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에 잠겼다고 여겨진다. 사해는 크게 리산 반도를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데, 북쪽 부분은 길이가 약 48km, 깊이가 360m에 이른다. 반면에 리산 반도 남쪽 부분은 길이가 약 24km이고 깊이는 10m에 불과하다. 이렇게 얕은 사해 남쪽 부분이 소돔과 고모라가 파멸된 후 점차 가라앉은 지역일 것으로 여기진다.
소돔을 사해 남부로 보는 데에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나안의 지경을 대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창세기 10장 19절을 보면 가사로부터 연결되는 소돔과 고모라 등이 남부 경계임을 짐작할 수 있다. 둘째, 시날 왕 아므라벨 등의 연합군과 소돔과 고모라의 왕들이 싸울 때, 군사들이 싯딤 골짜기의 역청 구덩이에 빠졌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볼 때, 그 장소와 사해 남부 지역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셋째, 롯이 피신한 후 소알 근처의 산에 거주하며 모압 족의 조상이 되었는데, 암몬 족보다 모압 족과의 연관이 강한 것으로 보아 그 산이 모압족의 거주지인 남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요단 들은 야웨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아름답고 비옥한 곳이었다. 현재의 사해 남부를 보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말씀이지만, 아브라함이 살던 중기 청동기 시대에는 충분한 물이 있어서 농경에 적합한 비옥한 지역이었음을 고고학적으로 밝혀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한동안 이 지역에는 초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곳의 열매는 써서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곳거민의 죄악으로 나무의 열매까지도 저주를 받는 것이다. 중세 때의 한 여행객이 꼭 가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과일인 소위 소돔의 사과를 발견했는데 그 곳이 재로 가득차 있었다고 기술하였따.
소돔과 고모라는 지진과 사해 해수면의 상승으로 점점 물에 잠기게 되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사해 남쪽에는 걸어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지역이 있었다, 오늘날에는 얕은 곳도 수 미터에 달한다. 하나님의 심판이든 아니었던,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는 더 이상 사람이 살수 있는 환경이 되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