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이야기
홍영의 전도사(중계교회)
1. 성서시대 '돼지'의 위치
고대 이스라엘 도시에서 돼지는 개와 함께 거리를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돼지는 지저분한 것을 먹었고 개는 사람의 피를 비롯해 썩은 음식도 마다않는 식성을 가졌다. 이런 이유로 부정하고 불결한 것을 표현하는 비유에는 개와 돼지가 늘 함께 따라다녔다.(마 7:6/ 벧후 2:22)
돼지는 소처럼 우유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양처럼 털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대신 풍성한 고기를 제공해 고대 근동에서는 풍부한 단백질의 원천이 되었다. 땀구멍이 없어서 늘 그늘진 환경과 습지를 좋아한다. 몸을 시켜줄 땀샘이 없기에 장시간 더운 곳에 노출되면 일사병으로 죽고 만다. 그래서 돼지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의 몸에 진흙을 발라 돌아다닌다. 이것이 사람에겐 더러운 인상을 남겨주게 된다. 특히 돼지는 음식을 먹을 때 그 자리 여기저기를 더럽히며 게걸스럽게 먹는다. 이와 같은 돼지의 불결한 습관뿐 아니라 돼지를 부정한 음식으로 규정한 모세의 율법 때문에라도 돼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혐오스러운 동물이 되었다.(신 14:8)
2. 탕자의 이야기
예수님이 말씀하신 '탕자의 비유'에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아버지를 졸라 유산을 받아 내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지내다가 결국 비참한 신세로 전락한 둘째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상류층의 집안에서 태어나 괜찮은 삶의 질을 누리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최하류의 인생으로 강등되었다. 둘째 아들이 처한 비참함은 돼지와 쥐엄 열매로 유대인들은 묘사한다. 쥐엄 열매는 그 자체로 가난과 궁핍 그리고 비참함을 상징한다. 쥐엄 열매는 최하층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먹던 음식이다. 거기에 불결하고 부정하기에 만지는 것 자체를 꺼리는 돼지도 같이 등장시킨다. 한마디로 탕자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최고의 밑바닥 인생을 보여준다.
3. 거라사 광인과 돼지
군대 귀신 들린 거라사 광인의 이야기는 무척 유명하지만 종종 '어떻게 이스라엘 땅에서 대규모 돼지 사육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거라사라는 도시는 10개 정도의 도시가 모여서 만들어진 연합도시인데, 이중 일부 도시들은 블레셋과 가나안 원주민 도시도 포함되어있었다. 예수님이 만난 광인은 유대인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 근처 돼지 사육장은 이방인들의 소유였을 것이고, 예수를 쫓아낸 동네 사람들도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여튼 이스라엘 민족 뿐아니라, 이 시대를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인식했다. 그래서 어떤 문서에도 돼지를 제물로 받쳤다는 문서는 없다. 돼지가 제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악한 일들, 상황들이 발생했을 때, 악령이나 저승 세계의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로 불태우거나 매장했다. 군대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가 수장된 것도 이 시대의 흐름과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