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의 세계-사회적 세계 ③
(경제적 생활)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1. 직업
유대인들의 직업은 대체로 농사, 어업, 목축업과 수공업 그리고 소매업에 종사했다. 지중해 해변을 따라 형성되어진 평야와 갈릴리 북부지역, 그리고 요단강이 흐르는 계곡은 풍부한 농산물을 제공하는 비옥한 땅이었다. 그 중에서도 올리브와 포도, 그리고 곡식(밀과 보리)은 이 지역의 주요 생산품이다. 이 외에도 요단 골짜기에서는 아열대 지역을 찾아 볼 수 있어, 무화과와 데이트, 그리고 다양한 과일들을 수확했다. 목축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양과 염소를 사육했다. 그것으로 우유, 고기, 양털, 치즈, 그리고 가죽 등을 얻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는 그들을 위한 유용한 생활 수단이다.
2. 농업인
농업은 다시 헤롯의 일가와 같은 부유한 소유자로서 유복한 지주에 속한다. 이들은 소작인, 일일 품꾼, 노예를 통해서 자신들의 땅을 경작하게 했다. 가난한 지주들은 자신들의 땅을 직접 경작, 목축을 했다. 경작을 통해서 그 해 남은 곡식, 가축 등은 시장을 통해 팔아 이윤을 남겼지만, 불행하게도, 부유한 지주들의 독점, 높은 중과세로 많은 가난한 지주들은 빈민으로 추락하였다.
3. 그 외 직업
농업 외에도 팔레스타인 경제는 상인들과 목수, 석수, 무두장이, 도공, 도살하는 사람, 직공, 빵 굽는 자, 금속세공인, 필사공 등의 수공업자들과, 일일 품꾼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삶도 가난한 농업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일 같이 일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상인들은 강도들의 위험에 늘 노출되었다.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얻어지는 수입은 그 날 가족들이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남지 않는다. 수도인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헤롯의 건축 붐 시기엔 직공들, 기술자들의 일감이 많았다. 그래서 AD63년에 건축이 중단되자 약 18,000명이 실업했다고 전한다. 매일 행해지는 희생 제사를 위해 많은 양의 짐승이 거래되었으며, 제사를 드리기 위해 칠천 명의 제사장이 동원되었으며, 제사의식을 위해서는 장사꾼, 짐승을 잡는 자, 향료 만드는 자, 빵 굽는 자들이 필요했다.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서기관들, 관리인들, 시공자들, 금속업자들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에는 실업자들이 많았고 구걸하는 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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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난의 이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제 상황은 무거운 종교적 의무와 세금에 의해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어려웠다. 유대교는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다양한 제사와 십일조를 요구했다. 더욱이 반세겔의 성전세가 매년 모든 20살 이상의 유대 남자들에게 부과 되었다. 더불어 번제를 위한 나무세가 있었다. 헤롯의 세금으로는 농지세, 인두세, 판매세, 상속세, 관세, 상품 운송에 대한 세금 등이 있다. 이런 모든 종교세와 세금을 더하면 평균적으로 농부들에게 부과된 총 짐은 수확의 40~50%에 달했다. 농부와 직업인들은 때때로 기근과 작황이 동반되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많은 빚으로 몰락해나갔다.
(경제적 생활)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1. 직업
유대인들의 직업은 대체로 농사, 어업, 목축업과 수공업 그리고 소매업에 종사했다. 지중해 해변을 따라 형성되어진 평야와 갈릴리 북부지역, 그리고 요단강이 흐르는 계곡은 풍부한 농산물을 제공하는 비옥한 땅이었다. 그 중에서도 올리브와 포도, 그리고 곡식(밀과 보리)은 이 지역의 주요 생산품이다. 이 외에도 요단 골짜기에서는 아열대 지역을 찾아 볼 수 있어, 무화과와 데이트, 그리고 다양한 과일들을 수확했다. 목축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양과 염소를 사육했다. 그것으로 우유, 고기, 양털, 치즈, 그리고 가죽 등을 얻었다. 갈릴리 호수에서 잡을 수 있는 물고기는 그들을 위한 유용한 생활 수단이다.
2. 농업인
농업은 다시 헤롯의 일가와 같은 부유한 소유자로서 유복한 지주에 속한다. 이들은 소작인, 일일 품꾼, 노예를 통해서 자신들의 땅을 경작하게 했다. 가난한 지주들은 자신들의 땅을 직접 경작, 목축을 했다. 경작을 통해서 그 해 남은 곡식, 가축 등은 시장을 통해 팔아 이윤을 남겼지만, 불행하게도, 부유한 지주들의 독점, 높은 중과세로 많은 가난한 지주들은 빈민으로 추락하였다.
3. 그 외 직업
농업 외에도 팔레스타인 경제는 상인들과 목수, 석수, 무두장이, 도공, 도살하는 사람, 직공, 빵 굽는 자, 금속세공인, 필사공 등의 수공업자들과, 일일 품꾼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의 삶도 가난한 농업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매일 같이 일감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상인들은 강도들의 위험에 늘 노출되었다. 대부분의 직업인들이 얻어지는 수입은 그 날 가족들이 필요한 양식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남지 않는다. 수도인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헤롯의 건축 붐 시기엔 직공들, 기술자들의 일감이 많았다. 그래서 AD63년에 건축이 중단되자 약 18,000명이 실업했다고 전한다. 매일 행해지는 희생 제사를 위해 많은 양의 짐승이 거래되었으며, 제사를 드리기 위해 칠천 명의 제사장이 동원되었으며, 제사의식을 위해서는 장사꾼, 짐승을 잡는 자, 향료 만드는 자, 빵 굽는 자들이 필요했다. 성전을 유지하기 위한 서기관들, 관리인들, 시공자들, 금속업자들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에는 실업자들이 많았고 구걸하는 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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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난의 이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경제 상황은 무거운 종교적 의무와 세금에 의해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더 어려웠다. 유대교는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다양한 제사와 십일조를 요구했다. 더욱이 반세겔의 성전세가 매년 모든 20살 이상의 유대 남자들에게 부과 되었다. 더불어 번제를 위한 나무세가 있었다. 헤롯의 세금으로는 농지세, 인두세, 판매세, 상속세, 관세, 상품 운송에 대한 세금 등이 있다. 이런 모든 종교세와 세금을 더하면 평균적으로 농부들에게 부과된 총 짐은 수확의 40~50%에 달했다. 농부와 직업인들은 때때로 기근과 작황이 동반되면,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많은 빚으로 몰락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