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목적
마태의 공동체는 마가의 복음서가 기록된 공동체와 동일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외부로부터, 그리고 내부로부터 여러 종류의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외부로 부터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부터의 박해에 직면하였고, 내부로부터는 이단의 문제, 배교, 배신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마태의 공동체는 마가와는 다르게 새로운 문제가 직면하였다. 히브리 성경의 성취와 율법의 지속적인 정당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그것이다.
에루살렘 멸망이후에 살아남은 종교그룹은 바리새파였다. 그들은 열심당(사회운동 그룹)이나 에세네파(메시야주의자)에 동조하지 않고 중도노선의 길을 택했다. 그들은 얌니아에 유대학자들을 모았고, 90년경에 랍비적 유대교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율법에 대한 엄격한 준수가 성전예배를 대신하였고 유대성경 39권을 정경으로 확립했다. 또한 이들은 유대교적 주체성을 흔드는 이단적 무리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 하려고 하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는 유대교로 부터 이단의 무리로 포함되었다.
70년 이전의 기독교는 유대교의 광대한 영역 안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새로이 강화된 바리새파 이후에 강화된 분위기에선 기독교가 유대교에 남아 있는 것이 허용이 안 됐다. 랍비들에 의해서 다른 이단들처럼 취급된 유대 기독교인들은 회당으로부터 축출되었다. 축출되면서 부터 기독교 공동체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1. 기독교의 주체성과 생존의 문제. 2. 바리새인들은 기독교 공동체를 가장 적대적인 집단으로 회당에서 선포한 문제. 3. 예수의 부활 소식에 대한 공격. 4. 예수를 이단으로서의 공격(예수의 주기도문은 회당 기도문인 '쉐모나 에스레'를 반대하는 것임, 예수의 율법에 대한 재해석에 대한 적개심)
마태는 이러한 상황에 답하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자료를 함께 융합한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교훈과 제자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예로 마가복음서의 이적 이야기는 마태에선 요약적으로 서술했으며, 마태는 예수의 행동 대신에 예수의 교훈을 강조한다.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