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 성서의 이해
1) 성경은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아무 것이나 애기해 보십시오.
2)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말씀해 보시기 바랍니다.
3) 성경이 왜 권위 있는 책 혹은 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군인은 병법을, 엔지니어는 매뉴얼을, 학생은 교과서를, 판사는 법전을 보는 것이 당연하듯이 성도는 성경을 봐야 한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이유보다도 성경을 배우는 이유가 있다. 오늘날은 배우는 시대, 정보의 시대이다. 배우지 않으면 지식이 형성되지 않는다. 지식이 없으면 위기 앞에서 무너지게 돼있다. 물론 성령의 도우심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지만 성령도 성령을 아는 지식이 있을 때 받아들이게 된다. 신앙이 큰 나무라면 신앙적 지식은 뿌리가 된다. 이 신앙적이 지식은 영적이 자연적 지식이 있다. 자연적인 지식이 영적인 지식으로 인도하는 첫 걸음이다. 훈련과 더불어 자연적 지식을 흡수하면 영적인 지식도 얻게 된다. 영성훈련이 중요하다.
1.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하여
뭐든지 알아야 한다. 면장도 알아야 해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신앙은 하나님과 나의 문제이다. 하나님은 직관에 의해서만 알게 되지는 않는다. 성경을 통해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알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를 알게 된다.
나 자신, 인류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성경은 오래된 인류의 자산이기도 하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녹아들어 있다. 인간은 DNA라는 유전물질을 포함한다. 이 DNA가 무의식을 결정하기도 하는데 말하자면 지난 수억 년의 인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통해 자신을 보게 되듯이 성경을 통해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그리고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알게 되면 자기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그렇다면 여기 머무는 동안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2. 본성적 인간됨을 이루기 위하여
나를 알고 우주의 원리이신 하나님을 알면 본성을 회복하게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성 상실의 위기를 대면하고 있다. 자아정체성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다. 본재적인 자아를 회복하기 위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인간의 출발, 인간의 심성의 원형, 그리고 그 심성의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이 성경 안에 들어 있다.
1) 인간본성 회복
아담과 하와로 시작되는 창조이야기를 통해 인간본성을 이해하게 된다.
2)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인간이 하나님(신, 신적 존재)과 어떤 관계였는가를 알면 복원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신과 인간 사이의 그 극복할 수 없는 간극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재적 존재에 의해서 가능하기에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3) 생태계와의 관계 회복
인간은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혹은 생태계, 우주만물과도 화해해야 한다. 지금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병들어 가고 있으며 파멸을 향해 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복구해야 하는데 그 근본적인 동력은 생태계와 화해하고자 하는 관계회복의 욕구이다. 성경은 유기체적인 한 가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3. 우리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것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티도 안 나는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넉넉하게 갚으신다. 그러므로 결국은 우리 자신의 삶의 풍요로움을 결과로 거둬들인다. 우리가 영적으로 지혜롭고 육적으로도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면 신앙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 삶이 더욱 풍성해 지게 하기 위함이다.
4. 실천하는 신앙으로 성숙하기 위하여
실천이 우리 삶 가운데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몰라서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구분을 모르고 자기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실천이 말로만 끝난다. 그러나 분명하고 명확하게 안다면 작은 것부터 실천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한다. 실천하는 신앙을 위해서 성경연구는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강의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거듭날 것이다.
4) 성경이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서가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각각의 단어가 주는 어감을 발표해 보십시오.
5) 성경 혹은 성서의 존재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인지 성서인지 헷갈린다. 많은 경우에 성경이라고 쓰이지만 성서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로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등의 경우에는 ‘성경전서’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성경은 성경이 아니라 ‘성서’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물론 가톨릭은 성경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리적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나름대로 성서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경전서라는 표현도 ‘전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는 것이 흥미롭다.
경(經)은 ‘날, 날실, 세로, 길 조리(條理), 도로 등의 뜻이 있는 한자이다. 이 말을 종교적인 문건, 경전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즉 종교적인 내용을 담은 문서를 경이라고 하고 우리에게는 불경이라는 말로 익숙하다. 여기에 사용된 경도 성경과 같은 한자이다.
서(書)는 글, 글자, 문자, 글씨, 서법이란 뜻과 글을 쓰다, 기록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책이라는 의미로 이 한자를 사용한다. 즉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책으로써의 한 권이라는 의미가 은연 중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떤 단어가 적절한 단어일까? 이 문제를 놓고 보수적인 교단과 자유적인 교단이 신경전을 벌이는 것을 종종 본다. 어떻게 거룩하게 쓰여진 성경을 단순하게 책이라고 보냐는 입장과 성경도 책은 분명하지 않느냐는 입장이 대립한다는 말이다.
개역한글이 1950년대에 번역되어 출판된 이래로 아직까지도 명맥을 유지하면 성도들 사이에서 읽혀지고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어, 문어체로 쓰여진 성경임에도 여전히 이 성경은 대다수의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후에 현대어로 번역된 많은 성경본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한낱 학생용 성경 정도로 전락하게 된 원인은 경의로써의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어 성경을 보면 거룩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종교적인 경전이 가져야 할 마땅한 신비감과 거룩함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당연한 하소연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경전, 혹은 거룩함이라는 베일 뒤에 가려 놓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성경의 내용은 여타 다른 신비적인 경전과는 조금 다르게 매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계급, 집단 공동체의 역사라는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배경을 통해서 선포되고 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잘 읽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거룩한 문서라고 고이 모셔놓는 것만으로는 기독교의 실천적인 신앙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책으로 이해하고 많이 자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경이든 성서이든 다 좋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의 진정한 가치는 손에 쥐고 읽고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적인 말로 화려하게 치장을 한다 해도 문자로 기록된 문서는 읽혀질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읽음으로써 사랑 받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라고 부르든 좋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읽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이 강의에서는 성서라는 관점으로 진행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