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7.08.12 20:18

2017년 8월 13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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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jpg

■  알립니다!
1. 오늘은 성령강림 후 제10주일 및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미국과 북한이 격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한반도 전쟁 이야기가 나돌고 남북 간의 대화가 전면 중단된 상태이지만 하나님의 평화의 역사가 성취되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2. 어린이 여름성경학교가 내일과 모레(14-15일)에 열립니다. 성경공부와 물놀이 등 프로그램으로 진행됩니다. 임수현 전도사님과 봉사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3. 다음 주일에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주제로 강원도 인제에 공동휴가를 갑니다. 19일(토) 오전에 출발하여 1박을 하고 20일(주일)에 주일예배를 드린 후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4. 지난 주간에 열린 청소년 캠프에 학생회가 잘 참석하였습니다. 힘든 일정이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목회서신
20170813_016.jpg 지난 주간에 학생회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예수살기에서 진행하는 수련회에 참여하도록 학생들을 격려하였습니다. 아쉽게도 두 명밖에, 그것도 담임목사 아들들만 참석하였지만 그나마 잘 따라주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사실 작년에 갔었던 수련회가 재미없었는지 절대로 예수살기 수련회에 가지 않겠다고들 하는데 이번에도 또 거기에 가라고 했으니 사실 불만이 많았죠.
가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작 달래서 보낸 이유는 이번 수련회가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수영장을 못 가고 놀지를 못해서 아쉽겠습니까? 손뼉 치면서 찬양을 목이 쉬도록 부르고 물놀이하고 눈물 콧물 짜내면서 통성기도하는 그런 수련회야 널려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수련회가 한국사회를 사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도전이 되고 의미가 되는지 모르겠고 저는 동의가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예수살기 수련회는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 단원고 기억교실 방문, 위안부 수요집회 참석, 1인 시위 활동가들과의 만남 등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 상심을 당한 이들, 부조리한 세상과 맞짱 뜨며 헌신하는 이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시간들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꼭 보내고 싶었습니다. 
말로만 글로만 영상으로만 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밝히는 등불 같은 존재들을 직접 가서 만나보고 손잡아 보고 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청소년들, 기독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아들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수련회 어땠느냐고. '정말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수련회에요. 일정도 너무 빡빡하고 덥고 너무 힘들었어요...' 그리곤 한 마디 덧붙입니다. '그런데 참 의미 있는 수련회인건 맞아요.' 다행입니다. 
저도 수없이 청소년 캠프를 다녔습니다. 통성기도도 하고 찬양도 부르고 친구들과 물놀이, 게임도 하고... 그러나 어느 수련회도 제 인생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제 청소년기에 이런 기회가 있었더라면 아마 제가 좀 더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불의에 분노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생깁니다. 부디 이번 수련회가 힘들고 재미없었더라도 세상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려는 이들의 노력을 보고 만난 것은 평생 기억에 남고 그들의 삶의 가치관과 방향을 바꾸는 경험이 되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봅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
“학생회 수련회를 잘 마쳤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안산과 서울에서 열린 예수살기 청소년 캠프에 우리교회 방정빈, 방정혁 학생이 참가하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사흘 동안 안산의 세월호 분향소, 단원고 기억교실, 광화문 1인 시위 현장,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수요집회 등을 방문하여 이 시대의 아픔을 겪는 분들과 이에 저항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 날 밤에는 고교생 남학생들이 우리교회에서 잠을 자고 가기도 하였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다른 수련회처럼 물놀이도 하는 수련회가 아니어서 학생들이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이구동성으로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끝까지 잘 참석하고 온 학생들에게 감사합니다.

