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야기 1
하나님은 왜 왕에게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을까?
신명기 17:16-17
모세는 이스라엘 왕이 되려는 자들이 금해야 할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말을 많이 두지 말라.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셋째, 금은을 많이 축적하지 말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출애굽기 19:6)으로서 이스라엘의 국가 청사진은 하나님이 왕으로서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국가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정착하게 되면 주변의 이방 국가들처럼 자신들의 왕을 세우려 할 것을 잘 아셨다. 그리고 이런 일은 선지자 사무엘이 활동하던 당시에 실제로 일어났다.
사무엘상 8:4-7
말, 전쟁과 교만의 상징
이사야 28:28
이 말씀은 타작한 곡식을 타작마당에 가져와 말발굽으로 밟아 낟알을 떨게 하는 ‘농경적’목적으로 말이 사용된 유일한 예다. ‘말’과 관련된 성경의 말씀은 이를 제외하고 모두 ‘전쟁과 군사적’ 목적으로 등장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말은 나귀나 소처럼 가축의 범주에 들지 않고,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와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전쟁’을 상징하는 동물로 인식되었다.
농업과 운송 목적의 가축이 아니라 전쟁과 사냥 목적의 성격이 강한 말은 유대인들에게 ‘우월감’과 ‘교만’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왕은 자신이 소유한 말의 수로 군사력을 ‘과시했고’이로 이핸 ‘말을 많이 둔다’는 것은 군주의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대외정책과 부와 권세로 백성과 이웃을 내리누르고 싶어 하는 포악함을 의미한다. 말은 히브리어로 ‘쑤쓰’라고 한다.
애굽, 말의 중요한 공급처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한 것은 고대 근동에서 말의 주요한 공급처가 애굽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말을 애굽에서 사와서 다른 곳에 되파는 중계무역을 왕실 독점사업으로 운영해 많은 이득을 취했다.
열왕기상 10:28
말과 병거는 강한 군사력을 상징하는데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애굽의 말과 병거들을 모두 초토화시키셨다.
출애굽기 15:1
선지자와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이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말’로 상징되는 애굽의 군사력을 의지하는 불신앙을 자주 책망했다.
이사야 36:6-9; 미가 5:10; 이사야 31:3-3; 호세아 1:7; 시편 20:7-8
힉소스 왕조와 말
‘애굽’과 ‘말’의 연관성을 알기 위해서는 이집트 역사에 등장하는 힉소스 왕조에 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야생말이 최초로 사육된 곳은 중앙아시아 지방인데, 주전 18세기경 힉소스 왕조를 통해 이집트와 중동지역에 말 사육이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때를 맞추어 전차(병거)가 발명되고 전차를 끄는 군사적 목적으로 말이 이용되면서 말은 군주에게 요긴한 동물이 되었다.
이집트 역사에서 힉소스 왕조는 어떤 왕조일까?
고왕조 (1-6왕조, 주전 29-23세기)
제 1혼란기 (7-10왕조, 주전 22-21세기)
중왕조 (11-12왕조, 주전 20세기-1750년)
제 2혼란기 (13-17왕조, 주전 1750-1570년)
신왕조 (18-20왕조, 주전 1550-1070년)
힉소스 왕조는 제2혼란기와 상당 부분 겹치는데 주전 1720-1570년(15-17왕조)에 해당한다. 이집트어로 ‘외국에서 온 지배자’를 뜻하는 ‘힉소스’는 가나안 셈족들이 계속되는 기근에 못 이겨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 지역으로 밀려 내려와서 세운 왕조였다. 이집트 역사에서 이 시기는 ‘재앙’이요 ‘수치’가 될지 모르지만, 사실 힉소스 왕조는 침체기의 이집트 문명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은 측면이 더 강했다.
힉소스인(셈족)들은 이집트인(함족)들이 잘 모르던 말, 전차(병거)를 비롯해 강궁, 전투용 도끼, 발달된 요새 축조술을 들여왔다. 강력한 힉소스 왕조를 몰아낸 해방 전쟁의 막바지에 이집트도 힉소스 왕조로부터 각종 신형 무기들을 도입한다. 이로써 훗날 이집트가 ‘말과 전차’로 상징되는 군사강국이 된 것을 볼 때 힉소스 왕조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은 애굽의 총리까지 오르는 입지전적인 인물인데, 학자들은 요셉의 총리 시절이 힉소스 왕조 기간일 것으로 본다. 아무래도 같은 셈족 출신의 왕조이기 때문에 총리 지명에서 장애가 덜했을 것이다.
