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립니다! ■
1. 오늘은 성탄절로 예배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평화의 소식이 되기를 빕니다.
2. 공동식사 후 당회 및 구역회를 하겠습니다.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3. 오후 3시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KTX 해고 여승무원과 함께하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2016 성탄절연합예배'에 참석하겠습니다.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함으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라며 성탄헌금은 KTX 해고 여승무원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4. 올해는 주일과 겹치는 문제로 송구영신예배(자정예배)를 드리지 않고 1월 1일에 신년주일예배로 드리고 오후에 척사대회를 하겠습니다.
5. 1월 셋째 주일(15일)에 겨울놀이를 할 계획입니다. 제안을 해주십시오.
6. 1월 넷째 주일(22일) 5시, 세월호 안산분향소 기도처에서 기도회를 합니다. 우리교회 주관이 변경되어 감리교회본부가 주관하게 되었습니다.
7. 박성중 목사님이 수요일(28일)에 안과 수술을 받으십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 목회서신
어린 시절에는 왜 그렇게도 시간이 안 가는지!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독립하고 청소년들이 누리지 못하는 온갖 권리를 누리고 싶어서 안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십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왜 그리 시간이 빠르기만 한지 야속할 따름입니다. 십대에는 시간이 시속 10킬로미터로, 이십대에는 시속 20킬로미터로, 사십대에는 시속 40킬로미터로 간다고 하더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지나버린 듯합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마주친 마지막 한 줄 남은 달력이 그저 밉기만 합니다. 시간 앞에 선 인간의 연약함을 다시금 실감합니다.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교회일이다, 인도지원단체 일이다, 사회참여다, 교단개혁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마음만 부산하였지 딱히 이룬 일은 없는 것 같이 허망하게 느껴집니다. 머리만 굵어져서 그저 내 탓은 없고 시대 탓이고 제도 탓이고 체제 탓이라고만 불평한 것은 아이었는지 뜨끔해집니다. 교회적으로도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만고만한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이야기하고 놀러 다니고 봉사도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한 해가 갔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국민이 자신이 권리와 정치, 권력에 대해 자각하고 스스로 주인임을 입증하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획기적인 민주주의 사변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기득권층에 만연한 불공정과 특혜, 비리와 서민들에 대한 갑질을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정의에 대한 갈망이기도 합니다. 수백만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 보잘 것 없으나 제 머릿수 하나 더했다는 것이 그나마 가슴 뿌듯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한 해의 마지막 주를 맞이합니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하는 이 마지막 주간에 그래도 예수님이 함께 해주심을 경험했고 그나마 예수님을 따랐기에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한 해였다는 고백이 우리에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 기분 좋은 일 없는 우울한 한 해였지만 그래도 예수의 길을 걷는 즐거움이 있었다고 서로 위안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좋은만남교회가, 좋은만남의 교우들이 있기에 그나마 의지가 되고 행복했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살 씩 더 자시고 딱 한 살 만큼 더 성숙한 모습으로 내년에 뵙겠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영종도 나들이를 다녀왔어요”
지난 주일 오후에 시간 되시는 분들과 인천 영종도에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엄중한 상황이긴 하지만 한 해 동안 또 열심히 해주신 분들 나름대로 콧구멍에 시원한 바람이라도 좀 불어 넣어드리는게 예의인 것 같고 함옥분 장로님이 무료해 하시는 것 같아서(?) 승합차 운행을 좀 했습니다. 영종도 용유해변과 을왕해수욕장에서 모래사장도 걸어보고 해변가 암벽 아랫길도 산책했습니다. 역시 영종도 하면 빠질 수 없는게 조개구이이죠! 조개구이와 낙지호롱구이 세트로 아주 호강을 하였습니다. 맛난 저녁식사를 한 후 어두운 해변가에 나가서 임정희 집사님이 준비하신 폭죽놀이도 하였네요. 잠시 타이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다들 즐거워 하셨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곧 있을 겨울놀이를 기대해 주세요~
“겨자씨헌금을 집행했습니다”
교우 여러분이 올 한 해 동안 정성을 다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분들과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드린 겨자씨헌금을 여러 단체에 송금하였습니다. 은평 씨앗학교(50만원), 홈리스행동, 함께나누는세상, 고난함께, 예수살기, 감리교청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토마토학교(이상 20만원), 감리교시국대책위원회, 반빈곤연대 아랫마을(이상 10만원)로 총 210만원입니다. 후원단체를 지정해주신 분들은 그 뜻에 맞게 금액을 배분하였고 지정하지 않으신 분들은 담임목사가 임의로 나름대로 공정하게 배분하였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이 보여주신 이웃 사랑과 정의 참여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작은 금액이지만 귀하게 쓰이기를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내 가슴에 | 정호승
내 가슴에 손가락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내 가슴에 못질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
내 가슴에 비를 뿌리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평생 그들을 미워하며 사는 일이 괴로웠느냐
이제는 내 가슴에
똥을 누고 가는 저 새들이
그 얼마나 아름다우냐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안전한 곳을 찾아 「친밀감」
‘내가 이 세상에서 낯선 사람과 깊은 사랑에 빠졌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니라 ‘이 사랑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하고 물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우리는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나그네가 아닌가라고 자문한다. 친밀한 사귐에 오해의 불씨가, 하나가 되려는 노력에 분열의 아픈 경험이, 상대를 받아들이는 몸짓에 저항의 두려움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가운데 운명적 미움의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문득 이처럼 경쟁적이고 살벌한 세상에서 맘 놓고 쉴 수 있는 곳, 사람들에게 나를 몽땅 보여줄 수 있는 곳, 조건 없이 나를 내줄 수 있는 곳이 한 곳이라도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이런 신뢰와 개방은 인간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곳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조심스레 살펴보도록 초대받는다.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새 시대의 사목(목회)」
구원 통찰에 이르는 대화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신을 내놓는 것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믿음과 의심, 불안과 희망, 두려움과 기쁨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웃에 다가가지 않으면 하느님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설교자의 영성에 닿는다. 이웃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우리가 얼마나 편향적으로 자기를 이해하는지 안다. 우리가 낙관론자라면 하루에 겪는 일 가운데 자기 삶을 적극적으로 보게 하는 사건만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자라면 늘 ‘내가 형편없는 존재임이 입증된 또 하루가 지나가는구나.’ 하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체험한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을 체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체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좋은 모습으로만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 이는 우리가 ‘닫힌 마음의 태도’라고 부르며 자신이 진면목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한다.