“여름성경학교가 열립니다"
교회학교가 구성이 안 돼서 미안한 마음 한가득인데 어김없이 여름이 다가왔습니다. 여름성경학교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올해도 구원투수가 등장하였네요. 임수현 전도사님이 자원봉사팀과 함께 올해도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해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올해는 참석하기로 약속한 어린이들이 무려! 열 명이나 참석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선생님들은 감리교회 어린이 교육계에서 명성이 드높으신 전도사님, 사모님들이십니다. 아이들 간식과 식사는 임정희 집사님이 담당해 주시고요, 얼굴 보기 힘든 우리교회 신학생 장혁 청년도 합류한다고 합니다. 14일(월)은 예배당에서 예배도 하고 공동체놀이, 찬양, 미니올림픽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15일(화)에는 인근 수영장으로 자리를 옮겨서 신나게 물놀이를 합니다.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한국은 1951년부터 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또는 한일협정)이 타결되기까지 14년간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일본과 일련의 회담을 진행하였다. 한국인의 기본적인 반감과 더불어 일본 역시 피해보상은커녕 오히려 강점기 일본의 재산에 대한 역청구권을 주장하는 등 회담은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나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면서 미국의 승인을 얻고 경제개발 명목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자 일본과의 회담을 재개, 1964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에 학생과 국민, 야당은 박정희의 한일회담을 격렬하게 반대하며 6.3 한일협정 반대투쟁을 벌였으나 끝내 1965년 8월 14일, 박정희 일당과 민주공화당은 비준 동의안 처리를 강행, 민주당 등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가결시켰다. 일본은 한국에 있는 재산을 포기하고 3억 달러의 무상 자금,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하고 한국은 대일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이 협정은 동년 12월에 발효되었다. 
후에 공개된 미국의 자료에 따르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은 6개 일본기업으로부터 5년간 6,600만 달러를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김종필도 쌀 수출과 관련하여 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보상금은 박정희 개인이 착복하여 스위스 비밀계좌에 은닉하였다는 의혹도 있다. 이 회담을 근거로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같은 개인적 피해에 대한 보상까지도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50년 후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 당사자들과의 협의조차 없이 일본과 '한일 위안부 협정'을 강행하였고 일본은 이를 빌미로 모든 책임을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자비를 청하는 소리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자비 행위를 영웅적 자기 부정의 삶으로 여기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비의 실천은 인기를 얻기 위한 상향운동이 아니라 연대를 향한 하향운동이기에 영웅적 몸짓을 하거나 두리번거릴 필요가 없다. 사실 진정한 자비 실천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다. 세상에 자비 실천의 모범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모두 작은 몸짓으로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는 우리가 마더 테레사를 얼마나 닮느냐에 있지 않고 함께 사는 이들의 사소한 고통에 얼마나 자신을 열어놓느냐에 있다. 우리는 호기심조차 느낄 수 없는 이들과 함께 기꺼이 시간을 보내는가? 척 봐서 매력이라곤 찾을 수 없는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남몸래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가?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고통이 많다. 안전한 도피처가 없는 십대, 서로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아내, 사람들이 자기보다 재산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부자,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동성애자들, 다정한 친구, 만족스런 직업, 평화로운 가정, 믿을 만한 이웃을 갖지 못한 사람들, 인생이란 정말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들의 고통.
인생 사다리를 쳐다보지 말고 내려다볼  때 우리는 어디를 가든 아파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어디에 있든 자비를 청하는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진정한 자비 실천은 우리가 있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류가족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우리가 기도하면서 발견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인류 가족의 형제자매들에게 가까이 간다는 사실이다. 하느님은 어느 한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다. 우리 중심의 성소聖所에 계시는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성소에 계신 하느님이다.
우리 중심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볼 때 사람들 중심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다. 우리를 당신 거처로 삼으신 하느님께서 사람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도록 눈을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서 악마를 만나면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악마를 만나고, 자기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면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하느님을 만난다.
이 말이 자칫 공허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당신의 거룩한 빛 속에서 삼라만상을 지으신 하느님에 의해 어디에도 울타리가 없는 무한 인류 가족의 한 식구로 존재하는 우리 자신을 기도하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돌봄의 본질  「고독 : 크리스쳔의 삶에서 세 가지 명상」
참된 돌봄은 모호하지 않다. 참된 돌봄은 무관심을 배제한다. 돌봄은 냉담의 반대말이다. ‘돌봄care’은 슬피 운다는 뜻의 고트어 ‘카라kara’에서 왔다. ‘슬퍼하다, 슬픔을 겪다, 함께 울다.’가 돌봄의 기본 뜻이다. 우리는 평소 돌본다는 것을 강자가 약자에게, 힘 있는 쪽이 힘 없는 쪽에게,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보여주는 태도로 여기곤 하여 ‘돌봄’의 어원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사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 그에게 뭔가를 해주기 전에 그의 아픔으로 들어오라는 초대를 받으면 매우 불편해한다.
하지만 자기 생애에 누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지 솔직하게 말해 보라고 물음을 받으면 우리는 우리에게 조언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한 사람이라기보다 그냥 부드럽고 따뜻한 손으로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픔을 함께 나눈 사람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절망하거나 당황할 때 말없이 옆에서 지켜주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소중한 이를 잃고 슬퍼할 때 손을 잡아주며, 무지와 병마와 싸울 때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며 무능을 함께 직면하는 친구가 진정 돌보는 사람이다.
그렇게 돌볼 줄 아는 친구는 겉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서로 함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아픔과 질병보다, 심지어 죽음보다 중요하다. 비록 우리 인생 문제에 해답을 주지는 못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인생역정을 헤쳐 나가는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들한테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위안을 받고 희망을 보는가! 키르케고르, 샤르트르, 카뮈, 함마르셸드, 머튼 가운데 누구도 인생 문제에 궁극적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그들의 저서를 읽고 자기 삶을 탐구하는데 필요한 새 힘을 얻는다. 인간의 고통에 깊숙이 들어가 자신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치유할 힘을 얻는다. 그런즉 누가 누구를 돌본다는 것은 무엇보다 함께 있음을 뜻한다. 
우리를 돌보는 이들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우리는 체험으로 안다. 그들은 우리 말에 귀 기울이며 무엇인가를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말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물을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묻는다. 또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생을 진지하게 살며 소명을 신뢰하라고 격려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곁에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다.   

