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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이야기 5

 

성서에는 입다의 딸(사사기 11:29-40)과 같이 한 많은 여인들이 그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희생의 길을 강요당한 이야기가 있다. 반면 밧세바는 성서에 이름을 남긴 여인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삶이 기쁨보다는 슬픔에 가깝다는 암시이다. ‘밧세바라는 이름이 명기됨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밧세바가 한 남자의 소속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없음을, 다시 말해 굴곡진 삶을 살아갔음을 의미한다. ‘밧세바로 하지 않으면 그 여인은 나름 사연 많은 남자들에 기대어 아히도벨의 손녀, 다윗의 부하 엘리암 혹은 아미엘의 딸, 다윗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다윗의 후궁, 솔로몬의 어머니로 불려야 했을 것이다. 나아가 만약 누군가 밧세바라고 부르지 않고 그 여인과 관련된 말을 꺼내는 경우가 있다면 이는 그 사람에게 모종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처럼 비친다. 예를 들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라는 마태복음서 저자처럼 말이다(마태복음 1:6). 다윗이 자신의 아내밧세바가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 [헬라어로 직역하면 우리야에게 속한 것’(여성형)]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나니... 마태처럼 밧세바를 제거하고 문장을 만들면 갑이 을에게 병을 낳았다.’는 평범한 혹은 축하해줄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은 우습고도 무섭게 된다.

 

우리야에게 속한 것밧세바로 역사에 남게 된 사건은 대단치도 않은 일상에서 왔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는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 참전 중이었다. 이 전쟁은 통상 겨울 우기가 끝나고 곡식을 심기 전에 일어났다. 다윗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저녁 무렵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왕궁의 옥상으로 올라가 거닐었다. 그때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무엘하 기자는 다윗의 입을 빌리지 않고 직접말한다. “그 여인은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사무엘하 11:2) 렘브란트가 구약을 더욱 생생히 이해하고, 또 그리기 위해 읽었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장면을 이렇게 쓴다. “다윗은 치명적인 죄에 빠지고 말았다. 본래 그는 천성으로 의롭고 경건한 남자였고, 조상의 율법을 곧세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중략- 그러나 그는 그 여인의 아름다움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욕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요세푸스,유대고대사)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고, 신하는 여인이 다윗을 위해 싸웠던 용사 엘리암의 딸이자, 지금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위해 전쟁에 임한 용사 우리야의 아내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엘리암과 우리야의 충절을 기억하기보다 욕정으로 불타올랐다. 그는 사랑을 보내어 밧세바를 대령하라고 명령하였다. 밧세바가 왔을 때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게 된다. 성서는 그저 다윗이 밧세바와 함께 누웠다고 한다. 어떤 주석가는 이를 두고 다윗의 간음이라고도 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들은 남성적 시작을 반영한다. 그것을 두말할 나위 없는 강간이다. 남편을 싸움터로 내보낸 여인, 남편의 생사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왕의 게걸스러운 탐욕을 거절한다면 우리야가 무사히 돌아올 리 만무하다. 밧세바의 처지, 남편을 살리려면 남편을 배신해야 하는 그 여인의 비극적 운명을 설명하기에 진퇴양난이라는 말은 너무 건조하다.

 

이 가을 저녁 /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잇사의 하이쿠)”

 

요세푸스는 우리야가 죽은 것이 밧세바의 독축 때문인 양 그린다. “이 후 그 여인이 임신하였고,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왕이 여인의 죄를 숨길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도록 하였다.”(조상들의 율법에 따르면 간음한 여인은 사형에 처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밧세바를 요부로 처리하여 다윗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살려주는 노력은 요세푸스만 행한 것이 아니다. 렘브란트 이전, 그리고 이후 적지 않은 회화들이 다우시의 부름에 들떠 있는 밧세바를 그렸다. 다윗 못지않게 밧세바도 즐겼다는 것이다.

 

렙브란트 역시 1643년 그와 같은 고정관념 속에서 <밧세바>를 그렸다. 그 그림에서 렘브란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을 다윗과 밧세바의 회간으로 처리한다. 1643년 작에는 사치 혹은 방탕을 상징하는 고작의 첨가와 고개를 들고 뭔가 들뜬 듯한, 그리고 기대에 찬 듯한 밧세바의 미소 띤 표정과 머리를 단장하는 하녀가 눈에 띈다. 그러나 당신 밧세바의 심정이, 그러기에는 정황이 그랬을 리가 없다. 밧세바는 남편의 죽음에 슬피 운 여인이었다. 요세푸스는 밧세바가 임신을 하고 다윗을 채근했다는 식으로 보도하지만 밧세바의 임신은 누가 보아도 밧세바가 아니라 다윗의 죄를 보여주는 것이며, 그 죄를 가려야 할 이는 다윗 자신이었다. 밧세바가 임신한 것을 알자 다윗은 전장에 있던 우리야를 예루살렘으로 불렀고, “발을 씻으라”(사무엘하 11:8)는 통상적 완곡어법으로 밧세바와의 잠자리를 권한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요사 우리야는 이를 거절한다. 그는 언약궤를 모시고 간 전쟁, 곧 성전을 치르는 용사였고, 율법과 전우들을 먼저 생각하는 군인이었다. 결국 다우시은 간계를 적은 편지를 우리야의 손에 직접 들려 요압에게 보낸다. 그 계책은 위험한 전투에 우리야를 앞세우다가 그를 혼자 버려두어 죽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우리야의 상관 요압은 편지의 내용을 그대로 실행하였다. 우리야는 전투 맨앞에 섰고, 홀로 남은 채 죽었다. 그가 죽은 이유는 비겁과 변절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사형선고장을 들고 간 우리야는 용기와 충절을 남기고 사라졌다.

