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7.03.11 18:32

2017년 3월 12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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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jpg

■  알립니다!
1. 오늘은 사순절 제2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구원 사역을 기리며 경건하게 이 절기를 지내시기 바랍니다.
2. 다음주일 오후에는 영화감상 모임을 하겠습니다. 영화 감상하고 잠시 토론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많이 참석해주세요.
3. 이번 수요일(15일) 오전 11시에 수요성서대학을 개강합니다. 참석 가능하신 분들은 '제5장 : 예수의 동시대인 읽기 : 함께 아파함과 냉혹한 비판'을 미리 읽어오시기 바라며 많은 호응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4. 은평 토마토학교 2017년 봄학기가 어제 간사모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다음주 토요일부터 학생들과의 정식 모임이 시작됩니다. 관심 갖고 기도해 주세요.
5. 3월 25일(토)에 청소년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교육부장님과 학생들은 일정을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논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목회서신20170312_001.jpg
얼마 전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신학생들의 입학에 즈음하여 학교에서 행한 영성집회에 강사로 초청된 한 감독(감리교회의 최고위급 지도자로 연회의 행정책임자)이 설교에 적절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여 전혀 신앙적이지 설교한 것입니다.
“여기 여자 청년들 이렇게 많은데, 이 사람들 다 사모님 되든지, 아니면 목사님 되든지, 뭐 뭐든지 되겠죠. 그래도 세상에 나가서 '딴따라 딴따'는 안 할 거 아냐. 그렇지 않아요? 아니 이 중에서 몸 팔고, 술 파는 사람은 안 될 거 아니야? 아멘이지.”라고 하는가 하면 한 여학생에게 말을 걸어 ‘며느리 삼고 싶지만 나이가 많아 아쉽다’라는 취지로 말하고,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을 거론하며  “이제 병신 없는 세상 살게 되었다고. 온 세계가 난리 났어요.”라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한때 부흥사들이 교회 안에서 욕설을 섞은 설교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때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병신이나 등신, 바보라는 단어도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무엇이 적절하고 정당한 말인지 새삼스레 되돌아보게 되었고 타인을 혐오하거나 혐오를 부추기는 단어,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또 인간의 의무이자 품격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종교인, 그것도 고위급 지도자라면 더욱 주의했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 종교지도자들, 감리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감독은 즉각 사과하고 사순절 기간 동안 강단에 서지 않겠으며 성평등 교육을 받겠다고 선언하였으니 다행입니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쓴 입맛은 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이들, 장애인, 여성, 어린이, 빈민을 돌보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기독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새기고 따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시대적 기준에 맞추지 못하고 요청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구시대적 인물들이 교계의 지도자로 행세하는 것 또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참된 종교는 모든 인간에 대한 존중과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연민을 신앙의 바탕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교회와 사회  
승리가 아니라 회복인 탄핵 인용 | 방현섭
지난 10일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빅뉴스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국가적 대개혁을 하루라도 더 빨리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당사자는 여전히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토로하지만 지난 4년 동안 각종 지표와 수치는 바닥을 쳤고 국민의 주권을 위임 받은 통치자는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았으며 아무 관직도 없는 개인 비선에게 국정을 맡기다시피 하고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은 점이 탄핵의 사유임을 헌법재판소는 밝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탄핵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헌재의 선고를 인정하지 않고 또 승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헌재의 탄핵 선고가 내려지자 극우세력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경찰차를 탈취, 차벽으로 돌진하는가 하면 폭동을 선동하는 발언이 주최 측에 의해 거침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는 기각을 확신했는지 탄핵 당했을 경우를 대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여전히 청와대 관저에 머물러 있음으로 극우세력을 은근히 부추기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석기, 통진당 해산 사건만 봐도 그 판결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래도 수긍하고 승복하였기에 그나마 법질서와 민주적인 체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탄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에게 질문을 하게 됩니다. 국민의 80% 가까이가 탄핵에 동의하고 있다는 데 버스까지 대절해 반대집회에 교인들을 동원한 교회는 어떻게 참회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지요. 물론 우리교회는 그런 교회가 아니지만 결국은 교회이기에 연대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와는 다르다 해도결국 우리의 반쪽이고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탄핵 인용을 승리가 아니라 회복으로 읽어야 하며 대결이 아닌 화합, 정죄가 아니라 치유로 이해할 때 한국교회는 비로소 미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어느 수도원에서 수련을 하던 많은 수련자들이 수도원을 떠나갔다.
