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대학] 정의, 공의의 하나님

by 좋은만남 posted Jul 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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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의(공의)의 하나님

성경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하나님의 매우 중요한 성품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미 언급한대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이다. 하나님의 종종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으로 공식 선포된다.

 

시 33,5 / 주님은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온 땅에 가득하구나.

사 9,6-7 /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슥 8,8 / 내가 그들을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에서 살게 하겠다.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성실과 공의로 다스리겠다.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스스로를 밝히고 있으며 많은 성경구절을 통해서 정의 혹은 공의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 고백된다.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세상은 공평과 정의가 편만한 세상이라는 고백과 기대가 충만하다. 그만큼 하나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기대에 있어 정의에 대한 갈급함은 중대하다.

하나님의 정의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정직함과 연대의식을 기본적인 전제로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는 종종 장사꾼의 저울추로 표현된다(겔 45,9-12). 올바르지 않은 저울추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의한 것이다. 같지 않거나 속이는 저울추는 특별히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불공정한 행위이다. 이는 단순하게 상거래에서의 속임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하나님-인간, 인간-인간관계와 부당한 착취를 광범위하게 포함한다. 서로가 서로를 정직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을 때에 그것은 공평하지 못한 저울추로 표현되며 더 나아가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공평하지 못한 거짓 저울추는 반드시 부의 편중을 가져오게 되고 편중된 부는 인간의 탐욕과 결합하여 인간 자신을 억압하는 요소가 된다. 주전 8세기에 광범위한 고리대금업이 횡행하였고 이를 상환하지 못하자 부동산 매매에 이어 인신매매 사태까지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

사 5,11-12;암 5,12; 암 8,4-6; 미 2,1-2;

하나님은 이를 격렬하게 비판하시면서 자신이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하신다. 그러므로 정의의 명제는 또한 경제에서의 정직함을 요청한다.

또 하나님의 정의는 종종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는 말씀과 결합하여 나타난다.[렘 7,5-7; 신 10,17-19] 고아와 과부는 종종 한 사회에서 쉽게 착취되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후견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회는(물론 어느 사회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특별히 사회 구성원 간의 긴밀한 연대감을 중요한 질서로 간주한다. 연대감이 깨져서 구성원이 홀대를 받거나 함부로 대우받는 것이 바로 정의가 깨지는 것으로 경고되었다. 하나님은 연대의식이 무너지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깨지는 것을 정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반대로 한 사회가 철저한 연대의식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배려하며 용납,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참된 정의의 완성이라고 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의미에서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정의는 인간을 수단이나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정직하게 대할 것, 경제적인 동기에서의 압제나 착취를 거부할 것, 사회적인 연대의식으로 서로를 책임질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