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6.10.08 23:01

2016년 10월 9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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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
1. 오늘은 왕국절 제7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21주일, 사회복지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2. 오늘 공동식사 후 강화도 이필완 목사님 댁에 방문하여 농촌봉사 및 농촌체험 활동으로 고구마 캐기를 하겠습니다.
3. 수요성서대학이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열립니다. 참석을 바라시는 분은 차량운행을 위해 미리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4. 지난 월요일(3일) 감신대에서 열린 작은교회박람회에 참가하여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5. 넷째 주일에는 공동설교를 하겠습니다. 자원하실 분은 말해 주십시오.

[사회복지주일] 감리회 사회복지재단이 결의하고 감리회 31회 총회에서 제정하여 매년 10월 둘째 주일에 지키며 지역사회 사회선교활동, 자원봉사를 지원합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작은교회 박람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개천절에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2016 작은교회 박람회'에 우리교회도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박람회에는 60여개의 교회와 30여개의 단체가 참가하여 감신대 교정 곳곳에 부스를 만들어 놓고 자신들이 펼치고 있는 작은교회 운동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여는 예배와 다짐예배로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이 시대의 작은교회들이 온전한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감신대 백주념기념관 1층 로비에 부스를 배정받아 아침 아홉시부터 부스를 설치하였는데 방정혁 학생이 도와주었습니다. 모니터 두 대를 준비하여 한 대에는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다른 한 대에는 교회 관련 영상을 계속 재생하였으며 그동안 모아 놓은 주보를 나누어 주며 우리교회의 특징을 안내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 보니 우리교회에 눈에 띄는 큰 특징이 있는 것 같지 않더군요. 내년에도 참가해야 할 지 고민입니다.
함옥분 장로님과 한효균 선생님, 임수현 전도사님과 박근조 전도사님 내외, 임정희 집사님과 현수, 희수, 안주영·안상호 청년이 방문해주셨고 함 장로님은 맛난 점심을 대접해 주셨습니다. 남기평 목사님과 민지애 사모님, 규현·호현이도 한국기독청년협의회로 참가하셨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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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사회  
가장 큰 아픔을 겪은 분들이 불우이웃을 위해 마음을 나누다 | 방현섭 목사
지난 작은교회 박람회에서 세월호 희생 학생 영만이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박람회에는 유가족과 416합창단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어머니들도 몇 분 오셨습니다. 영만 어머니께 바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단원고 희생자 부모님들이 안산에서 바자회를 하는데 이번에 우리 교회도 물품이나 지원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다른 교회는 천연비누나 천연화장품 같은 것을 후원하신다는 데 우리교회는 지금은 그런 사업을 하지 않으니 별로 해드릴게 없더군요. 교회가 작다 보니 많은 것은 해드리지 못하지만 조금 도울 수 있겠다고, 정말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엄마 아빠들이 틈틈이 공방에서 만든 수공예품과 후원을 받은 물품을 판매하는 바자회를 통해 안산의 불우이웃과 아동센터에 난방비 등으로 지원을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우울증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유가족을 위해 목공방과 수예방을 운영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무를 자르고 깎아 못을 박으며 뭔가를 만들고, 열심히 바늘을 움직여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해가는 아빠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감히 상상을 해봅니다. 수도자가 도를 닦는 마음, 종교인이 신을 찾는 수련이 아니라 그저 무엇인가에 몰두하면서 아픈 기억을 잠시나마 잊으려는 마음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것으로 지역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바자회를 연다니, 또 그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미치니 더 이상 상상이 안 됩니다.
동병상련!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통해 자녀를 잃은 부모님의 마음은 우리가 경험한 아픔과는 차원이 다르니 그저 먹먹하고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그런 아픔을 경험한 부모님들이 불우한 이웃을 위해 마음을 모은다니 기가 막힐 뿐입니다.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이들이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나누는 모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십자가 고통을 통해 이웃의 아픔을 치유하시는…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미국의 어느 주부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업이 끝나자 교수는 학생들에게 다같이 즐길 놀이를 하자면서 호흡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한 주부가 교탁 앞에 나서자 교수는 칠판에 절친한 사람 20명의 이름을 적으라고 하였다. 주부는 시키는 대로 이웃 친구 친척 등 이름을 적었다. 교수는 이어 속으로 생각하기에 중요하지 않은 한 사람 이름을 지우라고 하자. 주부는 이웃의 이름을 지웠다. 교수는 다시 한 사람을 지우라고 하였다. 주부는 회사동료를 지웠다. 마지막으로 칠판에는 단지 네 사람으로,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아이가 남았다. 
교실은 대단히 조용해졌고 다른 주부들도 차분히 교수를 보면서 이게 무슨 놀이냐고 여기게 되었다. 이때 교수는 조용히 다시 하나를 지우라는 것이다. 이 주부는 주삣 주삣하면서 어렵게 결정하게 되었다. 주부는 부모이름을 지웠다. 이어 교수는 다시 또 하나를 지우라고 말했다. 주부는 놀라 아주 느리지만 각오가 선 듯이 아이를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주 고통스럽게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교수는 주부가 안정을 되찾자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모와 아이가 아니냐면서 “부모는 나를 키워주셨고 아이는 스스로 낳았으나, 남편은 다시 택할수도 있잖느냐?”면서 왜 남편을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냐고 물었다. 다른 주부들은 조용히 여학생을 바라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자 이 주부는 차분하고 천천히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 부모는 나를 먼저 떠날 것이며 아이는 커가면서 언젠가는 나를 떠날 테지만일생을 나와 같이 지낼 사람은 남편뿐이예요.”