힉소스 왕조의 철옹성 소안을 정복한 아흐모세(주전 1552-1527)는 신왕조인 18왕조의 창건자다. 요셉 통치기 이후 애굽으로 건너와 선대 받던 이스라엘 백성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의 등극과 함께 노예 신분으로 떨어지는데, 여기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신왕조의 왕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1:8
출애굽시기를 람세스 2세(주전 1290-1224)로 본다. 가나안의 셈족 출신인 힉소스족은 가나안 땅이 가까운 나일강 각주 북동쪽 ‘소안(아바리스)이라는 요새 도시를 만들어 수도로 삼았다. 출애굽 이후 정복한 헤브론을 같은 셈족의 성경 기자는 힉소스 왕조인 수도인 소안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민수기 13:22
힉소스 왕조는 가나안에 가까운 ‘소안’을 수도로 삼았고, 아울러 가나안 지방의 ‘하솔’을 지역 총독부로 만들었다. 여호수아의 정복전쟁에 맞서기 위해 하솔 왕 야빈을 중심으로 가나안 연합군이 형성되었는데,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라는 표현은 힉소스 왕조 때 가나안 총독부 역살을 했던 과거의 역사를 언급한 것이다.
말에 대한 다윗과 솔로몬의 대조적인 행동
사무엘하 8:3-4
다윗은 분명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명령을 기억하고 순종했을 것이다. 하지만 솔로몬은 곳곳에 병거와 마병을 두고 군사적 목적으로 말을 키웠다. 심지어 평야에서나 쓸모가 있는 말을 예루살렘과 같은 산지에서도 키우고 병거성을 두었다. 산지에서는 말보다 나귀가 주요한 교통수단이 된다.
열왕기상 10:26
이외에도 므깃도, 하솔, 게셀에 말을 키우고 병거성을 군사도시로 만들었다.
열왕기상 9:15
솔로몬은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는 명령도 어겼다.
열왕기상 11:1-2
솔로몬은 금은을 많이 축적하지 말라는 명령도 어겼다.
열왕기상 10:16-17
방패는 상식적으로 금이 아니라 놋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솔로몬은 금은을 축적해 금방패 200개, 작은 금방패 300개를 만들었다. 솔로몬의 허세와 과시욕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 왕이 즉위한 후 애굽의 시삭이 침공했을 때, 금방패는 모두 빼앗기고 급히 놋방패를 만들어야 했다.
열왕기상 14:25-27
솔로몬은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로 인해 자칫 선한 왕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섰을 때는 재임 초기 기브온 산당에서 기도하며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간구했을 때뿐이다.
예수님은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
요한복음 12:12-15
복음서를 읽는 성도들에게 가장 극적인 영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장면은 공생애 마지막 해에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일 것이다.
왕의 입성이라면 으레 말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데 예수님은 나귀, 그것도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열화와 같은 무리의 환호를 받으며 처음으로 메시아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화끈하게 드러내셨다. 그런 예수님께서 하나님 기름 부으신 왕, 즉 메시아로서 멋진 백마를 타지 않고 왜 초라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일까?
나귀, 평화와 겸손의 상징
고대 근동 지방에서 왕이 노새를 타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나귀를 탄 왕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고대 근동 문서 중 하나인 아카드 문서에서 왕이 나귀를 탄 모습이 나타나긴 하지만, 이 경우도 ‘왕의 등극’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귀를 탄 왕의 모습은 왕의 위풍과 위세보다는 겸손을 나타내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말이 전쟁과 교만을 상징한다면, ‘나귀’는 평화와 겸손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의 문화적 상징에서 말과 나귀는 정확히 대조를 이루는 동물이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정확히 이룬 것인데 스가랴는 나귀와 겸손을 정확히 연결시키고 있다.