한 수련자가 친한 동료가 떠나려고 하자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 물었다.
“왜 자꾸 수련자들이 떠나가는 데 말리지 않으십니까?”
원장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는 입을 열었다.
“사냥꾼이 수많은 사냥개를 풀어 토끼를 잡으러 갔네.
그 가운데서 맨 처음 토끼를 발견한 사냥개는 
마구 짖어대며 그 토끼를 좇아갔지.
그러자 토끼를 보지 못한 다른 사냥개들도 짖어대며 
그 사냥개를 따라가지.
그런데 토끼를 직접 보지 못하고 따라가기만 했던 개들은
힘이 들거나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면 포기하고 되돌아오고 말아.
그러나 토끼를 직접 본 개는 자기 목표물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토끼만 보며 좇아가는 걸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련자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성공의 비결 중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집중(concentrate)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잘나도 여러가지 방면에서 다 잘 할 수 없습니다. 집중한다는 것은 한 가지 일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을 말합니다. 집을 뛰쳐나간 토끼 두 마리를 잡으려고 든다면 선택은 자명합니다. 한 마리는 포기하고 다른 한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디로 뛸지 모를 두 토끼를 잡으려고 든다면 한 눈을 팔거나 방심하는 순간 눈앞에 있던 토끼는 눈 깜짝할 사이 숲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골라 열정적으로 따라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공부를 하거나 기업을 경영하는 데서도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워드 헨드릭스는 “ 집중의 비결은 제거이다.” 고 했습니다. 집중하는 그 한 가지가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집중하는 그 한 가지가 그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무엇에 집중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식입니까? 명예입니가? 돈입니까? 세상 재미입니까? 정욕이나 쾌락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가지고, 더 알고, 더 누리는 삶을 추구합니다. (more is better)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순위로 여깁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나머지 다른 것들은 해(loss) 즉 손해, 또는 배설물(rubbish)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가 관계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고 하나님께서 바라보는 것을 우리도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는 것에 우리도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망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심판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살리는 것입니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순절기를 지내는 오늘 우리가 사는 그 자리에서 무엇이 살리는 일인가에 관심을 두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존재와 가치 「고독: 크리스천 삶에서 세 가지 명상」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조용한 장소를 갖지 못한 인생은 파괴적이기 쉽다. 행동 결과만으로 인생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더 가지려 할 것이고 그 가진 것을 지키려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웃을 하늘의 선물을 함께 나눌 친구로 보지 않고, 경계하여 거리를 유지하는 적으로 본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천천히 ‘소유’라는 착각의 탈을 벗고 자기중심에서, 나는 내가 정복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무엇이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본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아직 입을 열어 말하기도 전에 말씀하신 분, 우리가 고쳐 달라고 하기도 전에 고쳐 주신 분, 우리가 이웃을 자유롭게 하기 전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분,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기 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신 분의 음성을 듣는다. 존재가 소유보다 중요하고 일의 결과보다 그 일을 한 우리가 더 가치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홀로 있을 때 가능하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인생이 소유하고 지켜야 살 무엇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나눠야 할 선물임을 깨닫는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입에서 나오는 치유의 언어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며, 우리가 표출하는 사랑이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의 한 부분이며, 비로소 살게 된 새로운 인생도 내가 잡아야 할 소유물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선물임을 깨닫는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가치’가 우리의 ‘쓸모’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외로운 곳에 있는 소명 「고독: 크리스천 삶에서 세 가지 명상」
이른 새벽 동 트기 전 기도하러 가시는 외딴곳에 예수님이 이루시는 사명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그 외딴곳에서 예수님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르고, 자기 말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옮기고, 자기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을 할 용기를 얻는다. 예수님은 계속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장 30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을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한복음 14장 10절)