살아가다 보면 지금은 소중한 것도 양파같이 한 꺼풀씩 벗겨나가게 됩니다. 모두가 떠난다 하여도 끝까지 함께 할 그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하찮게 취급하면 나중에는 홀로 고독을 씹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지 말기 바랍니다.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THE BOOK201061009-005.jpg
꺼지지 않는 불길 - 남기평 목사
마이클 리브스 지음 | 박규태 옮김 | 복있는 사람 | 2015년 9월 14일

10월 마지막 주는 종교개혁주일로 지킵니다. 그만큼 개신교에서는 종교개혁이 중요한 의미이기에 이렇게 종교개혁주일을 특별히 지키는 것입니다. 499년 전 당시, 종교개혁은 개신교 혹은 프로테스탄트의 신세력이 등장하는 계기가 됩니다. 굳이 따지자면, 유럽중심의 종교개혁은 종교개혁이라기보다는 교회개혁이라고 보는 게, 아시아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는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지금의 한국 땅,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지 않음을 전제로 하고 있지요.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인데, 이 어마어마한 시간과 마주하는 우리들은, 개신교의 개혁뿐만 아니라 한국 땅에 있는 모든 종교들이 개혁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지켜보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전선이 그어지고 적과 아군이 나뉘었다.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날 저녁, 루터는 그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는 차원을 넘어 더 큰 의미가 있는 일을 해냈다. 그는 모든 세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13쪽)

유럽 종교개혁의 시작을 흔히들 마틴 루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럽 세계에 개혁의 물꼬를 튼 것은 루터가 맞습니다. 이 역사의 개벽은 루터가 카톨릭에 보내는 95개조 반박문을 자신이 강의하던 대학교 문에 붙이 면서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틴 루터가 나오기 전까지 여러 개혁의 선구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 당시 성서를 라틴어로만 봐야 했던 금기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영어로 번역한 유클리프나 개혁의 효시나 상징으로 알려진 얀 후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루터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성서를 모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시작이 독일어의 본격적인 문법과 언어의 시작이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보면, 언어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정말 중요하다라는 생각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이 언어가 고착화되면서, 또 다시 개혁을 방해하는 요소를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은 사람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기는 불가능하니 하나님의 완전하고 충분한 은혜에 의지해야 함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도덕주의자들은 종교개혁의 이런 주장을 은연중에 인정하지 않았다. (92쪽)

오늘날의 교회는 중요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잃고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복된 소식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날의 현실은 배타적으로 그리고 특정 집단에만 복된 소식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이를 교회가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종교개혁이 타당성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종교개혁이 단순히 500년 전의 역사적 상황에 맞선 반동에 불과했다면, 그것이 단지 16세기에 나온 ‘전진’에 불과했다면, 종교개혁은 끝났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력은 늘 복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프로그램이었기에 결코 끝날 수가 없다. (292쪽 )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놓아버리기 「열린 손으로」
이탈은 흔히 마음에 끌리는 것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간혹 마음에서 싫은 것을 놓아버려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실제로 후회나 증오 같은 어두운 힘에 집착할 수 있다. 앙갚음할 방법을 찾는 동안 자신의 과거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복수와 증오심에 사로잡혀 당장 치유를 바라는 절박한 사람 앞에서 눈을 감고 팔짱을 낀 자신을 상상해 보라.

빛을 향하여 「탕자의 귀향」
두려움·이기심·탐욕·권력으로 통치하는 어둠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가장 큰 동기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지키며 살아남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의 자녀인 우리는 온전한 사랑이 모든 두려움을 몰아낸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한테 있는 모든 것을 이웃에게 내줄 수 있다. 
빛의 자녀인 우리는 생명을 걸고 무한한 하느님 사랑을 증거하는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어 줌’은 모든 것을 얻음으로 바뀐다. 예수께서는 이 진실을 분명하게 밝히신다. “누구둔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영원히 살리라.”

