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7.09.30 20:58

2017년 10월 1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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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1.jpg

■  알립니다!
1. 오늘은 세계성찬주일, 왕국절 제6주일 및 성령강림 후 제17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2. 가족 친지가 함께 모여 감사하는 민족의 큰 명절 추석입니다. 장거리 오가시는 교우님들은 각별히 안전에 유의해 주십시오. 또한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며 나눔이 있는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도록 성숙한 기독인의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3. 다음 주일 오후에는 생활과 묵상 나눔 기도회로 모입니다.
4. 이번주 수요성서대학은 명절이므로 휴강합니다. 다음주(11일) 성서대학은 함옥분 집사님 댁에서 모이게 되어 조금 일찍 만나 출발하겠습니다. 자세한 시각은 추후 알려드리겠습니다. 또 18일에는 야외수업으로 진행할 계획입니다. 일정을 확인해 주십시오.
[10월 생일 축하] 유동숙 집사님(3일, 음8/14), 윤혜민 청년(15일), 임미화 집사님(22일)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목회서신
1517년 10월, 독일에서 마틴 루터라는 한 신부이자 신학교 교수가 비텐베르크대학 교회의 정문에 논쟁적인 반박문을 붙이면서 가톨릭이 분열되었고 개신교(프로테스탄트)라는 기독교 분파가 생겨났습니다. 그 해의 분열이 기독교에서 일어난 첫 분열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기독교는 동방기독교와 서방기독교로 나눠진 상태였고 1517년의 분열은 사실 서방기독교의 내부 분열이었습니다. 이후 개신교는 수많은 분열을 거듭해서 개성충만한 간판들을 걸었습니다. 아무튼 1517년의 이 분열은 종교개혁(Reformation)이라는 이름으로 개신교회들 사이에서 기념되고 있고 어느덧 50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루터가 교회를 비판한 것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교황청의 착취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역대 교황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 거대한 성전과 궁전을 짓고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치장하는 일에 몰두하였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속 권력과 타협하였으며 면죄부라는 기발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루터는 신의 이름으로 인간의 탐욕을 채우려는 가짜 종교, 사이비 종교인들을 규탄하고 거듭날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뜻깊은 해를 기념하기 위해 개신교회가 가장 성공한 국가 중 하나인 한국의 개신교회들도 많은 행사를 준비하고 기념행사를 위해 열심이라고 합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독일 호텔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의 대형 개신교회, 교인들에 의해 예약이 완료되었고 방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식들에게 교회 담임직을 물려주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헌금을 개발해 독려하기 바쁘고 그렇게 거둔 헌금으로 더 크고 화려한 예배당을 짓지 못해 안달이며 더 유명한 목사가 되고 싶어 동분서주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들이 종교개혁 운운하고 있으니 기가 막힙니다. 제가 너무 비판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솔직히 전 그런 종교개혁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는 남기평 목사님께서 종교(기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 특강을 해주셨습니다. 좀처럼 다루지 않았던 주제이지만 재미있게 말씀해 주셔서 저와 교우들이 다 즐겁게 경청하였습니다. 남 목사님의 특강은 다음 달에 한 차례 더 진행될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의미에 대해 우리 교우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좋은만남 이모저모20171001_04.jpg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북한선교”
지난 금요일, 광화문 감리회본부 빌딩 16층 본부교회에서 선교국 주최의 '2017 사회선교포럼'이 "교회!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공동체"라는 주제로 열렸습니다. 오전 10시 30분, 강승진 서울연회 감독님의 설교로 시작된 포럼은 기독교개혁의 주역인 마틴 루터와 감리교회의 아버지 존 웨슬리의 사회선교를 살펴보는 박사님들의 강연으로 이어졌고 오후에는 각 분야별 목회 현장에서 사회 선교를 실천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사역을 소개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환경선교 이야기(신석현 목사 / 백석교회), 4.16 세월호 가족의 이웃이 되어(박인환 목사 / 화정교회),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인권선교(진광수 목사 / 고난함께), 아프리카 난민과 함께하기(김황옥 목사 / 평화교회), 다문화 사회에서 이주민과 함께하기(송연순 목사 / 부천이주민노동자복지센터)의 발표와 더불어 제가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북한선교'라는 주제로 발표하였습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던 90년대 중반, 개신교를 포함한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북녘 동포 돕기 범국민운동을 시작하여 남북 화해와 교류에 많은 역할을 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퍼준 쌀, 미사일 되어 돌아온다'는 식으로 인도지원을 반대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대북 인도지원을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하게 사역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용기를 얻고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울러 남기평 목사님과 안주영 청년도 이 포럼에 함께 하여 더욱 반갑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외쳤다.
“엄마, 내가 연극에 뽑혔어. 연극에 뽑혔어.”
엄마는 기뻐하며 물었다.
“아주 잘 됐구나, 그런데 네가 맡은 역은 무엇이지?”
아들은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다.
“응, 인기있는 가수의 역을 맡은 주인공이 노래할 때
그 가수에게 박수를 보내는 군중 중에 하나야.”
저녁에 엄마는 퇴근한 아빠에게 이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난 오늘 아들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어요.
우리 아들이 그토록 형편없이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맡고도
그렇게 기뻐하는 데...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그래 보지 못했어요.”