 

밧세바는 통곡하였다. 모세와 아론과 같이 특별한 인물이 아닌 한 애도의 기간은 7일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간이 끝나자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데려오도록 했다. 렘브란트의 <밧세바>는 맨 처음 소환 장면이 아니면 우리야가 죽은 다음 왕궁으로 들어오라는 전갈을 받고 있는 장면 중 하나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내가 판단할 때 후자이다. 밤에 이루어진 첫 번째 비밀스러운 부름에 편지와 같은 문서를 보냈을리는 만무하다. 밧세바의 손에 들린 문서는 전투에 순국한 용사의 부인을 왕이 직접 챙긴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과시하는 데 더 적합하다. 밧세바의 손에 들린 사실상의 소환장은 우리야를 죽이라는 소식을 담았던 다윗의 편지만큼 음험하다.

 

그림 1을 살펴보자. 뒤편에 놓인 황금빛 나는 천, 밧세바의 팔찌와 목걸이, 그리고 머리 장식, 무엇보다 벗은 채 발가락까지 정결하게 한 밧세바의 몸은-그 몸은 비록 다른 화가들의 처리처럼 완전무결하게 미끈한 순백의 피부에 남자들의 춘화적 욕정을 부채질하기에는 다소 사실적이기는 하지만 - 다윗과 같은 사내들에게 탐나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누드화 중 마지막 것으로 보이는 이 누드를 음탕하게 샅샅이 훑어보라. 한껏 욕정에 부풀어 오를지 모르지만, 그러나 모든 정욕의 발기는 밧세바의 얼굴에서 멈춘다. 밧세바는 고개를 속여 자신의 발을 닦는 하녀를 바라본다. 아마 발을 닦는 것이 몸단장의 마지막 순서일 것이다. 이제 다윗을 만나러 가야 한다.

 

권력에 의해 소환되는 그 여인, 그 아름다운 여인, 그 아름다움은 고민한다. 추한 세상 속 힘들의 자장 가운데 놓인 아름다움은 찬탄과 기쁨이 아니라 고민과 슬픔 속에 존재한다.

다윗은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대면하는 방식에서 오류를 저질렀다. 대상에 따라 그에 적절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대상과 소통할 수 없게 된다. 제아무리 억센 손이라도 빛깔을 움켜쥘 수는 없다. 나아가 대상에 대한 부적절한 태도는 대상과 그 대상 앞에 선 주체에게 해가 된다. 다윗은 밧세바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아름다움을 배타적으로, 그리고 폭력적으로 소유하려 드는 순간 아름다움은 부서져버린다. 가장 강력한 소유 방식으로도 아름다움을 파지할 수 없다.

 

다윗 용서를 구하다. 그러나...

사건 이후 사무엘하 12장은 다윗이 나단의 질책을 받아 회개하였다고 보도한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와 관련된 죄악을 참회하는 시로 알려져 있는데, 렘브란트도 시편 51편을 배경으로 다윗이 기도로써 회개하는 장면을 그렸다. 이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쫓겨나지나 않을까 하는 자신의 안위이지, 피해자의 슬픔과 그에 대한 속죄의 마음이 아니다. 시편 51편은 죄를 저지른 후에 용서를 구하는 모범적인 기도라기보다는 자신의 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용서를 헛되게 구하는 잘못된 기도의 전형이다. 그러니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못난 신자들, 특별히 못난 못회자들에게 이 시편이 못난이가 못난 생각으로 못나게 용서를 구하는 잘못된 기도의 전형이라고 알려주자.

 

허무의 계시-바니타스

전도서 1:2

헤벨은 기본적으로 연무나 아지랑이와 같이 증발하는 기체나 숨 혹은 호흡을 뜻한다. 그건 있다고 해야 하지만, 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있었다라고 정정해야 하는 그런 것들이다. 그러니 헤벨은 제행무상 혹은 제법무아와 같은 존재의 덧없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히브리어 성서를 헬라어로 옮긴 칠신인역은 헤벨을 마타이오테스로 읽는다. 그 단어는 목적 없는 부유, 의미 없는 소리, 기만적이어서 쓸모없는 생각, 초점 없는 무력함 등을 가리킨다. 사도바울은 소망이 남아 있다고 선언하면서도 전도서의 저자처럼 피조물이 마타이오테스에게 굴복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로마서 8:20).

