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6.08.27 23:21

2016년 8월 28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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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1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15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2. 오늘 오후 5시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우리교회가 주관하여 세월호참사 찾아가는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3시에 교회에서 출발하겠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십시오.
3. 다음주일 오후에는 묵상과 생활 나눔 기도회를 하겠습니다. 
4. 치료 중에 있는 유동숙 집사님, 임정희 집사님의 쾌유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임정희 집사님은 지난 주에 퇴원하셨고 유동숙 집사님은 발치 및 틀니 치료를 마칠 때까지 교회에 오시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5. 오호숙 권사님이 가정사로 미국 여행 중에 계십니다. 다음달 16일 돌아오실 때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왕국절] 8월 마지막 주일에 시작하여 대림절 직전까지 이어지는 13-14주간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하나님의 통치가 성취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갖고 정의. 평화. 창조.보전의 실천적 삶을 사는 절기입니다.

■ 목회서신
얼마 전 식사하면서인가 함옥분 장로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함 장로님은 아이 돌보는 일을 꽤 오래 하셨지요. 여러 아이들을 돌보셨지만 주연이라는 아이에게 유독 애정이 깊으십니다. 갓난  아기 때부터 돌보셨기 때문에 친 손주 같은 느낌인가 봅니다. 그 아이가 벌 초등학교 5학년이라니 그 정이 느껴집니다.
친구들이 교회에서 하는 여름성경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주연이가 부러웠었나 봅니다. 주연이는 부모님과 가톨릭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성경학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아빠에게 교회에서 하는 성경학교에 가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아빠가 대답한 말, "성당은 하느님 믿는 곳이지만 교회는 목사 믿는 곳이다." 아빠가 가지 말라고 해서 주연이가 속상하다며 장로님께 이야기 했답니다.
주연이 아빠의 대답을 들으면서 목사인 저는 살짝 기분이 나빴습니다. '가톨릭은 뭐가 대단하다고 아이에게 저렇게 얘기하는가, 가톨릭도 얼마나 구리고 지저분한 구석이 많은데'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상상에는 아마도 주연이 아빠가 교회학교나 학생회에 나가면서 뭔가 큰 상처받은 일이 있거나 청장년 시절 교회에서 건축하며 헌금 독려하는 것에 신물이 났을 수도 있겠다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 말고도 상상이나 추측이 가능한 일은 교회 안에서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목사인 저도 부모님만 아니었으면 당장 교회 나가는 일을 때려치우고 싶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또 한편으로는 주연이 아빠가 말하는 목사처럼 저 역시 목사라고 해서 함부로 제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교우들에게 강요하고 '나를 믿으라'는 식으로 목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화들짝 놀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히! 
기독교는 겸손과 섬김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을 섬기고 죗값을 물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겸손하게 섬기셨고 그것을 기리고 따르는 것이 기독교이지요. 그런데 같은 기독교인 가톨릭이 개신교를 이렇게 보고 있다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본 쪽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도록 살아온 쪽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의 개신교, 정말 달라지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20160828-002.jpg
“고 박형규 목사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개신교의 큰 어른이자 한국 민주화운동의 증인이신 박형규 목사님이 지난 18일(목) 새벽에 향년 9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고 박형규 목사님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으며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하며 '길 위의 목사'로도 불렸습니다. 
1973년 4월 이른바 '남산 부활절 사건'으로 박 목사님은 '내란예비음모죄'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이어 1978년 2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3.1 민주선언'을 발표했다가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무려 6차례의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습니다. 
22일 오전 9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발인예배에서 조화순 목사님은 고인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강직하였지만 겉으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유쾌한 분이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한국 개신교회에 어른을 떠나보내며 아쉽고 안타깝지만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교회와 사회  
해법은 오직 대화 | 방현섭 목사
북한의 도발이 정말 끝을 모른다. 네 차례의 핵시험도 모자라 투발수단인 미사일 시험을 단거리부터 중거리, 장거리, 대륙간탄도탄을 빙자한 인공위성 발사까지 정말 쉬지 않고 있다. 최근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인 SLBM 시험까지 성공하여 더욱 기세등등하다. 북핵과 다양한 투발수단 시험으로 남한을 비롯하여 속이 타는 나라들이 있지만 사실 이걸 도발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의 핵위협과 적대시 정책에 못 이겨 핵을 개발하였고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미국과 맞상대를 위한 군사력 증강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아시아의 안정을 일시에 위험에 빠뜨리고 사드 배치 문제까지 확대되었으니 도발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빗발치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은 일관되게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고 있다.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새롭게 체결하여 전쟁상태를 끝내고 더 나아가 평화협정까지 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남한에도 한반도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이런 은근한 대화제의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대답이 영 시원찮다. 미국은 옳다구나 하면서 주한미군에 사드를 배치하겠다며 중국과 러시아까지 싸잡아 감시할 무기를 배치하겠다고 한다. 남한은 '북한의 대화제의가 뻔한 통일전선전술이며 기만전술이다, 진정성이 없으며 핵폐기를 우선 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며 일축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하게 꼬인 한반도와 동북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미국과 남한은 군비경쟁으로 선택하였다. 그러자 중국과 러시아가 즉각 반대하며 군비경쟁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결국 한반도와 인근지역은 무기전시 각축장이 될 것이고 화약고가 될 것이다. 해법은 하나, 대화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는 마주 앉아서 멱살잡이를 하든 소줏잔을 기울이든 만나야 뭔가 시작된다.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지만 대화가 아니고서야 불바다를 면할 길이 없을 듯 싶다.