진정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는 설교자는 설교를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 경험(기도하면서 얻은 경험 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사목자(목회자)가 회중을 돌본다는 것은 그들을 구원하고자, 마지막 순간에 그들을 구하고자, 또는 좋은 생각과 지혜로운 말, 충고로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노심초사하며 분주하게 돌아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한 번에 구원받았다. 사목자의 돌봄은 자신이 경험을 동료들에게 내주는 것이다. 폴 사이먼의 노래처럼 스스로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으라는 말이 아니다. 사적인 격정이나 집안, 젊은 시절 얘기나 고통스러웠던 얘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제멋에 겨운 나르시스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게 아니다!
내 말은 설교자가 자기 인생을 있는 그대로 충실히 경험하고 고백하여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 기상학자든, 상점 주인이든, 농부든, 노동자든 어느 날 자신이 겪는 바로 그 일을 설교자도 똑같이 겪고 있음을 알고 일치감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설교자는 비로소 자기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여 새사람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다.

샹트페테르부르크보다 그대를 향한...(3) | 이관택 목사
대영제국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이 식민지로 부터 약탈한 전시품을 전시했다면 이곳은 나름 오랫동안 소장해오거나 기부 받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답니다. 나름 양심적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더군요. 베르사유 궁과 흡사했는데, 방 하나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고 미술작품도 많았어요. 규모가 엄청나게 엄청나더군요. 10시 30분부터 입장인데 10시부터 줄을 선 것이 아주 좋은 선택이었지요. 우선 일찍 입장할 수 있었고 기다리면서 아름다운 궁전의 풍경을 볼 수 있었거든요.
이곳이 겨울궁전이라 불린 이유는 궁전을 지은 예카테리나2세가 주로 겨울에 머물렀기 때문이래요. 여름엔 샹트 근교에 있는 여름궁전에 머물렀데요. 나는 박물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18-19세기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의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베르사유 궁보다 한층 화려했고, 이탈리아의 유명 예술가들을 총동원해서 내부를 채워 넣었다지만 왠지 모를 허세와 조바심이 느껴졌달까. 다행히 한국어가 나오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서 알찬시간이 되었어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황금색 공작새와 올빼미 장식으로 된 시계였는데 시계라지만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나 초침 분침이 없는 조형물 같은 모습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 때마다 공작새의 날개가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던지 올빼미의 눈이 서서히 감긴다든지 보이는 조형물의 움직임을 보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시계랍니다. 신기해서 한참을 뚫어지게 지켜봤는데 내 눈에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더군요. 박물관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작품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예요. 얼마 전 헨리 나우웬의 책을 통해 자세히 공부했었기에 더욱 와 닿았지요. 돌아온 작은 아들을 껴안고 있는 아버지,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는 맏아들. 이 단순한 그림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담겨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유약함과 사특함이 잘 담겨있어요. 우린 지금 탕자, 아버지, 맏아들 중 누구의 모습과 닮아 있을까요?

생애 최초의 오페라라니. 발레 대신으로 선택하긴 했지만 참인상적이었어요. 일단 내 예상과 다른 게 많았는데 생각보다 거대했고 길었으며 재밌었어요. 알고 보니 마린스키 극장은 러시아에서 볼쇼이극장 다음으로 규모 있는 곳이라네요 또 내가 본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작품은 오페라 중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작품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2시에 시작한 작품이 6시가 다 되어서 끝나다니... 예상을 못하여 당황스럽긴 했으나 매우 즐거운 시간 이었지요.
밖에 나오니 이미 어두워졌더군요.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날이고 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자 유명하다는 중앙아시아 식당에서 전통 꼬치구이 쇠슬릭과 소고기 스프라는 하르초를 시켰어요. 아뿔싸! 하르초는 완전 고수 국이었고 쇠슬릭도 소스가 고수덩어리더군요. 아... 비싼 거라 안 먹을 수도 없고 1시간동안 고수를 걷어내고 깨작깨닥 거의 다 먹었어요. 덕분에 고수랑 조금 더 가까워 졌다고 해야 하나.
이제 야간열차 타고 다시 모스크바로 갑니다. 가는 길이 더욱 멀게만 느껴지지만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져 갑니다. 어디에 있든 우리의 삶이 맑고 향기롭기를. (계속)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2016년이 저물어가는 지금도 수년째 거리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거대권력을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는 고난당하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몸을 강건케 하시고 마음을 위로하시며 새해에는 승리의 기쁜 소식을 그들에게 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