조연을 맡더라도 주연처럼 연기하십시오.
그런데 인생의 조연은 없습니다.
최선을 다한 삶이 최고의 삶입니다.
돈을 벌지 못해도 기쁜 일을 하고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절대행복의 삶입니다.
인생에는 각본이 없습니다.
지도도 없습니다.
각자의 길은 각자가 개척해서 사는 것입니다.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주작처 입처개진)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참되게 하라.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안녕이라고 말하기  「영혼의 양식」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과연 죽은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는 뒤에 남아 있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어떻게 죽는지는 남은 이들에게 깊이,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절망 속에서 고통스럽게 주는 것보다 편안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감사하면서 죽는다면 남은 가족과 벗들이 기쁨과 평화 안에서 기억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우리가 가족과 벗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감사하면서 죽는 것이다 감사하면서 세상을 이별하는 죽음은 남은 이들을 고통과 자기 비방 없이 자유롭게 살도록 도와준다.

문턱에서  「거울 너머의 세계」
수술한 며칠 뒤에 나는 내가 죽기 않고 회복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내가 해방된 곳에서 세상으로 되돌아왔다는 단순한 사실을 직면해야 했다. 살아난 것이 기뻤지만 한편 깊은 차원에서는 왜 예수님이 나를 집으로 부르시지 않았는지 궁금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렇다. 나는 분명 친구들한테 돌아와서 행복했다. 그러나 여전히, 어째서 이 ‘눈물의 골짜기’로 돌아온 게 나를 위해 좋은 일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했다. 가족과 공동체와 좀 더 살게 된 것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러면서도 이 땅에 더 산다는 것이 더 많은 갈등과 아픔, 고뇌와 외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속으로는 내가 회복된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내 물음은 주로 이런 것이었다. ‘왜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가?’, ‘어째서 나는 아직 하느님 집에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가?’, ‘이토록 사랑이 모호하고 평화를 맛보기 어려우며 기쁨이 슬픔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
물음은 여러 경로로 나를 찾아왔고, 나는 내가 그 대답 속으로 천천히 성장해 들어가야 함을 알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게 될지 모르지만 사는 동안 나는 언제나 이 물음을 던지게 될 것이고, 아마 숨이 멎는 순간까지 떨쳐 버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물음이 나를 이끌어, 하느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면서 아직 채워지지 않는 그분 사랑을 온몸으로 세상에 선포하라는, 하늘이 내게 주신 소명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 1주1닼 - 이관택 목사
”기찻길 옆 텐트살이   ”

가을아침, 자연스럽고 향기롭게
2017.9.27(수)