■ TH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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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서경식  지음 | 형진의 옮김 | 반비 | 2012년 08월 10일

우리는 대한민국에 삽니다. 요즈음처럼 대한민국에 사는 것이 후회스러울 때가 없지만, 언제 또 자랑스러워했나, 싶습니다. 한 번은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썼을 때가 있었네요. 돌아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치나 여러 정책에 대해서 자랑스러워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서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때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주나 4대강 그리고 핵발전소 문제를 보듯이, 정치와 정책의 효과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나타남은 물론 영향을 줍니다. 생각해보면, 정치와 정책은 서민들에게 밀접한 관련이 있고, 살림살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대통령을 잘 못 뽑으면 나라가 휘청하고, 서민들의 삶이 파탄 나듯이, 이 모든 것은 한 번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고스란히 피해를 당합니다. 
재일 조선인의 삶이 그렇습니다.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인, 코리안, 그리고 재일교포라고 불립니다. 이들을 낮춰 부르는 말로, 자이니치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들을 호칭하는데 있어서, 재일 조선인이 가장 알맞은 것 같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에 걸쳐 조국의 사람들을 분단시킨 정치 폭력이, 당시는 아직 재일조선인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국이 ‘둘’로 분단된 후에도 재일조선인은 ‘하나’였습니다. 제가 전에 “재일조선인에게는 지리적인 군사경계선이 없다. 재일 조선인은 ‘분단되지 않은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2쪽)

재일 조선인들에게는 분단의 역사, 식민지배의 역사, 그리고 차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정체성를 갖게 됩니다. 일본과 한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며, 어디에도 대접 못 받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에는 애초에, 아무런 신경조차 쓰지 않았습니다. 

