠올려보면서 당시의 한여름 더위가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정도였으면 정초부터 이런 놀이를 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이 놀이가 가지고 있는 잔혹함에 잔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자기 한 몸 평안하기 위하여 이웃에게 자기 몫의 더위까지 덤탱이로 뒤집어씌우겠다는 발상이 어찌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요? 그저 놀이로 치부되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더위팔기’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누군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열악하고, 불의한 현실로 내몰리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목도하지 않습니까. 
 지금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과 특조위 위원들이 특조위 활동 연장과 교실존치,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며 릴레이로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삼복더위에 곡기를 끊어가며,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가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진실을 외면하고, 제 한 몸 편하고자 ‘더위’를 팔아버린 사람들 때문에 덤탱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전히 세월호의 진실을 요구하고, 정의를 위해 다른 사람의 ‘더위’를 기꺼이 스스로 사는 사람들. 결국 이들의 몸짓이 지옥 같은 이 땅의 무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아가 이들이 떠안은 ‘더위’를 함께 나누는 것이야 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율법학교에 한 청년이 찾아와 
스스로 랍비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랑했다.
랍비는 찾아온 학생에게 물었다.
“스스로 갖추었다고 하는 그 자격이 무엇이냐?”
학생은 의기 양양하게 대답했다.
“저는 제 몸을 단련해서 맨 땅 위에서도 잠을 잘 수 있고,
들판의 풀을 먹을 수 있으며,
날마다 채찍으로 세 번씩 제 몸을 때리며 훈련하고 있습니다.”
랍비가 마당 곁에 매여 있는 나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귀를 보아라.
저 나귀는 맨땅 위에서 자며,
들판의 풀을 먹고,
날마다 세 번 이상 채찍으로 맞는다.
지금까지 너는 나귀가 될 자격을 갖춘 것이지
랍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이 아니다.”

당나귀의 자격을 가지고 랍비가 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요행과 편법, 위장과 편승을 통하여 감언이설로 차지한 자리를 
마치 완숙한 행정과 영적인 능력을 갖추어 이룬듯이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뽑은 조직은
당나귀 조직입니다.
원숭이를 지도자로 뽑아
곤욕을 치루고 있는 어떤 조직에 비견할만 하지요.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자화상 「노인의 영광은 백발」
정직하고 겁 없는 자화상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운을 선물하는 화가들만큼 이웃을 도보는 모습을 훌륭하게 연출하는 사람도 드물다. 렘브란트는 ‘표현기법의 연구를 위한 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인간성이라는 매개체로 영성을 추구하고자’ 예순세 폭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는 인간 존재의 신비를 뚫고 들어가려면 자신의 어두운 지하실과 밝은 거실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렘브란트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임을 알았다.
노년에 이르러 그는 인간 경험의 핵심에 접근했고, 거기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비참함ㅁ을 인식하고 ‘용기와 새로운 젊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병적인 자기도취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이들을 섬기기 위해 끊임없이 자화상을 그리는 작업 없이는 결코 이웃을 돌볼 수 없다.
이웃을 돌보려면 자신의 상처 받기 쉬운 나약함을 치료제로 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늙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핀다는 것은 먼저 자신의 늙어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바로 이 늙어가는 자신한테서 노인들에게 앞날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리도록 이끄는 힘이 솟아난다.

영적 독서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영적 독서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의미를 깨닫는 데 있다. 인간의 삶은 의미가 없을 때 곧장 퇴보한다. 인간은 살기를 바랄 뿐 아니라 자기가 왜 사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오래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위해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믿을 때 우리는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사람이 살아 있으려면 음식과 집과 우정이 필요하다. 그러고 삶의 의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의 의미는 생각하지 않은 채 허둥거리며 살고 있는가? 그들은 많은 일로 분주하고 언제나 일에 쫓겨 달려가지만 그 흥분된 활동 밑바탕에는 과연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깔려 있다. 성찰하지 않는 사람은 마침내 그 의미를 잃고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영적 독서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친구들이 결혼하고 부모가 죽거나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한 나라를 무너뜨릴 대, 그냥 그런 일이 있음을 알고 축하하고 슬퍼하며 반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럴 때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 모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하고 묻지 않으면 우리 삶은 마비되고 힘이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물음에 과연 답은 있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먼저 이 물음을 품고 살지 않으면, 릴케의 말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물음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신뢰하지 않으면 그 답은 얻지 못할 것이다. 한 손에 성경, 다른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살아갈 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새로운 물음을 가지게 될 것이고, 마침내 우리 안에서 그 답을 얻게 될 것을 믿으며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국민들은 전기료 누진제 때문에 폭염을 힘겹게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고가의 산해진미로 자기들끼리의 축하연을 벌여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김영란법으로 부패풍조를 막자는 이 때에 비상식적인 행태로 국민을 분노케 하는 이 정부를 꾸짖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