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6.09.17 21:43

2016년 9월 18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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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절 제4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18주일, 기독교교육진흥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다음주일은 청년주일입니다.
2. 오늘 예배는  전기를 이용하지 않는 언플러그드예배로 드렸습니다.
3. 수요성서대학은 28일에 개강합니다. 기억하시고 미리 교재를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4. 오호숙 권사님과 김형휘 성도님, 임정희 집사님 가정이 해외여행을 잘 다녀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5. 방현섭 목사가 21-24일에 중국 조중접경지 답사로 출장을 다녀옵니다. 안전한 여행 되도록 기도해 주세요. 
6. 10월 3일(월) 오전 10시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열리는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2016 작은교회 박람회'에 참가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우천 시에는 10월 8일로 연기됩니다.

[기독교교육진흥주일]  1933년 일제 치하에서 우리 감리교회 신앙의 선배들이 제정한 주일로 매년 9월 셋째 주에 기독교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며 그 진흥책을 모색하기 위하여 재정된 주일입니다.

■ 목회서신201060918-005.jpg
한효균 선생님은 교회 승합차를 가장 많이 가장 멀리 이용하시는  주요 고객이십니다. 물론 한 선생님이 타고 오가시는 거리가 수십 분 걸리는 장거리는 아닙니다만 자연스럽게 저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가끔 설교에 관한 것도 물으시고 성서 이야기를 묻기도 하십니다. 지난 주에는 교회 주보에 실리는 일주일 분 '좋은만남 매일묵상'이 '어디서 베껴 쓰는 것 같지는 않고 직접 쓰는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직접 씁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저는 매우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 선생님이 관심 갖고 주보를 꼬박꼬박 읽어보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주보는 우리 교회와 제 목회의 자랑 아닌 자랑입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고 전도를 잘해야 합니다만 그런 재주는 없으니 전도지로도 사용할 수 있는 주보나 잘 만들어야 겠다고 시작한 일입니다. 그러다가 뜻이 맞는 교역자들과 함께, 다른 교회처럼 단순하게 예배 순서와 교회 소식만 담은 주보가 아니라 뭔가 읽을 꺼리, 신앙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담아 말 그대로 주보(신문)를 만들고자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이나 되었습니다. 가끔씩 과거의 일들을 확인하느라 주보철을 뒤적이다 보면 '내 목회는 주보 만들다가 끝나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우리 교회 주보를 본 사람들 반응은 대체로 '이렇게 많은 분량의 내용을 담은 주보를 만들다니 놀랍다, 꽤 힘들겠다, 이런 주보를 다른 교회와도 공유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네 명의 교역자가 각자의 관심사를 성의 있게 담아 매 주일 만들어내는 주보가 보다 의미 있게 사용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선 우리 교우들이 애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집에 가실 때 몇 부 더 가지고 가셔서 지인에게 읽어보라고 주시거나 이웃의 우편함에 넣어주시는 것도 좋겠네요. 기독교 난민이 늘어가는 시대에 우리 주보를 통해 신앙을 공유하고 신앙동지로 발전해 나간다면 더 좋겠습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201060918-003.jpg
“추석인사를 전하셨습니다 ”
추석 명절을 맞아 저도 부모님을 뵈러 강원도 인제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꽤 오랜만에 다녀왔네요. 한 해 한 해 농사일이 점점 힘에 부치시는 것 같고 그만큼 더 늙어가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도시에서 복닥거리면서 사는 것보다는 더 낫지 싶습니다. 방인웅 장로님과 김영순 권사님이 우리 교우 여러분께 추석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아울러 가을 농활에 대해서 의논하였는데 수수 수확 같은 일이 있긴 하지만 일을 많이 줄여서 크게 도울 일은 별로 없다고 하시면서 일부러 오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십니다. 교우 여러분과 함께 상의해서 추진하면 되겠습니다.
최호경 집사님도 카카오톡을 통해 추석인사를 전하셨습니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차례씩은 문자나 전화로나마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추석 인사까지 해주셨네요. 또 선영이와 혜린이 사진도 보내주셨습니다. 많이 컸네요! 우리 교회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착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랍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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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사회  군사안보만이 안보가 아닙니다! | 방현섭 목사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요즘 뉴스를 보니 한국의 대통령이 가장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안보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민의 안녕과 행복이 가장 중요한 것일 테고 그것은 든든한 안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강조되고 있는 안보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안보는 안전보장(安全保障)의 준말로 원래는 군사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만 탈 냉전이후 국가안보의 개념은 상당히 넓어졌고 비군사적 안보위협의 발생이 증대되고 다차원화 되었습니다. 즉 군사적 무력에 의존한 군사안보 외에도 식량안보, 에너지안보, 환경안보, 경제안보 등 다양한 부문의 안전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한국의 대통령에게는 오로지 군사안보만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촌 시대가 열리고 글로벌화 되면서 국제관계는 군사적인 부문보다 경제, 에너지, 식량 등의 부문에서 더 많은 접촉과 경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전체주의적 가치관보다는 개인적인 가치관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국가적 안전 보장도 중요하다지만 개인적 안전보장 역시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오로지 북학 핵에 대응하는 군사안보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국민들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월호가 지겹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역시 중요한 안보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이번에 경주지역에서 강도 5.8의 강진이 있었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참으로 한심하였습니다. 학교에서도, 공공기관에서도, 원자력발전소에서도 안보는 실패하였고 개인의 안전은 존중되지 못하였습니다. 안보가 군사적 무력으로만 보장된다는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정권은 진정한 안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시대임을 잊고 있습니다. 