현재 일본 사회의 차별에는, 매우 노골적이고 명확한 의도를 갖고 행해지는 것도 있고, 무의식적이고 감추어진 것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명백한 차별만 생각해서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71쪽

차별 속에서, 이들은 일본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제, 재일 조선인들은 3세에서 4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으며, 한국 이름으로 사는 어려움을 보았기 때문에, 일본이름으로 일본사회에 편입되려고 노력합니다. 한국 이름을 가지면 사회에 진출하는데, 명백한 장벽과 곤란함을 감수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차별이 수동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도 대한민국에서 능동적 차별을 앞서서 행합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우리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한마디로 재일조선인은 ‘난민’으로 여겨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9쪽)

■ 한자락 詩20160828-001.jpg
길                         |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에다 잃었는지 몰라
두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요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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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잃어버린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자의 비애가 보인다.
하지만 삶은
삶의 이유를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지리산

■ 영화묵상 20160828-003.jpg
“주님이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리바이어던 | 러시아 | 2014년작 | 감독 : 안드레이 즈비아진세프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으며, 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느냐? 리워야단을 보는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진다. 
욥기 41:1,9

 한적하다 못해 쓸쓸한 느낌이 드는 러시아의 하얀 바닷가.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바다를 벗 삼아 우두커니 자리한 오래된 이층집에는 영화의 주인공 콜랴와 그의 가족이 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는 정반대로 영화는 시작부터 긴장감 가득한 음악과 익숙치 않은 카메라의 시점으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제목처럼 ‘리바이어던’(성서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이 사방 그 어디에서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한 시공간이 펼쳐진다. 마치 ‘괴물’이 성큼성큼 기어 나올 것 같은 러시아의 시크한 바닷가 풍경은 푸른 하늘, 황량한 하얀 들판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풍경 이면에는 어떤 괴물의 정체를 숨기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영화에는 ‘괴생물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괴물’보다 더욱 잔인한 우리네 현실이 ‘괴물’처럼 번뜩번뜩 나타나 일상과 오버랩 되면서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더욱 우리를 공포스럽게 한 달까. 

 영화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바닷가를 개발하려는 마을의 시장과 그 개발로 인해 할아버지 대 부터 살아왔던 삶의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평범한 가족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물론 ‘대결’이라는 용어는 너무 비인간적이리만치 객관적인 표현이다. 개발을 위한 모든 철거현장이 그렇듯이 그 과정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폭력적이며,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빼앗는 자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상대방을 유린하지만, 빼앗기는 자는 삶의 터전뿐만 아니라 ‘인간성’과 ‘생존권’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옥바라지 골목과 우장창창을 비롯하여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거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누가 누구의 삶을 왜 빼앗는가?”여야 한다. 분명히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약탈행위에 대해 왜 모두가 침묵하는 것인가?    
  사악한 시장에 의해 삶의 터전도 가족의 생명도 자신의 남은 인생마저도 다 빼앗기고 나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이 없던 콜랴는 무신론자였지만 정교회 신부에게 절규하며 질문한다. “주님이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거기서 과연 신부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겠나? 알고 보면 콜랴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시장은 정기적으로 정교회의 신부를 만나 신앙상담을 하고, 매 주일 예배도 빠지지 않는 열렬한 신자인 것을. 신부는 그저 하나마나한 ‘진리’ 타령으로 신을 대변하고, 자신의 직위를 방어할 뿐이다. 자본가와 성직자, 경찰, 판사, 그리고 행정관료 등 온 사회가 공모하여 한 가족을 파멸로 몰아넣는 이야기가 한바탕 끝났지만 세상은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파란바다와 파란하늘 하얀 들판은 영화의 시작과 같은 모습으로 서글프리만큼 아름다울뿐. 

 토마스 홉스가 1651년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저술할 때도, 안드레이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든 지금도, 우리의 현실을 장악하고 있는 리워야단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그것이 자본이든 권력이든, 욥기 말씀대로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질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 앞에서 신앙인은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님이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이유가 뭡니까?”라는 질문에 “제가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믿는 주님은 분명히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라고. 내 친구와 이웃을 향한 야만적인 약탈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온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저 서글픈 아름다움만을 바라볼 수는 없지 않는가.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계부채가 1,257조 3천 억원, 지난해에 비해 125조 8천억원이 증가하였답니다. 상당부분이 주택과 관련된 부채라고 하니 서민들의 주거가 빚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열심히 일해도 제 가족 편히 쉴 곳 없는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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