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노년에 낳은 아들로서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시기한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된다.
요셉의 애굽으로의 여정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원래 성지에는 두 개의 국제 도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하나는 해변 길(사9:1)이라고 하는 정치적, 군사적인 도로로 애굽의 삼각주에서 지중해변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요단강 건너편 지역에서 아라비아 사막 쪽으로 가깝게 지나가는 상업도로로 이를 '왕의 대로'(민 20:17)라고 한다. 이 두 도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애굽을 연결시켜 주는 주된 통로였다.
국내 도로로는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을 거쳐 예루살렘, 미스바, 벧엘, 세겜으로 올라가는 산지 길이 남북 도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그 밖의 동서 지역을 연결해 주는 여러 동서 간선로가 있었다.
주전 15세기 애굽 왕 두트모세 3세는 해변 길로 원정을 떠났는데, 애굽에서 가나안 남부인 가사까지 10일, 가사에서 가나안 중부 야함까지 11일 정도 걸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요셉이 애굽까지 오는 데 20여일 밖에 걸리지 않았을 것이며, 만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변 길에 있던 애굽 초소를 피해가려 하지 않았더라면 한 달이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곱과 그 가족들이 애굽에 들어간 시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다만 몇 가지 성경 내용이 그 시대를 셈 족 계통으로서 애굽을 정복하고 왕국을 세운 힉소스 시대로 묘사하고 있다. 힉소스 시대에는 이전의 왕조와는 달리 나일 삼각주 지역에 있는 아바리스에 도읍을 정하였는데, 이 지역이 바로 야곱 가족이 살던 고센 땅이다. 힉소스 시대는 말과 수례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힉소스 시대에는 셈족 이름의 여러 왕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방 민족인 요셉의 출세를 납득할 수 있다.
젊은 시절 고향 산천을 떠나 이역 만리 하란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낸 야곱의 장례는 70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애굽에서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데 70여 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야곱은 애굽에 묻히지 않고 가나안의 막벨라 굴에 묻혔다. 막벨라 굴에는 아브라함과 사라와 이삭이 이미 매장되어 있엇는데 이러한 공동 매장 습관은 족장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