영적 투쟁 「탕자의 귀향」
공동체 생활은 어둠을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를 라르슈로 이끌었던 바로 그 빛이 내 안의 어둠을 보게 한 것 같다. 질투와 분노, 거절, 무시당했다는 느낌, 진정으로 소속되지 않았다는 느낌, 이 모든 것이 용서와 화해와 치유의 삶을 살고자 애쓰는 공동체에서 솟아난다. 공동체 생활은 진정 나를 영적 투쟁으로 끌어들여 짙은 어둠 곳에서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 싸움을 계속하게 한다. 

■ 여행묵상 201061009-003.jpg
이국적, 이색적, 이상적인 공동체 '예수원' | 이관택 목사

(1) 예수원 가는 길
 아시다시피 나는 현재 100일간의 휴가를 누리고 있다. 사실 쉬기 전에는 여러 가지 계획과 포부가 있었지만, 요사이 나를 돌아보니 이러저러한 핑계로 쉼과 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삶의 의지와 실천이 흐지부지, 지지부진해진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집에 홀로 있다 보니 종종 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책감과 조바심이 나를 엄습해올 때가 있는데, 그 때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발동되기도 한다.
 아내가 지방으로 1박 2일 행사를 떠났던 지난 주 월요일 아침이 꼭 그랬다. 쓸데없는 조바심으로 인해 뇌세포와 감정을 소모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었고 집 안에서 씨름하느니 어딘가 떠나고 싶었다. 파란 숲속에 파묻히고 싶었다고 할까. 그 때 떠오른 곳이 ‘예수원’이었다. 실은 ‘예수원’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 곳이 가톨릭 수도원인지, 개신교 수도원인지도 모를 만큼 말이다. 다만 벌써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했던 기억이 났고, 내게 필요한 것이 육적인 휴식보다는 영적인 안식이라는 강력한 끌림이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는 분은 상당히 시크한 목소리로 원래 1주일 전에 예약해야 하지만 혼자서 오는 것이라면 오늘 들어와도 좋다고 했다. 시간을 보니 10시. 태백의 산골짜기 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당장 출발해야 했다. 

 201061009-004.jpg 오전 10시30분에 출발했는데 6시가 다되어서 예수원에 도착했으니,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강원도로, 또 산을 몇 개나 넘어 태백시로 이동하는 동안 신비한 광경 두 가지를 보았는데 하나는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샛노란 들녘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비탈을 깎아 오밀조밀하게 끝도 없이 심기어져 있는 고랭지 채소밭이었다. ‘원래 저렇게 노랬나?’ ‘이곳은 뭔가 우리나라 같지가 않아.’ 등의 생각을 하며 때론 감탄하고, 때론 놀라면서 초행길의 떨림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국적인 풍경의 끝판왕은 산등성이에 위치한 예수원의 외관을 눈으로 보았을 때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즈넉한 중세 유럽식의 수도원 건물이 산비탈에 걸쳐있는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살짝 안개비까지 내린 흐린 날씨가 이 생경한 풍경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듯하였다.   
 도착하자마자 공동식사 시간이었는데, 엄숙하면서도 친근한 식사시간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 같은 종교적인 의례와 따뜻한 공동체의 느낌이 공동식사 시간을 통하여 잘 구현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모든 사람이 함께 기도로 식사를 시작하고, 마치는 시간도 모두가 함께 감사의 기도로 끝마쳤다. 산뜻한 종소리가 기도를 대신하였는데, 채소위주의 정갈한 식단과 기도의 종소리가 잘 어우러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곳은 뭔가 우리나라 같지가 않아.’
 이 한 마디는 내가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이번 2박3일의 수도원기행을 규정짓는 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 2박3일 동안 내가 만난 풍경도, 사람도, 생활도 이국적이며, 이색적이며, 이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수도원 기행을 통하여 일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수도자(신앙인)의 삶이라 할 수 없지만, 일상에서 만나지 못한 이상적인 신비를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삶에서 ‘일상’과 ‘이상’을 조금 더 가깝게 만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도원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신앙인으로서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p.s 다음 지면을 통해서는 예수원이 어떤 곳인지, 예수원에서 2박3일 동안의 생활은 어떠했는지를 소개할 예정이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영남지방을 덮친 태풍과 홍수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더위가 끝나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일교차도 심합니다. 정부의 엉터리 행정과, 빈곤으로 인하여 더욱 춥게 느낄 이웃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잘못된 정책으로 고통 당하는 이들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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