스가랴 9:9
군사적인 영웅은 말 또는 병거를 타고 오지만 온순한 민간 관리는 나귀를 타고 들어왔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메시아로서 그분의 정체성을 가장 드러내 주는 장면이다. 군림하고 착취하며 허세나 부리는 세상 왕들의 등극식에는 말이 어울릴는지 모르지만, 겸손히 낮아져 섬기며 희생하는 메시아의 등극식에는 나귀가 어울리는 것이다.
나귀와 구유, 그리고 순종
이사야 1:3
처음으로 구유가 상징으로서 등장하는 것은 이사야서이다. 나귀는 자신의 구유에서만 먹이를 먹는데, 그런 면에서 구유는 ‘순종’을 상징하는 도구로 의미가 확대된다.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해서 ‘구유’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누가복음 2:7,12,16
구유에 누인 예수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첫째,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의 모습을 낮고 천하고 불쌍하고 연민을 자아내는 모습과 결부시키는 것이다. 만왕의 왕 예수님이 천하디 천한 구유에 누워 있는 모습은 현대인들의 시각에는 왠지 불쌍하고 가슴 뭉클한 겸손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성서시대의 보편적인 주거 환경을 이해한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에서 거주했는데 이런 동굴 집은 겨울철(우기)에는 적절한 난방이, 여름철(건기)에는 시원한 냉방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 언덕의 가장자리에는 24개의 동굴 집이 있다.
겨울이 되면 가축들은 동굴 집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기거했다. 이 때에는 보통 바깥에 두던 구유도 동굴 집 안으로 옮겨 놓는다. 사람들의 주거 공간은 바닥이 한 턱 정도 높아 가축들의 공간과 구별되었다. 겨울철에 태어나신 것이 분명한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동굴 집안 구유에 누우셨을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구유가 무척이나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으로 연상되겠지만 성시시대에는 사람들이 사는 주거 공간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좁은 동굴 집 안에서 한 턱 정도 바닥의 높이가 차이 나는 곳에서 가축과 사람들이 함께 뒹굴며 생활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이 태어나신 구유를 말구유, 즉 마구간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설명하신 많은 경우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으로 설명하는데 만약 유대인들이 그런 설명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한 누가복음 2장에는 어디에도 ‘말구유’나 ‘마구간’이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단지 ‘순종’을 상징하는 ‘구유’가 세 번 등장할 뿐이다. 유대인들은 이 구유가 이사야 1장 3절에 기초해서 당연히 ‘나귀’구유임을 안다. 지중해에 접한 평야 지대에서나 요긴한 말은 해발 900M 산지에 위치한 베들레헴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산지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나귀가 최고의 운송수단이었는데, 이처럼 지형적 배경만 보아도 나귀 구유가 맞음을 알 수 있다.
최고의 운송수단
나귀는 발목이 강해 잘 넘어지지 않고 울퉁불퉁한 산지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잘 걷는다. 나귀는 지구력 면에서는 말보다 더 강하다. 나귀는 75KG의 짐을 너끈히 싣고 나를 수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던 산지에서 최고의 운송수단이었다.
220L를 나타내는 부피 단위인 ‘호멜’은 나귀 한 마리가 지고 갈 수 있는 짐의 양을 가리킨다. 항상 물건과 사람을 싣고 나르는 나귀의 모습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민수기 22:30; 출애굽기 4:20; 창세기 45:23
주로 산지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귀는 소와 함께 가장 친근한 동물이었다. 안식일에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함께 안식에 들어가는데 이때 소와 나귀가 가축의 대표로 등장한다.
출애굽기 23:12
동물을 학대하고 괴롭히지 말 것을 명령하는 율법에서도 농사용으로 사용되는 소와 운송용으로 사용되는 나귀가 등장한다.
신명기 22:10
고집 세고 어리석음
현대 히브리어에서 ‘나귀 같은 사람’은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으며 어리석은 사람’을 의미한다. 충성되고 우직한 나귀는 때로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등장하기도 한다.
