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풍습이야기 5
십계명을 받고 내려온 모세가 얼굴을 가린 수건은 과연 무엇일까?
(터번과 베일)
-남자들이 착용한 터번
출애굽기 34:29-33
금송아지 우상 사건 때문에 화가 나서 십계명 돌판을 바닥에 던져 깨뜨린 모세는 이 문제를 중보기도로 매듭짓고 다시 시내 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았다. 40일 주야를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는 십계명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때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로 인해 빛이 났다. 이를 본 백성이 모세를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자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우리말 성경에 ‘수건’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닦는 그런 수건이 아니다. 이것은 성서시대 때 몸에 착용하던 다섯 가지 의상 중 하나인 ‘터번’을 가리킨다. 햇빛이 강한 중동지방에서는 태양과 모래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에 ‘터번’을 쓴다. 남자의 경우 터번을 쓴 뒤 이를 조이는 헤어밴드를 착용했는데, 헤어밴드는 남성미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자들은 착용하지 않았다. 모세는 얼굴에서 나는 광채 때문에 헤어밴드로 조여 준 터번을 풀어서 얼굴을 가린 듯하다.
바울은 새 언약과 옛 언약을 비교하기 위해 터번으로 얼굴을 가린 모세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새 언약의 도래와 함께 옛 언약은 점차 소멸될 것이며 새언약이 이를 덮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3:12-18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조명을 받으면 얼굴을 가리고 있는 터번이 벗겨질 것이다. 세상의 신, 즉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하도록 터번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가리고 혼미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 빛을 그대로 받고 또 우리의 얼굴을 통해서 그 빛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후서 4:3-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그 자체이고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 빛을 모세처럼 직접 받고 있는 자들이다.
히브리서 1:3
-여자들이 착용한 베일
남자들이 ‘터번’을 쓴다면 여자들은 ‘베일’을 쓴다. 성서시대 여자들은 외출할 때 얼굴을 베일로 가리곤 했다. 이러한 남성용 터번과 여성용 베일이 우리말 성경에는 ‘너울’, ‘화관’, ‘면류관’, ‘관’, ‘모자’, ‘수건’ 등 다양한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머리에 두르는 천을 가리킨다.
창세기 24:65, 아가 4:1. 이사야 6:3, 욥기 29:14, 에스겔 24:17, 스가랴 3:5
성막에서 봉사하는 제사장은 세마포로 만든 특별한 터번을 머리에 둘렀다. 이것이 우리말 성경에는 ‘관’으로 번역되어 있다.
출애굽기 28:39
성서시대 나병환자는 윗입술 위까지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했는데, 이는 모세의 율법이 명령한 내용이다.
레위기 13:45
세례 요한은 왜 예수님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을까?
성서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몸에 걸치던 다섯 가지 옷 가운데 마지막으로 신발을 다룰 차례다. 신발을 옷의 분류 속에 넣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옷에 속했다. 오늘날과 같은 운동화는 없었고,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샌들이 성서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발을 보호하는 신발이었다.
샌들은 가죽이나 나무로 발바닥 밑창을 만들고 그 위에 ‘신발끈’ 혹은 ‘신들메’로 불리는 끈을 묶었다.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밖에서는 샌들을 신고, 집 안에서는 맨발로 다녔다. 하지만 종은 밖에서도 맨발로 다녔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 째 아들은 유산을 두둑이 챙겨 아버지 품을 떠나 먼 나라로 갔지만 결국 모든 것을 탕진하고 종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그가 맨발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신을 바꿔 준 것이 아니라 아들의 맨발에 신을 신겨 주었다.
