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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야기 3

 

1) 아브라함 : 백성의 아버지

19세기 후반에 미국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민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민자들은 그들의 피부 색깔에 따라 세 갈래로 나뉘어 각기 다른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해 미국 땅을 밟았다. 그 세 관문은 각기 다른 섬이었다. 이 세 섬을 통해 백인, 아시아인, 흑인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육로로 라틴아메리카계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섬들 가운데 하나가 자유와 평등, 평화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엘리스 섬이다. 미국 동쪽 뉴욕에 있는 이곳은 과거 유럽계 이민자들이 입국할 때 거쳐 가던 섬이다. 유럽계 이민자들은 엘리스 섬에서 스물아홉 개의 질문에 답한 다음,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본토에 발을 딛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섬으로는 미국 서쪽 샌프란시스코의 에인젤 섬이다. 이곳은 아시아 이민자들이 머물던 섬이다. 1910년 문을 연 에인젤 섬 검문소는, 아시아인의 이민을 억제하기 위한 일종의 이민자 수용소였다. 그러나 그곳은 말이 수용소지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다. 에인젤 섬에 내린 중국계 이민자들은 미국에 합법적으로 왔다는 증명서를 얻기 위해 짧게는 3, 길게는 3년까지 이곳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리고 200, 1000개에 이르는 질문에 답해야만 미국 본토로 나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부 캐롤라이나의 설리번 섬이 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며 동물처럼 쇠사슬에 묶인 채 온갖 학대 가운데 겨우 살아남은, 함의 후예로 오인된 흑인 노예들이 도착한 곳이다. 설리번 섬은 짐승처럼 실려 온 아프리카 흑인들 가운데 살아남은 흑인들이 첫발을 내딛은 섬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노예 신분으로 본토로 팔려나갔다.

 

에인젤 섬과 설리번 섬은 수탈과 압박 그리고 노예로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또 다른 미국의 관문이었던 셈이다. _아시안 아메리칸-백인도 흑인도 아닌 사람들의 역사, 장태한

 

_아브라함, 이민자들의 아버지

노아의 10대손으로 셈의 계보를 이어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연 인물은 아브라함이다. 그는 인류 문명의 발원지였던 수메르에 인접한 갈대아의 우르를 떠나, 성서의 무대가 된 가나안 지역으로 외견상 대책 없이 이주했다. 그의 발길이 후일 고대 근동의 경계 너머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인종적-종교적 지도를 바꾸어 놓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창세기 12:1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이자 신학자 필로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가나안에 이르는 여정을,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연합에 이르는 여정에 비유하여 해석했다. 신탁에 의지하여 정든 고향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길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하고 도발적인 행위가 아니던가?

 

_이민자 아브라함의 이야기, 예수님에게서 완성되다

성서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다. 형제들에 의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 그 땅을 위기에서 건진 이민자 요셉이야기. 파라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낸 모세의 이야기. 모압 여인으로 남편과 사별한 후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낮선 땅 유다로 이민 와, 후일 다윗의 증조모가 된 룻의 이야기. 그리고 왕국의 분열 이후,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로 포로가 되어강제로 이주된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 이러한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신약에서 헤롯이 행한 유아 학살 현장에서, 머리 둘 곳 없는 주거부정의 망명자로 이 세상에 들어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예수는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으로 하강하신 신적인 이민자.

요한복음 1:14; 빌립보서 2:6-8

 

2) 사라 : 백성의 어미, 열국의 어미

부계 상속의 부권 사회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면 조강지처라도 그 자리가 위태로웠다. 조강지처가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남자가 소실, 즉 첩을 둘 수 있었다. 고대 중근동에서는 일부다처 자체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일처를 유지하되 대를 잇기 위한 방법으로 첩 제도를 인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함무라비 법전의 규정에는 첩 제도에 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규정이 있었다.

 

아내(조강지처)는 자녀를 낳은 거만한 첩을 노예의 지위로 떨어뜨릴수 있다(144). 아내(조강지처)가 자기를 대신하여 자녀를 낳도록 첩을 얻어주면, 남편은 스스로 첩을 둘 수 없다(145). 아내(조강지처)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서도 남편에게 첩을 얻어 주지 않으면, 남편은 스스로 첩을 둘 수 있으나 첩은 아내(조강지처)와 같은 지위에 처할 수 없다(146).

 

처와 첩과 관련된 함무라비 법전의 규정은, 여성의 가치를 남아 생산에 두었던 고대 사회의 풍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아브라함의 정실인 사라와 첩이었던 하갈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_사라, 세계 역사를 바꾸다

창세기 11:30; 16:1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젊은 여종 하갈과 동침할 것을 권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얻게 했다.

그로부터 13년의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다음 해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러나 아흔 살이 되어 이미 경수가 끊어진 자신의 메마른 몸에서 생명 잉태가 가능하기나 할지, 사라는 자문했다. 아브라함 또한 이미 14년 동안 자신의 유일한 혈육으로서 대를 이을 아들로 여겨 온 이스마엘에 대한 기대를 한순간에 저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그 약속의 말씀은 현실이 되었다.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이 태어났으니, 이때부터 사라와 하갈 사이에는 시기와 질투의 불꽃 튀는 갈등이 일었다. 주인 사라의 요청에 따라 떡하니 대를 이을 남자아이를 낳고 하갈은 어쩌면 안주인 노릇을 하려 들지나 않았을까. 그렇다라도 여종의 아이 또한 주인의 아인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세 사람 사이에 펼쳐진 복잡 미묘한 분란과 갈등으로 아브라함의 장막은 편안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라의 분노가 폭발하는 사건이 생겼으니, 이스마엘이 동생 이삭을 데리고 놀리는 것을 사라가 본 것이다. 사라는 화를 내면서 아브라함에게 당장 그 여종과 그 아들을 쫓아내라고 닦달했다. 아브라함은 하는 수 없이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면서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로 내보냈다.