■ 한자락 詩201060918-001.jpg
 가을  | 김현승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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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다
오랜 기다림이라 반가운 비다
하지만 
북한은 홍수로 아프다
멀리 대만은 태풍으로 난리다
그래서
하나님은 표정이 없다

시인은 지극정성으로 시를 짓는다
침묵으로 환한 등불 하나 만든다 
그렇게 우리들 가을은 깊어간다 | 지리산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멀리 있는 집 「열린 손으로」
침묵은 밤이다.
달도 별도 없고
곁에 아무도 없다.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 없는
저주받은 몸으로
아무 것도 아닌 너만 홀로 있는, 
그런 밤이 있듯이
침묵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
너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침묵이 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소용없는 짓이다.
빛도 희망도 없는 밤,
용서도 사랑도 없이
너 홀로 죄 가운데 앉아 있다.
그리하여 절망 가운데
친구들을 찾아 사방을 살피고
길거리를 헤매지만
신호도 소리도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밤만 있는 건 아니다.
별이 빛나고
멀리 있는 집에서 오는 빛으로
보름달이 환한, 그런 밤이 있듯이
텅 빈 교회 뜰에
참새들이 시끄럽게 재잘거리는
평화롭고 아스라한 침묵도 있다.
그때 내 가슴은 기쁨으로 노래하고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멀리 있는 친구들을 생가가고
방금 읽은 한두 구절의 시가 절로 머리에 떠오르고
거룩하신 어머니 마리아 품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그리하여
나는 내가 되고 너는 네가 된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겁내지 않고
평화와 침묵을 선물한 천사에게
우리의 모든 말을 내맡긴다.

그늘 속 삶 「영혼의 양식」
우리는 가끔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한다. ‘내년에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오 년, 십 년 뒤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하는 물음에는 답이 없다. 그러나 바로 다음 걸음을 내디딜 만한 빛은 충분히 있다.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일은?
건강하게 사는 기술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것을 불안해하거나 불평하기보다 지금 보이는 것으로 인생을 즐기는 데 있다. 바로 다음 걸음을 내대딜 빛은 충분히 있음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때 우리는 기쁨으로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고,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새삼 놀라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그늘을 한꺼번에 걷어낼 거대한 빛줄기를 구하는 대신 우리에게 있는 작은 빛으로 즐겁게 살자.


■ 여행묵상 흔하지 않은 방콕-파타야 여행201060918-004.jpg
세 번째 이야기 : 태국의 불교 | 이관택 목사

3박 5일 여행의 마지막 날은 여행사가 인도하는 대로 억지 쇼핑만 4곳을 들렸기 때문에 별다른 일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들린 방콕의 왓포사원은 매우 인상이 깊었고, 개인적으로는 이제야 리얼태국을 만난 느낌이었다. 왓포사원은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의 하나일 뿐 아니라, 왕궁 근처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찰의 스님들은 왕가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타이 마사지’는 바로 이 곳 왓포 사원에만 전해져 내려오는 건강치료법이었고 왕실 사람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비술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왓포’라는 이름의 타이 마사지 샵을 많이 본 것 같았는데, 절이름이었다니...)   

 태국은 대표적인 불교국가이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고 화려한 사찰의 모습에서 태국의 불교가 얼마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대승불교를 믿는 동북아시아와는 달리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는 소승불교를 믿고 있는데, 그것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찰의 형태만 보아도 한국의 불교와는 뭔가 다른 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태국의 사찰은 위치적으로나 존재의 의미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절’을 떠올리면 일단 고즈넉한 산 속에 자리하여, 속세와는 뭔가 단절된 영험한 공간이라 여겨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절에는 ‘일주문’이라는 것이 있어 속세의 영역과 완전히 단절된 영역임을 표시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설정되어 있다. 또 그 일주문을 지나면 ‘사천왕’이 무섭게 사람들을 노려보며, 출입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몸과 마음을 정돈한 뒤에야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다시 말해 속세의 영역과 거룩한 종교적인 영역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태국의 불교는 도시의 가장 중심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사찰은 어떤 작은 마을에 가더라도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하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진다. 또 사찰에는 성속을 경계 짓는 일주문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가 부처를 모시기 위하여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반대로 스님들 또한 자유롭게 사람들이 사는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탁발스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종교와 일상생활의 경계가 없는 종교적인 사회를 생각할 때, 뭔가 종교적인 규율에 의해 경직되어 있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태국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정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과 종교가 섞여 있기에 더욱 자유롭고, 더욱 풍성하게 삶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또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의 외관은 사람들의 세속적인 욕망과 바람들을 모두 받아들여주겠다는 넓은 품을 보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태국의 사찰을 보면서 한국교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국교회는 위치적으로 태국의 사찰들과 비슷한 면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사람들 생활의 중심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또한 사람들의 욕망을 받아주고, 사람들의 성공을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을 그 본연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한국의 기독교가 너무도 분명하게 세속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을 경계 짓고 있다는 점은 태국의 불교와 다른 점이다. 교회의 위치도, 내용도 세속적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는 커녕 끊임없이 사람들을 구속하고 정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 자신의 현재 모습과 지향하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는 것. 현재의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 스스로도 행복하지 못하거니와, 교회를 바라보는 비종교인들의 시선에서 기독교는 가식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북한 두만강 일대에 60년만의 대홍수가 나서 수백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북핵실험으로 인도적 지원에 거부감이 강합니다. 먼저 죽어가는 생명을 위해 조건 없는 사랑의 손길을 내밀게 하시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근본적 노력을 해나가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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