누가복음 15:22
집 안으로 들어오고자 신을 벗을 때는 신발끈을 풀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당시에는 종들이 하던 일이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은 ‘신발끈 푸는 것을 제외하고’ 종이 하던 것처럼 스승을 절대적 존경심을 가지고 섬겼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종이 되어 신발끈 풀어드리는 것도 기쁨으로 하겠으며, 더 나아가 그것도 자신에게는 과분한 직분이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메시아만을 높였다. 신발끈은 당시 가장 하찮은 물건의 대명사였는데,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은 인해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에게서 하찮은 신발끈도 취하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창세기 14:23
스스로 자원하여 신발을 벗는 것은 슬픔과 조의를 표하는 행위였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하여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자 서둘러 요단 동편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때 감람 산을 넘어가며 신발을 벗고 맨발로 울면서 갔는데, 이는 아들의 반역으로 인한 슬픔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사무엘하 15:30
몸에서 가장 더러운 발과 그러한 발을 보호하는 신발은 더러움의 상징인데, 이러한 신발을 벗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을 나타내는 행위였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신발을 벗고 경의를 표했다.
출애굽기 3:5, 여호수아 5:15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한 선지자로,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마리아의 부자들은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하찮은 신 한 켤레를 받고 종으로 팔아넘겼다.
아모스 2:6
재미있는 것은 신발이 때로는 ‘소유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사용된다는 점이다.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는 자신의 권리를 보아스에게 팔면서 자신의 신발을 건넸다. 이는 자신에게 있는 소유권을 넘긴다는 의미였다.
룻기 4:7-8
욥기는 왜 욥의 세 딸 이름만 기록했을까?
(화장품과 향료 그리고 장신구)
욥기 42:13-15
‘의인이 이 땅에서 받는 고난’에 대한 영적 통찰력을 주는 욥기의 말씀을 가지고 전혀 의외의 주제인 화장품과 향료 그리고 장신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욥은 노아와 같이 당대의 의인이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인해 동방에서 가장 큰 재력가가 되었다.
욥기 1:3
하지만 사탄의 참소로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은 물론 자식들까지도 잃고 말았다. 욥 자신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재에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극심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은 욥에게 하나님은 갑절의 복으로 보상해 주었다.
욥기 1장에는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등장한다.
욥기 1:2
하나님은 모든 고난의 시험을 잘 통과한 욥에게 7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을 다시 주셨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론에서는 자식들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다가 결론에 이르러서 자식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는 점이다. 더구나 7명의 아들 이름은 한 명도 언급되지 않고 3명의 딸 이름만 소개되고 있다.
욥 42:14
욥의 세 딸의 이름과 그 의미를 통해 성서시대의 화장품과 향료 그리고 장신구가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다. 성서시대 여인들은 화장품과 향수를 사용했을까? 물이 귀한 중동 지방에서 그들은 과연 며칠에 한 번씩 목욕을 하고 또 빨래를 했을까? 아마도 목욕과 빨래는 연례행사일 만큼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면 몸이나 옷에서 나는 불결한 냄새를 어떻게 참았을까? 이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사용했다면 혹시 악취 제거제의 대용은 아니었을까?
-욥의 셋째 딸은 ‘눈 화장’을 좋아했다?
욥의 자식들 이름이 결론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그 이름들 속에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욥의 셋째 딸 이름은 ‘게렌합북’이다. ‘게렌’은 히브리어 발음으로 ‘케렌’인데, ‘케렌’은 소나 양과 같은 동물의 ‘뿔’을 가리킨다. 액체나 가루를 보관하는 통으로 사용되었다.
‘합북’은 히브리어 발음으로는 ‘하푹’으로, 여기서 ‘하’는 영어의 정관사인 ‘the'에 해당한다. 우리말 성경은 케렌하푹을 게렌합북으로 표기하고 있다. '북'은 히브리어 발음으로 '푹'인데, 이것은 'kohl’로 불리는 ‘눈 화장에 쓰이는 검은 가루’를 가리킨다.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kohl'에서 영어 단어인 ‘알코올’(alcohol)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므로 욥의 셋째 딸 이름인 ‘게렌합북’은 그 의미가 ‘눈 화장에 쓰이는 검은 가루를 넣는 보관함’이 된다. 사람의 이름으로 쓰기에는 참 독특한 단어임에 틀림없다.
이집트와 바벨론 지역에서 눈 화장은 보편적이었는데, 햇빛과 곤충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kohl'은 방연석으로 불리는 광물의 가루인데 짙은 검은색을 띤다. 이것을 눈썹에 발라서 눈을 크게 밝게 보이도록 했다.