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 / Vanitas vanitatum omina vanitas

 

16-17세기 렘브란트가 살던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화가들은 바니타스로 구분되는 특정한 형태의 정물화 혹은 인물화를 그렸다. 죽음의 확실성을 상징하는 해골, 부패를 뜻하는 썩은과일, 삶의 순간성과 죽음의 갑작스러움을 나타내는 거품, 비눗방울, 연기, 모래시계, 악기, 촛불 등이 그림의 한 곳에 등장한다. 어떤 작품에서는 그림의 주요 대상과 아무런 연관성 없이 바니타스의 품목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자본주의와 칼뱅주의의 직업소명설이 결합되면서 구걸은 단순히 사회적 해악이 아니라 종교적 죄악으로 규정되었다. 거지들은 자본주의자이자 근면한 노동 윤리를 강조하는 개신교인들에 의해 사회, 종교적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공권력과 일부 시민들은 거지들을 때리고, 낙인 찍고, 신체를 절단하거나 심지어 물에 빠뜨려 죽였다. 공개적으로 수치를 주고, 갤리선에 태워 강제 노동을 시켰다.

튤립은 투자대상이 되었다.

 

렘브란트가 방랑하며 구걸하는 한 가족을 그린 에칭화이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는 시각장애인인 듯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는 엄마의 등에 업혀 있고, 큰아들은 물통 하나를 허리춤에 맨 채 자기 머리보다 큰 모자를 썼다. 그 세 사람, 곧 남편과 큰 아들, 그리고 아이는 여인에게 업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생계를 상징하는 바구니를 왼팔에 끼고 있는 여인은 무엇에 의지해 있을까? 여인은 밑창에 대강 끈을 동인 신발을 신고는 왼손에 굵지 않은 지팡이를 짚고 있다. 가난의 땅을 밟고 가야 하는 발에는 헐거운 신발이고, 세 식구를 부양하는 여윈 몸을 지탱하기에는 부실한 지팡이다. 여인은 오른손을 내밀어 오늘 일용할 빵을 구걸한다. 한 노인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거기로부터 나오는 주화 한 닢이 그 가족의 생존 조건이다.

 

어리석은 부자와 바니타스

당시에는 통상적으로 장남이 다른 형제들보다 갑절의 유산을 상속받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산 및 부동산으로 된 재산을 정확한 비율로 환산하는 것은 쉽지 않거니와 종종 장남이 다른 형제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지 않는 일도 생겼다. 이렇게 법적 분쟁이 생기면 사람들은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는데, 그가 예수에게 재산 분배의 문제로 질문한 것은 예수를 랍비로 생각했음을 보여준다.

청중들은 비유를 듣는 동안 예수가 묘사하는 그 부자에 관해 상상할 것이다. 주위에서 그런 인물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1세기 팔레스타인의 땅은 소수가 차지했다. 그들은 대부분 세련되고 문화적인 도시에 살면서 농촌 지역에 대규모의 땅을 소유한 이른바 부재지주였다. 곡물을 생산할 수 있는 당은 당시 결정적이니 생산수단이었기에 땅이 없는 이들은 극심한 가난을 견뎌해 했다. 그들 중 일부는 빚을 지고, 결국 빚을 갚을 수 없어 자신을 종으로 팔아야 했다. 반면 부재지주들은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지불하면 되는 저임금 구조, 높은 이자로 돈이나 곡식을 빌려주는 대부업, 빚진 이들의 땅을 차지하는 방법 등으로 부를 늘려갔다.

큰 소출이 있고, 소출을 담을 공간이 없으면 당연히 곳간을 크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늘날 자본주의적인 축적의 사고이다. 그러니 비유 속 부자가 큰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다며 곳간을 더 크게 짓겠다고, 그리고 그곳에다가 곡식과 좋은 것들을 쌓아두겠다고 마치 결심이라도 한 듯 이게 내가 할 일이다.’라고 한 말은 현대인들에게 조금 의아하게도 들린다. 그러나 축적에 대한 고대 팔레스타인 사회의 통념을 감안하면 부자가 쌓아두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결심에 속한다. 당시는 부족한 재화가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누군가가 필요 이상으로 재산을 모은다면 이는 다른 이들의 몫을 취하는 것이다. 이미 부자인 사람은 더 이상의 부를 쌓아두기보다는 부를 자선 혹은 기부의 형태로 나눠야 한다. 그러나 비유 속 부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 평판이나 율법의 나눔에 대한 권면보다 부가 자신의 삶과 생명을 보다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믿었다. (누가복음 12:18-19)

 

부자는 어둠을 밝히는 초, 다른 바니타스의 그것처럼 짧은 삶을 상징하는 초를 켜두었다. 회개의 시간은 촛불이 켜져 있는 동안만이다. 초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으나 부자는 생명 혹은 삶의 상징되는 촛불을 오로지 돈을 확인하는 데에만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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