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이야기 - 첫 번째
성서를 잘 알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지형’을 알아야 ‘성서’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고, 훨씬 잘 경험으로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자주 범하기 쉬운 오류는 성서를 큐티나 교리책으로 보기 때문에, 성서에 대한 온전한 구성적 이해보다는 나의 삶에 적용하는 부분이 강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성서는 문자로서만 존재하게 돼서, 이해의 차원보다는 묵상과 경전의 차원으로만 머무르게 된다. 따라서 오늘 시간과 같은 공부들이 필요하다.
먼저, 이스라엘은 면적으로 봤을 때에는 작은 나라 중 하나(세계 151위, 약 770 만명-한반도의 10분 1 / 대한민국 109위)이다. 서부는 해안평야, 산악지대, 중앙 대협곡, 동부 산악지대로 나눌 수 있다. 특히 서쪽에 위치한 ‘지중해’와 남쪽에 위치한 ‘아라비아 사막’이 이스라엘의 날씨를 결정하는 중요한 두 요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날씨를 이야기할 때 ‘바다와 사막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황사와 비슷한 모래 바라이 이스라엘도 4,5월경 아라비아 사막에서 불어오는데 이를 ‘함씬’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은 함씬의 뜨거운 열풍이 불면 대낮에도 집집마다 차문의 셔터를 내리고 바깥 외출을 삼간다. 함씬의 열풍은 광야에 자라고 있던 풀과 꽃들을 바싹 말리고 그때부터 광야는 그야말로 황량한 황무지로 변한다. 함씬의 뜨거운 열풍으로 인해 맥없이 사라지는 광야의 풀들과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성서는 ‘동풍’으로 밤새도록 말리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동풍은 삽시간에 모든 것을 말리는 건조한 바람이지만 서풍은 비를 몰고 오는 습한 바람이다.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편서풍의 비구름은 서부 해안평야에 풍성한 비를 뿌리지만 예수살렘이 위치한 해발 600-1000m의 선부 산악지대를 넘지 못하고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소멸된다. 보통 90%의 비를 서쪽에서 뿌리고 나머지 10%의 비를 동쪽에 뿌리는데, 이러한 지형적 고도 차이와 편서풍의 비구름, 그리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함씬의 열풍으로 인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족의 자연 환경은 드라마틱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의 동쪽에 유대 광야가 형성되는 중요한 이유다.
유월절이 있는 4월경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경까지 이스라엘에는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이어진다. 이때 유대 광야는 실로 바싹 마른 돌멩이밖에 보이지 않는 황무지가 된다. 그러나 10월 초막절 명절을 지내고 나면 이른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황무지와 같던 광야에 작은 풀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그래서 성화에서 보거나 삽화에서 보는 광야는 텍사스 목장을 배경으로 했거나, 대관령 목장을 배경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부 산악지대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서쪽의 농경지에서는 농사를 짓고 동쪽의 광야에서는 광야에서는 목축을 하던 광야의 민족이다. 농한기에는 목축을 하고 농번기에는 추수를 하는 농경과 목축의 투잡이 동시에 이뤄졌다.
광야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서 ‘바다’는 두려움과 혼돈의 장소였다. 광야의 백성이 이스라엘에게 바다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은 고대 근동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바다속에 산다는 괴물 때문이다. 바벨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티아마트, 용, 리워야단, 악어, 라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바다가 육지를 다시 삼키지 않을까 하는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아의 홍수이다. 그래서 바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메시아의 날에 임할 ‘새하늘 새땅에서 바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건기와 우기가 교차하는 환절기에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는 광풍이었다. 제자들은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 한복판에 배가 뒤집히고, 결국 바닷속 괴물인 리워야단의 밥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모든 신경이 마비되었다. 바울 일행이 지중해의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때는 금식하는 절기, 즉 ‘대속죄일’이 지난 때였다. 대속죄일은 10월에 있는데, 이때는 지중해에 유난힌 광풍과 해일이 많이 일었다.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로마제국의 해상법은 5월 26일부터 9월 14일까지를 항해에 안전한 기간으로 권하고 있다.
광야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에게 바다와 호수는 모두 히브리어로 ‘얌’이다. 호수, 바다, 지중해와 같은 대양이 히브리어로 얌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의 백송을 보여 주는 문화인류학적 증거는 히브리어에 ‘광야’를 나타내는 단어가 무려 7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미드바르, 네게브, 아라바, 찌야, 예쉬몬... 시온은 히브리어로 찌온이라고 하는데, 이는 광야를 의미하는 ‘찌야’에서 온 단어이다.
솔로몬 성전에 있던 ‘놋바다’다. 번제단과 성소 사이에 위치한 놋바다는 제사장들의 정결레를 위해 물을 담아 두던 ‘놋으로 만든 큰 대야’를 말한다.
유대인들은 요일을 말할 때 절대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과 같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우상 숭배와 관련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로 쓰는데 이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7일간의 천지창조와 관련 된 성서적 표현이다. 그래서 사흘 되던 날은 안식일로부터 삼일 지난, 화요일을 말한다.
셋째 날은 바다로 덮여 있던 지구에서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육지)이 드러난 날이기 때문이다(보기시 좋았더라 2번). 셋째 날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최고의 기쁜이 있는 축복된 날의 대명사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두 배의 축복이 있는 셋째 날, 즉 화요일 결혼식을 많이 한다.
그늘은 바로 참된 안식을 의미한다. 그늘은 광야의 날씨에서 주변보다 10도 이상의 온도 차이를 보일 정도로 시원하다. 예루살렘은 돌집을 짓는데, 돌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보온효과를 준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태양은 홍해를 건넌 감격과 찬송시를 일거에 날려 버릴 만큼 혹독한 시련이었다. 광야의 태양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출애굽기에 수시로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불만은 당연했으리라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방위 개념은 광야라는 환경을 함께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우편은 바로 남쪽에 해당한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데, 정오의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 있는 곳은 남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