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의 세계-사회적 세계 ⑥
(종교 그룹들)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1. 사두개파
사두개란 이름은 다윗과 솔로몬 하에서 대제사장을 지낸 사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부분 유대교 내에서 제사장에 속하는 귀족 그룹이었다. 사두개파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였다. 또한 천사 혹은 영들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사두개파는 성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기원후 70년에 멸망할 때 같이 사라졌다.
2. 바리새파
"바리새"는 분리된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의적으로 불결한 모든 것으로부터,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 내에서 엄격하고, 경건한 그룹으로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요구들을 가능한 철저하게 따르려고 시도한 자들이다. 사두개파는 죽은 자의 부활을 수용하였다. 사두개파는 부유한 자들의 그룹을 대변하는 반면, 바리새파는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리새파는 사두개파와 유대교를 통제하려고 서로 경쟁하였다. 70년 이후에 자리를 잡게된 유대교의 형태들은 바리새파 계통의 유대교이다..
3. 에쎄네
에쎄네파는 바리새파들처럼 유대교의 엄격한 추종자들이다. 에쎄네파는 성전 예배, 그리고 특별히 제사장직이 부패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주류 유대교로부터 탈퇴하였다. 이들은 공동으로 재산을 함께 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엄격한 행동 규칙들을 따르며, 수공과 농사일을 하면서, 공동으로 식사를 나누고, 성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에쎄네파들은 마을과 시골에 살았으며 보통 사회로부터 이탈하였다. 사해사본이 나왔던 쿰란 공동체가 에쎄네파의 공동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공동체는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출현하였으며, 1차 유대-로마 전쟁때 완전히 파괴되었다.
4. 시카리와 열심당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한 그룹들 중에는 흔히 '민족 운동'이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그룹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그룹들에 속하는 회원들은 로마군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였다. 그들이 '시카리'는 로마에 대한 유대의 동정자들을 죽이기 위하여 단도를 가지고 다녔다. 시카리와 열심당(Zealot)은 둘다 로마에 대한 1차 유대반란을 주도하였다. 시카리는 73년에 마사다 요새가 점령당하면서 같이 멸망 당한다.
(종교 그룹들)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1. 사두개파
사두개란 이름은 다윗과 솔로몬 하에서 대제사장을 지낸 사독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대부분 유대교 내에서 제사장에 속하는 귀족 그룹이었다. 사두개파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거부하였다. 또한 천사 혹은 영들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사두개파는 성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이 기원후 70년에 멸망할 때 같이 사라졌다.
2. 바리새파
"바리새"는 분리된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의적으로 불결한 모든 것으로부터,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 내에서 엄격하고, 경건한 그룹으로서,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요구들을 가능한 철저하게 따르려고 시도한 자들이다. 사두개파는 죽은 자의 부활을 수용하였다. 사두개파는 부유한 자들의 그룹을 대변하는 반면, 바리새파는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바리새파는 사두개파와 유대교를 통제하려고 서로 경쟁하였다. 70년 이후에 자리를 잡게된 유대교의 형태들은 바리새파 계통의 유대교이다..
3. 에쎄네
에쎄네파는 바리새파들처럼 유대교의 엄격한 추종자들이다. 에쎄네파는 성전 예배, 그리고 특별히 제사장직이 부패하였다고 주장하였고 주류 유대교로부터 탈퇴하였다. 이들은 공동으로 재산을 함께 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엄격한 행동 규칙들을 따르며, 수공과 농사일을 하면서, 공동으로 식사를 나누고, 성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에쎄네파들은 마을과 시골에 살았으며 보통 사회로부터 이탈하였다. 사해사본이 나왔던 쿰란 공동체가 에쎄네파의 공동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공동체는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출현하였으며, 1차 유대-로마 전쟁때 완전히 파괴되었다.
4. 시카리와 열심당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한 그룹들 중에는 흔히 '민족 운동'이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그룹들이 존재했다. 이러한 그룹들에 속하는 회원들은 로마군인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였다. 그들이 '시카리'는 로마에 대한 유대의 동정자들을 죽이기 위하여 단도를 가지고 다녔다. 시카리와 열심당(Zealot)은 둘다 로마에 대한 1차 유대반란을 주도하였다. 시카리는 73년에 마사다 요새가 점령당하면서 같이 멸망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