눈 화장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모두 부정적인 예로 등장한다. 아합과 이세벨 부부가 바알을 숭배하자 하나님은 예후를 세워 아합집안을 철저하게 숙청하신다. 예후는 하나님의 음성에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이 일을 잘 감당했다. 이스르엘 별궁에 있던 이세벨은 반역자 예후가 찾아온 것을 보고 자신의 최후가 입박했음을 알았다. 이때 이세벨은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며 왕비로서 마지막 위엄과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열왕기하 9:30-31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는 유다의 패역한 죄를 음행하는 여인과 비교하면서 ‘눈에 화장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예레미야 4:30, 에스겔 23:40
-욥의 둘째 달은 계피차를 좋아했다.
욥의 둘째 딸 이름인 ‘긋시아’는 히브리어 발음으로 ‘크찌아’인데, 이것은 계피를 가리킨다. 계피는 몸과 옷에 뿌리는 향수로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잠언 7:16-17, 시편 45:8, 에스겔 27:19
고대 중동에서는 향수를 무척 좋아했는데,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향료 만드는 자가 브살렐이었다.
출애굽기 37:29
성경에는 계피 외에도 몰약, 유향, 나드 등 많은 향료들이 등장하는데, 이런 향료들은 성전에서 기름 부을 때 사용하는 관유, 화장품, 의학용 약재, 장례용 향품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성전 안에서 사용하는 관유는 거룩한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했고 다른 용도 사용하면 엄격한 형벌을 받았다.
출애굽기 30:33
성서시대 향수와 향료는 금과 은처럼 귀했는데, 히스기야 왕은 자신의 보물창고에 쌓아 놓은 금은과 향품을 바벨론 사절단에게 보여 주었다가 이사야 선지자한테 크게 꾸지람을 들었다.
열왕기하 20:13
사람의 뇌에는 5만 가지가 넘는 냄새를 구별하여 인식하는 센서가 있다고 한다. 향료의 향기 오랫동안 뇌에 저장되듯이, 잠언 기자는 친구와의 우정을 향료의 아름다운 향기에 비유하고 있다.
잠 27:9
대속죄일이면 지성소 안에서 온갖 향을 태워 연기를 자욱하게 하는데, 대제사장의 옷에 배어 따라다니는 다양한 향기들은 영과 영의 신령한 접촉을 의미했다.
-보석과 장신구
고대 중동에서 보석과 장신구는 화려한 치장 외에 특별한 목적을 가진 용도로 사용됐다. 바로 ‘사악한 눈’으로 불리는 악한 영의 공격을 막는 일종의 부적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준 ‘표’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보석이나 장신구의 한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
창세기 4:15
이사야 3:18-21절에는 어려운 이름의 장신구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불운을 퇴치하려는 장신구의 독특한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 3:18-21
향합은 ‘바테 네페쉬’라는 실린더 모양으로서, 여기에 질병과 불운을 쫓는 주문이 적힌 파피루스를 넣었다. 호신부 ‘라하쉬’라고 하는데, 뱀 모양의 부적을 가리킨다. 고대의 여인들은 뱀 모양의 부적을 손에 들고 다녔는데, 이슬람에서도 무함마드가 출현하기 전까지 아랍 여성들은 금 모양의 뱀 부적을 유방 사이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부적과 술법의 의미를 알고 예레미야 8장 17절 말씀을 읽어 보자.
예레미야 8:17
장신구는 대개 남녀가 공용으로 착용했는데, 이로써도 장신구가 겉치장 외에 불운을 쫓는 부적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욥의 세 딸의 이름 중 비둘기를 의미하는 첫째 딸 ‘여미마’를 제외하고 두 딸의 이름은 화장품과 향료의 이름이다. 이는 단순히 딸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것 외에 또 다른 의미가 함의된 작명일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인 욥이 자신의 경건함으로는 퇴치할 수 없었던 지난날의 불운이 다시금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혹시 찾아올 불운을 미연에 퇴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