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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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인에게 꼭 있어야 할 성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세 가지만 적어보세요.

                                                                                                                                                  

그리스도인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성품을 세 가지씩만 써보라.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하여 보라. 그리고 그 성품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는지, 어떤 경우에 이 성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등등 자신이 생각한 성품의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라.

 

그리스도인이 갖춰야 할 성품을 단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성도의 성품은 복합적이고 복잡하다. 물론 모든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단어를 정하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경건’으로 규정하겠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이 강의에서는 경건이라는 단어로 성도의 성품을 표현하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이 성도들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라고 볼 때 예수님의 삶은 한 마디로 경건한 삶이었다. 물론 ‘경건’이 특별히 종교적인 단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건’이라는 단어는 좀 더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경건한 성도의 삶을 위하여 경건의 내용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자.

 

2. 경건이란 무엇일까요? 생각나는대로 써보세요.

                                                                                                                                                                                        

1) 하씨드(히브리어), 유세베이아(헬라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특성으로써의 적극적인 실천적 친절함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애’를 발휘하는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미 7:2). 물론 이 단어의 원형은 하나님께로 돌려진다. 성경은 일반적으로 이 단어를 ‘경건한 사람’으로 번역하고 있다(시 12,1 ; 86,2).

또 개역한글성경은 ‘선인’, 표준새번역성경은 ‘신실한 사람’으로 번역되었다. 여기서의 신실함은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이다. 때로는 거룩하다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신실하고 거룩한 사람은 곧바로 성도로 해석되기도 한다(시 52:9). 즉 성도는 경건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주로 목회서신과 일반서신의 베드로후서에 주로 나온다. 신약에서 나오는 경건의 의미는 종종 영지주의(그노스틱) 이단의 견해와 대조를 이루는 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늘 최고의 신로부터 오는 특별한 지식(영지)을 얻었기 때문에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살아도 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피력한 이들이다. 마찬가지로 베드로후서의 내용에서도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이들과 비교하여 그리스도인의 경건을 제시하고 있다(벧후 1,6-7. 3,11. 2,9).

 

2) 경건한 사람들

히브리 낱말 '하시딤'은 주전 2세기 첫 무렵에 율법에 충실한 여러 무리의 유대인들이 한데 모여 이루어진 움직임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서서히 진행되는 헬라화(헬라식 생활 방식의 영향)에 저항했다. 하시딤은 마카베오 집안 편에 서서(1마카2:42) 신앙의 자유를 되찾으려고 싸웠지만, 계속해서 정치적인 자유를 얻기 위해 싸우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1마카7:12-13). 나중에 하시딤 가운데서 바리새인들이 나왔다.

 

3) 17세기의 경건주의 운동

독일의 필립 야곱 슈페너라는 목사에 의해 제창된 신앙운동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경건의 필요성을 주창한 운동이다. 이 운동은 조그마한 집회나 가정모임에서 경건한 성경연구를 하는 것, 이런 집회에서 평신도들이 책임 있는 일을 맡을 것(만인사제설), 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삶 전체를 통한 신앙의 경험과 태도임을 인정하는 것, 경건한 책과 훈련을 통해 실제적인 활동 및 경험을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 운동은 교회가 경건의 증진을 위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 부적합하다고 봐서 개인경건의 강조와 소그룹 운동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성경탐독, 개인적인 신앙체험이 강조됐고 때로는 이 개인적인 훈련과 체험이 역사적인 계시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기독교인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위임사항은 불신자의 개종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운동은 단순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오히려 과도한 배움을 배격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교회와 목회를 밀어내고 개인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 인해 기존의 교회들과 마찰을 빚었다. 또한 헌신과 도덕을 최우선적인 삶으로 간주하게 됨으로 기독교 본래적인 복음을 행위적인 복음으로 바꾸게 되는 폐단도 적잖게 있었다.

이 운동은 후에 감리교운동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웨슬리는 초기경전주의자들이 주장한 신앙의 핵심은 중요하게 계승하면서도 적절하지 않은 내용들은 수정하여 독창적인 감리교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오늘날의 개신교회에는 경건주의운동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과연 어떤 것들이 경건주의운동의 영향일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건주의와 경건주의 운동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거나 고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의자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4) 경건(敬虔)

敬 공경할 경 - 공경하다, 훈계하다, 잡도리하다, 정중하다, 예의가 바르다

虔 정성 건 - 정성, 공경하다, 단정한 모양, 굳다, 굳게 잡아 쥐다

사전에는 ‘공경하는 마음으로 삼가며 조심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누구를 공경하겠는가? 우리 민족 전통적인 정서로 말한다면 바로 하늘을 공경하는 것이다. 하늘을 공경하면 그 삶의 자세와 태도가 단정해져 함부로 몸과 혀를 굴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즉 하늘과 자신이 하나로 연합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경건이라는 한자어가 경건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린다고 볼 수 있다.

무디 목사는 말하기를 ‘경건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나의 행동이다’ 라고 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 삶의 태도와 자세, 마음가짐이 바로 경건이다. 우리 민족도 예로부터 ‘하늘이 보고 있다, 하늘 무서운 줄 알라’는 말을 함으로 신이 보고 계심을 두렵게 생각하여 삶의 태도를 바로 잡을 것을 가르쳤다.

 

동양철학에는 이와 비슷한 말로 신독(愼:삼갈 신/獨:홀로 독)이란 것이 있다. ‘홀로 있을 때에도 삼가서 도리에 어그러진 일을 하지 않는다’는 말로, 남이 알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인욕(人欲)·물욕(物欲)에 빠지지 않고 삼간다는 뜻을 지닌 유교의 중요한 수양방법 또는 실천덕목이다.

이는 〈대학 大學〉에 "이른바 성의(誠意)라는 것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다. 마치 악취를 싫어하고 미인을 좋아하듯 하는 것이니, 이를 스스로 만족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고 한 것과

〈중용 中庸〉에 "감춘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없고, 조그마한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것이 없다(고전 4,5;막 4,22와 비교).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는 데서 삼간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말이다.

남송(南宋) 때의 주희(朱熹)는 신독의 독(獨)을 자기 혼자만이 아는 곳, 또 여러 사람과 함께 있더라도 남이 모르는 자신의 마음속을 말한다고 했다.

신독은 개인적인 수양방법이면서 "안으로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했듯이 외부에 대한 실천과 연관되어 사회적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명(明) 때의 왕수인(王守仁)은 특히 신독을 중요시했다. 그는 천리(天理)를 보존하는 일과 인욕을 없애는 일이 한가지로 양지(良知)를 회복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때 남은 모르고 자신만이 아는 일을 신중히 하는 신독의 공부가 그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명나라 말기의 유념대(劉念臺) 등도 신독을 학문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루었다. 신독은 자기 내면의 성찰을 통해 마음에 내재한 인욕·물욕을 인정하고 그에 가려지지 않도록 하며, 선(善)과 악(惡)이 나누어지는 기미를 마음 속에서 신중하게 다스린다는 것이다.[이 단락은 엠파스 사전에서 발췌]

 

경건은 종교적인 개념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철학(철학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삶의 원리를 깨우치는 지혜의 학문이다)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것은 외적인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삶의 자세가 외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 그리고 도덕적 삶과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차이가 있다. 단순히 ‘바른생활 사나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초점이 ‘하늘, 하나님’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경건은 도덕을 아우르지만 더 넓은 외연을 가지고 있으며 삶의 전반과 관여한다.

경건은 항상 하늘을 두렵게 여기며 마음을 단정하게 여미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종교적으로 말한다면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음을 기억하고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삼가는 삶의 태도와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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