욥기 11:12; 욥기 39:5
베들레헴에 수도원을 짓고 일생 동안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 성경으로 번역한 초대 교부 가운데 제롬(340-420)이 있었다. 제롬이 번역한 ‘불가타’성경은 가톨릭에서 최고의 권위가 있는 성경이다. 제롬이 성경을 번역할 당시에는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이 최고의 권위가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제롬을 놀렸는데 제롬은 이들을 가리켜 “너희는 두 발 가진 당나귀다”라고 맞받아쳤다. 하나밖에 모르는 ‘꽉 막힌’ 아귀와 같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왜 다윗의 노새를 타고 왕위에 올랐을까?
다윗의 노새를 탄 솔로몬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죄의 결과물이 다윗을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죽고 첫째 아들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범하여 동생 압살롬에 의해 살해당했다. 살인자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배반하여 패역무도한 반역을 저질렀고 요압 장군에 의해 죽었다.
암논, 압살롬이 제거되자 넷째 아들인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켰다. 아도니아의 반란에는 요압 장군과 아비아달 제사장이 가담했는데, 다윗은 심중에 일찌감치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얻은 열 번째 아들 솔로문을 후계자로 정해 놓고 있었다.
아도니야의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나단 선지자는 이를 다윗에게 알렸고 다윗은 자신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우고 급히 왕위 등극식을 치렀다. 아도니야는 다윗이 나이들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상황을 이용해 스스로 왕임을 선포했지만, 곧 솔로몬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다우시의 ‘노새’를 탔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탄 다윗의 노새는 아도니야에게 기운 백성의 민심을 순식간에 솔로몬 쪽으로 돌리는 결정타였다. 그러면 ‘노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왕실 전용 탈것
노새는 말과 함께 왕위 등극식에서 자주 애용되던 동물이었다. 이스라엘의 왕국시대는 사울과 다윗으로 시작되는데, 초기 왕국시대에는 이스라엘에 말보다 노새가 더 일반적이었고 가격도 노새가 두세 배 더 비쌌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노새가 일반적이면 가격이 더 쌀 것 같지만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시장의 원칙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지 않았다.
초기 왕국시대에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인해 말을 터부시했기 때문에 말이 흔하지도 않았고, 가격도 쌌다. 하지만 후기 왕국시대로 넘어가면서 이스라엘도 말이 점차 보편화되었다.
초기 왕국시대부터 노새는 왕이 타기에 걸맞은 짐승으로 여겨졌다. 이는 노새가 암컷 말과 수컷 나귀를 교배하여 탄생한 종자답게 말과 나귀의 장점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노새는 한마디로 ‘힘과 정력’을 상징했다. 히브리어로 노새는 ‘페레드’라고 하는데 이것은 아람어 어근에서 비롯된 것으로 ‘잽싸게 도망가다’를 의미한다.
노새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이스라엘 산지, 경사진 비탈 등을 넘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다녔으면, 몸이 튼튼하고 거친 먹이만으로도 잘 견뎠다. 그런 면에서 노새는 왕실의 전용 탈것으로 안성맞춤이었다.
모세의 율법은 ‘교배’를 금하고 있지만 왕국시대에 노새는 외부에서 수입되어 왕실을 위한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레위기 19:19
모세의 율법에서 금한 교배를 통한 탄생한 종자이면서 왕실의 전용 탈것으로 사용되는 아이러니 때문인지 랍비 느헤미야는 노새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다. 노새는 비록 잡종이지만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하실 때 안식일 전야에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이 창조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창조된 것을 볼 때 랍비 느헤미야가 노새에게 특별한 영광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새는 힘과 정력을 상징하지만 지혜와는 거리가 먼 동물이다. 그런 면에서 시편에 나오는 노새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을 이해할 수 있다.
시편 32:9
압살롬의 최후와 노새
아버지 다윗을 배반하고 쿠데타로 왕위에 오른 압살롬은 자신의 왕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압살롬의 악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는데 성경 기자는 압살롬의 최후를 묘사하면서 유대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상징을 복합적으로 사용했다.
사무엘하 18:9
첫째, 왕실의 전용 탈것인 노새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일어선 압살롬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 떠나 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노새의 행동을 통해 압살롬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셨다.
둘째, 압살롬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유대인이 나무에 매달다리는 거슨 하나님의 저주를 의미했다.
신명기 21: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