■ 1주1닼 - 이관택 목사
”기찻길 옆 텐트살이  ”

20170813_018.jpg # 2017. 7. 10
“물 한모금을 위해 수백방의 눈총을 맞아야 했다.” 
텐트촌에서 한 달을 보냈다. 이곳에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고, 윤혁이와 둘이 번갈아 잠을 자며 본격적으로 지낸 지난 2주일은 더위와 장마로 인한 습도 100%의 날씨, 그리고 무엇보다 모기의 시도 때도 없는 급습으로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계획상 내년 봄까지 지낼 예정이니 이 생활도 좀 더 익숙해질 것이고, 익숙하다 못해 지루해질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생활하는 분들의 삶과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텐트촌 생활의 초반 분위기는 그럭저럭 좋은 편이다. 

텐트촌에 살면서, 또 촬영을 시작하면서 가장 직접적으로 와 닿는 문제는 물과 전기의 절실함이라 할 수 있다. 전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물’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니던가. 언젠가 가뭄이 극심했던 아프리카의 한 마을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선 마을 주민들이 물을 구하느라 하루의 대부분 보내야 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우물을 찾아 수십 킬로미터를 왕복하는 모습을 보며 참 안타까웠는데... 
이에 비견되진 못할 지라도 텐트촌에서도 물을 구하는 것은 하루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우리가 물을 얻기 위해선 용산역사에 붙어있는 이마트의 정수기까지 가야하는데, 그 여정이 그다지 수월치 않다. 용산역과 아이파크백화점을 지나는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10분 이상을 걸어가야 정수기에 당도 할 수 있는데, 헐렁한 옷차림에 물통을 들고 가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 사이를 걷는 이 과정은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백화점 판매원들과 보안요원들의 눈총은 섬뜩할 정도다. 이런 수많은 눈총을 어렵사리 무시하고, 또 피해서 정수기에 당도하면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은 정수기 앞 수선집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하필 정수기가 주차장 가기 바로 전 수선집 앞에 있어서 물을 받을 때마다 수선집 주인의 눈치가 보인다. 혹 왜 물을 받느냐며 타박이라도 줄까 노심초사하면서 1.5리터 두병에 물을 가득 채우는 약 5분 남짓의 시간은 매일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길고도 길다. 
그렇기 때문에 텐트촌 주민들은 대부분 사람이 없는 새벽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에 물을 받는다. 또 어떤 분들은 이런 눈총이 싫어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동부이촌동 공원에 가서 물을 받아오기도 한다. 걷는 거리만 왕복 1시간. 무거운 물통을 짊어지고 그 시간과 무게를 감당할 만큼 사람들의 눈총은 쓰리고 아프다. 

