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31절에 요한복음서의 기록목적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그것만으로 기록목적이 분명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복음전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예수의 설교는 불신자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는 너무 복잡하고 궤변적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고려하자면 9장과 6:22~58이 기록목적의 의의를 갖는다. 즉 유대인에 대해 대항하기 위함이다. 유대인에 대한 대항도 유대인에게 복음서를 보여 주어 설득하기 보다는 요한 공동체의 상황 안에서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교회 안의 문서'로 작성된 것이다.
요한복음서는 주후 125년경으로 보고 있으며, 이미 이시기에는 교회(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회당(유대교)으로 부터 축출되어진 후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요한 공동체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요한복음은 이러한 숨어있는 기독교인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흐려지는 예수의 상을 강화하는 의도도 보여진다. 예를 들면, 요한복음 1장에선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예수의 족보를 나열하기 보다는 하나님으로 부터 온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도록 기록되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소개되는 예수의 교훈의 내용과 문체는 뚜렷하게 다른 공관복음서와는 다르다. 내용적인 면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와 모세의 법, 혹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기대되는 특수한 도덕적 행위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자신(예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예수)가 세상에 온 의미에 대해서 말한다. 문체에 있어서는 예수는 비유나 일상의 삶과 연관된 경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긴 철학적 설교 즉, '진리' 그리고 '자유'와 같은 추상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설교의 예 5:19~47 / 6:25~70 / 7:14~52 / 8:12~59 / 10:1~18 / 10:22~39 / 12:23~36 / 14:1~16:33
요한복음은 장로 요한이 속한 공동체의 유대-기독교인들을 위해서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불필요한 히브리 용어들 혹은 유대 실행들을 해설하는 것을 봤을 때, 아직도 많은 연구의 여지가 남아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처음엔 유대-기독교인들만을 위해서 사용되었지만, 후대에 들어서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첨가물로 편집된 것이 아닌가라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