20171001_03.jpg 벌써 가을이다. 지난 늦겨울 쌀쌀한 바람을 헤치며 두렵고 떨리는 발걸음으로 용산역 텐트촌에 처음 방문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가을이 되었고 곳곳엔 노란 낙엽카펫이 깔려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앙상하고 쓸쓸해보였던 나뭇가지는 봄이 되자 파릇한 새싹과 연분홍 벚꽃잎으로, 여름이 되자 울창하다 못해 검푸른 숲으로 변해있었는데 요사이 다시 앙상했던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준비 중인 모양이다. 울긋불긋한 노란 이파리들이 흩뿌려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름다움에 넋을 놓다가도 유속과 같이 빠른 시간의 흐름에 깜짝 깜작 놀란다. 이렇게 하염없는 시간을 헤치며 텐트촌에 머물다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 것이겠지. 문득 여기에 살고 계신 아저씨들과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어떻게 여기에서 10년이나 지내셨어요?" 
"그냥. 살다 보니 그리되었네."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시간의 변화가 얼마나 빠른지, 힘겨운 거리의 삶이 얼마나 빠듯한지, 한편으로 계속 변화 반복되는 공간과 시간이 우리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에 대해 간과한 질문이었다. 
추위를 뚫고 다가왔을 봄의 따사로움. 정신을 잃게 만들만큼 무더운 여름날 속에서의 치열함. 서늘하지만 상쾌한 가을공기가 가져다주는 평화로움.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봄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이 간직한 자연스러움, 즉 하나님의 창조 질서는 우리로 하여금 견디게 하고 이겨내게 하고 살아가게 하신다.

"삐-익-" 
그때 시끄러운 기차의 경적소리가 귀를 따갑게 하며 나의 상념들을 앗아가 버린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저놈의 기차소리는 변하지 않는다. 밤이고 낯이고 삑삑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와 상관없이 자신의 목적과 이익에 따라 쉬지 않고 달리는 열차의 모습이 무섭게 느껴진다. 이 열차의 무섭고도 미련스런 모습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닮아 있다. 자연스러움으로 부터 달아나고 벗어나서 자신만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눈과 비와 바람을 다 피하며 안온하고 안락한 삶을 살면서도 역사 이래 가장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세대가 과연 누구인가? 

20171001_02.jpg 미친 열차 마냥 저마다의 레일 위에서 달리기 경쟁에 몰두하는 작금의 한국사회를 보며 텐트촌 아저씨들은 숲 바깥의 세상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미 한번 밀려나버린 트라우마의 경험이 시시각각 발걸음을 무겁게하기도 하지만 숲속에서 체험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힘을 그나마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숲 바깥의 세상은 쓰러져 있는 자신에게
손 내밀어주기 보다 외려 짓밟고 손가락질 했던 곳이며, 수많은 거절과 냉대를 경험해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무딤과 문명의 야만성은 한 영혼에게 이토록 지워지지 앓을 상처를 남긴다. 누군가의 상실과 억울함에도, 마땅한 역사의 진보와 시대적 요청 앞에서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이 무디고 무딘 세상에서 기댈 곳 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숲 밖으로 나올 것을 종용하는 것, 아니 혹여 상상하는 것마저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다음 주엔 추석이 있다. 아저씨들은 벌써부터 추석을 어떻게 지낼지 걱정들이 많으시다. 여러 사정으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아저씨들로서는 명절 기간을 잘 견뎌내는 것만도 큰일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외로움, 죄책감, 소외감 등 여러 감정들이 요동치는 이 기간은 연중
가장 힘겨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이번 명절은 연휴가 길어진 만큼 견뎌야하는 시간도 그 어느 때보다 길어졌다. 하지만 그 만큼 소외된 이들을 향한 사회의 관심이 깊어졌는가. 실제적인 복지 행정 체계가 강화되었는가. 이 격차는 사회전반이 섬세하게 헤아리고, 온전하게 풀어가야 할지일 것이다. 

가을의 길목에서 여러 생각이 번잡스럽게 얽혀있다. 하지만 기품 있게 떨어져있는 낙엽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결국 나뭇가지 끄트머리에 있어도, 땅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썩어 없어져 거름이 되어도 하나님이 보실 때 저마다 반짝거리는 소중한 잎사귀가 아닌가. 
시대의 야만과 차별, 그리고 만연한 불평등 앞에서 여전히 큰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상황과 역사를 변화시켜 나가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고백해 본다. 이 가을 아침,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고 향기롭게 텐트촌 아저씨들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얼굴 여윈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해주시고, 앞길을 인도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나 역시 그 일에 동참하겠다는 또 한 번의 다짐을 되뇌어 본다.

■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가족과 친지가 모여 반갑게 인사하고 혈육의 정을 나누는 민족의 큰 명절을 맞이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명절을 기쁨보다는 아픔과 외로움으로 맞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옥에 갇힌 양심수들,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 병으로 고통 당하는 이웃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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