20170813_017.jpg 수백방의 눈총을 맞아가며 길어온 물 한 모금은 소중하다기 보다 웬수같이 느껴진다. 특히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엔 평상시보다 2-3배 물을 많이 먹게 되는데, 순간 줄어드는 물통의 수위에 마음이 철렁한다.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여러모로 불편함과 모멸감을 감수해야 구할 수 있는 물. 생각해보면 여기 주민들이 텐트촌에 나름 자리 잡은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고, 때때마다 경찰서와 소방서에서 특별 관리를 할 만큼 관공서에서도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공동수도 하나 놔주지 않는 이유는 뭘까 궁금해졌다. 이곳에 가난한 사람이 거주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일까? 이 가난한 분들의 존재자체를 불법이라 여기기 때문 아닐까.

# 2017. 7. 19
"그 방은 절대 건들지 말아야 한다"
경청이형 텐트엔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낮 2시가 넘었건만 아직도 자고 있는 거다. 오늘도 새벽까지 술을 펐나보다. 늦게 일어난 경청이형은 배를 매만지며 속이 안 좋다고 인상을 찌뿌린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얘기하며 모두와 친밀하게 잘 지내는 경청이형은 참 성격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속내는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이곳 텐트촌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언제 상대방이 자신의 뒷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겨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런 게 없다고.

함께 살지만 섬처럼 따로 따로 살아가는 모습은 바깥세상이나 이 곳 텐트촌 안이나 매한가지다. 물론 이 곳에 사는 분들은 말로 다 못할 험난한 여정의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자기만의 방이 있을 것이다. 
홍종수 아저씨는 그 방은 절대로 건들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 방 안에 어떤 상처가 있는지, 또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 알 수도 없을 거라고 얘기하신다. 솔직히 본인 스스로도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 방을 잘못 건드리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큰 사건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것이 구체적인 싸움과 갈등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완전히 마음 문을 닫아버리는 관계단절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텐트촌에는 보이지 않는 벽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종수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혹시나 내 안에도 자리 잡고 있을 ‘방의 존재’를 살펴보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묵직한 이야기들이 내 안에도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자칫 다큐 작업을 하면서 아저씨들의 방을 건드리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된다. 

# 2017. 7. 27
"여름 소나기 내리는 날에"
6월말부터 시작된 폭염이 점점 그 열기를 더해 가는 와중 무더위의 정점을 찍고 있는 요즘 텐트촌은 그야말로 핫하디 핫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간간히 내리는 여름 소나기는 텐트촌을 그야말로 사우나로 만들고 있다. 습도 100%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하루하루는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되다. 
오늘은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폭우가 쏟아졌다. 재수 아저씨가 쏘는 자리. 오랜만에 둘러 앉아 맛있는 초밥과 샐러드, 돼지껍데기 무침을 먹을라 하는데 장대비가 쏟아져 한바탕 난리가 났다. 찬기 아저씨 집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 각 자 손에 음식을 하나씩 챙겨서 고가 다리 밑으로 모였다.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 다리 밑은 그저 햇빛이 직광으로 비치지 않는 정도여서 고가다리의 존재감이 희미했지만, 오늘은 고가다리의 존재가 새삼 대단해 보였다. 빗줄기가 창살처럼 우리를 가두고 있지만 이 곳 만큼은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왕 마련한 자리이니 고가다리 밑에서 오순도순 자리를 폈다. 빗소리를 들으며 음식을 나누고 술을 나누면서 이야기 나누는 풍경이 아주 운치가 있다. 매일 먹고 자는 똑같은 공간이지만 자연의 변덕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이곳은 또 어떻게 변할까. 그 변화의 과정 중에서 또 어떤 어려움과 새로움이 있을까.  
아무쪼록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변화만 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북한과 미국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설전을 벌이고, 미국은 중국에게 북한을 압박하지 않는다고 제재를 거론하며, 남한은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하지만 제재를 거론하고 있어 북한이 외면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풀릴 것 같지 않은 헝클어진 실타래 같은 한반도이지만 우리는 평화를 이루시는 예수님의 길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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