예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시는 곳, 그분의 선교가 시작되는 곳이 바로 그 외딴곳이다.
외딴곳이 없으면 인생이 위태로워짐을 우리는 안다. 침묵이 없으면 말이 의미를 잃고, 듣는 귀가 없으면 말하는 입이 힘을 얻지 못하며 거리가 없으면 가까워질 수 없다. 외딴곳이 없으면 우리 행동이 쉽게 공허한 몸짓으로 바뀌는 것을 우리는 안다.
침묵과 말, 물러남과 들어섬, 거리를 두는 것과 가까이함, 홀로 있기와 더불어 있기의 섬세한 균형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바탕을 이룬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균형을 이루는 데 마음을 모아야 한다.

■ 음악묵상  | 이관택 목사
중심이 없는 음악, 세상의 중심이 되다(마지막회)

#  힙합, 평등한 소리를 넘어 평등한 삶으로!20170312_004.jpg
힙합은 흑인음악의 본류를 대변하는 가장 최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 힙합씬은 매우 뜨거운데,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최초의 힙합앨범이라 할수 있는 슈가힐갱의 <Rappers Delight>가 발표된 것이 1979년이니까 지구별에 힙합음악이 등장한지 채 40년이 되지 않아서 가장 대중적인 음악이자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힙합은 앞에서 언급한 음악 안에서의 평등주의를 삶의 방식과 일상 문화로까지 확장시키는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힙합의 4대요소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랩(엠씨), 디제이, 비보이/걸, 그래피티이다. 특별히 4대 요소라고 불리는 것은 말 그대로 마이크를 들고 메시지를 전하는 랩퍼도, 판을 돌리며 비트를 담당하는 디제이도,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댄서도 그림(그래피티)을 통하여 무대(배경)를 구성하는 예술가도 모두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누구도 중심이 될수 없으며 이 모든 요소가 힙합임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힙합공연에서 관객이 주로 랩퍼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거니와 진짜 힙합을 즐기는 것도 아니라고 혹자는 이야기한다. 텔레비젼 예능프로그램에 가끔 3인조 힙합그룹 에픽하이가 나올 때면 민망해지기도 하는데, 진행자가 멤버 DJ 두컷에게 "당신은 도대체 이 팀에서 하는 일이 뭐냐"며 핀잔을 주고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을 때이다. 에픽하이는 2명의 랩퍼와 1명의 디제이로 이루어 진 팀이다. 타블로나 미쓰라진이 사람들 앞에서 랩을 하는 만큼 DJ 두컷의 음악도 존중이 되어야 하는데 중심/주변의 이분법적 사고체계에 너무도 익숙한 한국사회에서 과연 DJ 두컷의 존재감이 인식되기란 요원해 보인다.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DJ와 프로듀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DJ 프리미어, 닥터드레, 팀발랜드, DJ 머스타드 이름만 들어도 깜짝 놀랄만한 이들이 굳이 무대 위에서 직접 랩을 하거나 춤을 추지 않아도 힙합을 한다고 인식된다. 힙합음악이 유독 프로듀서 앨범이나 인스트루멘탈(목소리가 없고 비트만 있는 음악) 앨범이 많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힙합이 이 지구별에 어떻게 이리도 촘촘히 스며들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기상천외한 이유를 들어 함께 동행하는 구성원들을 하나씩 둘씩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 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 즉, 이 지구별의 불평등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의 강렬한 표현이 아닐까. 

중심을 거부하며 중심이 되어버린 음악처럼 우리 삶도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잊지 말자 그것이 음악이든 삶이든 강렬하고 절실한 기도는 어떻게 해서든 이 지구별을 변화시키는 법이니까. 

추천음악 : 프로듀서의 음반 그리고 인스트루멘탈 음악을 들어보시라.

Beside Me - 코드쿤스트(CODE KUNST)
https://youtu.be/M3GAkXvKQ4c
프로듀서 코드쿤스트의 최신작 양동근, 비와이, 수란이 함께했다.

Night Flight - 더 콰이엇
https://youtu.be/cPrNgUgseE4
일리네어의 더콰이엇은 유능한 비트메이커이다. 그는 지난 2006년 <Q Ttrain>이라는 이름으로 인스투루멘탈 앨범을 낸것에 이어 올봄 <Q Ttrain 2>를 발표하였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이 땅에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탄핵안이 가결되었지만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분열된 여론을 화해 통합하시고, 선고에 불복하고 혼란을 선동하는 세력을 심판하시며 해결되지 못한 상처들이 치유되는 기회가 되도록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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