 

_중동 분쟁의 불씨가 되고 만 사라의 선택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 두 여인의 갈등이 현재까지 중동 분쟁의 단초가 될 줄이야. 이스라엘의 적자주의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여러 아랍 국가의 장자주의에 근거해 중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두 진영이 서로 격돌하고 있으니, 그 분쟁의 뿌리는 너무나 깊다. 당대의 문화와 풍속에 따라 자신의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동침케 한 사라의 잘못된 선택이 지금까지 오고 있다.

 

3) 하갈 : 이주하다, 도망하다

아브라함과 동침한 하갈은 덜컥 임신을 했고, 그때부터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된 사라는 하갈의 임신을 반기기는커녕 그녀를 모질게 학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신변의 위협을 느낀 하갈은 임신한 채 광야로 도망가야 했다. 광야에서 홀몸이 아닌 여인을 치한이나 맹수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하갈에게 나타나 여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유사한 약속의 말씀을 주었다.

창세기 16:10-11

 

_광야는 영적 거인을 만드는 훈련장

광야와 사막의 차이점을 아는가? 사막은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이지만, 광야는 수분만 받으면 생존할 수 있는 땅이다. 그 둘은 5-10퍼센트의 수분이 있느냐 없느냐 구분한다. 낮에는 기온이 영상 40도 안팎까지 올라갔다가, 밤에는 영하 10도로 떨어지는 극한 생존의 현장에서 훈련받은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이다.

네게브 광야는 이스라엘 전 국토의 절반가량인 13,000제곱킬로미터를 차지한다. 건조 지대로 연평균 강우량이 300밀리미터에 불과하다. 그런데 예언자들은 광야 시절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였다고 회고한다. 그때처럼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철저하게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2

 

성서에서 광야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거친 환경을 뜻한다. , 영적인 나태함에 빠져 있는 우리를 혹독하게 훈련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모든 환경을 말한다. 광야에서 우리는 거칠고 험난한 도전을 받는다. 광야는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극한 환경이다. 그러기에 영적거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현장이다. 하여 거친 광야에 있음을 감사하라! 하나님의 강한 현존을 경험할 수 있기에.

 

신약

1) 사도요한 :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_사도 요한, 2천 년 전에 친환경주의 선언을 하다

사도요한은 갈리리 출신으로서 세베대와 살로메의 둘째 아들이며, 그의 형은 야고보였다. 그는 본래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중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형 야고보와 더불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 둘은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긴 제자들이지만 초반에는 출세지향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마가복음 10:35-37; 마태복음 20:20-21

 

정치적인 발언을 하여 사도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과격한 성격에 빗대어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지어 주셨다.

마가복음 3:17

 

외골수적이고 과격한 성격에다 야망까지 품고 살았던 우레의 아들요한은 후일 사랑의 사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인자한 사람으로 변했다. 성령 강림 이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전도 활동을 했다.

사도행전 3:1; 8:14

 

그러한 요한을 사도 바울은 야고보와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 초대교회의 문헌에서 교부들은 요한을 예수님의 가슴에 기댄 자를 뜻하는 호 에피스테디오스라고 자주 부르는데, 영어로는 ‘The bosom-friend(of Jesus)'로 표현한다.

 

하나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사랑) 독생자를 주셨으니(희생)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믿음)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구원)

 

요한복음 3:16

이 구절은 사랑, 희생, 믿음, 구원을 토대로 하는 복음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요한이 말한 세상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우주를 의미한다.

 

2) 나다나엘 : 하나님의 선물

무화과 나무는 꽃이 필 무렵 꽃받침과 꽃자루가 길쭉한 주머니처럼 비대해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꽃 없이 열매가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 주머니속에서는 위쪽의 수꽃과 아래쪽의 암꽃이 서로 은밀하게 수정하게 되고 이로 인해 깨알 같은 씨가 생긴다. 그래서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없고 어느 날 열매가 익기 때문에 꽃 없는 과일, 즉 무화과로 불린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무화과처럼 아름다운 젊음을 제대로 마음껏 누려 보지 못한 채 현실과 부딪쳐야 했던 자신의 삶을 한탄조로 풀어냈다.

 

_나타나엘, 편견에 믿음으로 나아가다

요한복음 1:46

 

빌립에게서 나사렛 예수님을 소개받은 누군가가 빈정거리며 내뱉은 말이다.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던 당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사렛이란 지명과 메시아는 도저히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조합이다. 예수님이 태어나고 자라신 나사렛은 비옥한 이스르엘 평원이 멀리 바라보이는 해발 380미터 가량의 언덕 위에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메시아가 그런 촌구석에서 나올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나사렛이란 말에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 뒤 그러한 편견을 깨고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한복음 1:49)라고 놀라운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나엘이다.

예수님은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음도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는 그늘이 시원하여 유대에서는 조용히 휴식하며 묵상하는 곳으로 쓰였다. 나다나엘도 그 나무 아래에서 민족의 회복과 메시아의 도래를 기원했을 것이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시원한 생수가 쏟아지는 것처럼 그 갈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한 나다나엘은 편견의 틀을 깨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지난한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일설에 따르면 나다나엘은 동쪽으로 여행하여 아르메니아에서 사역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_무화과나무 아래 쉼터와 같은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유대 랍비들의 전통에 따르면 이는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한다는 뜻이다.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눈물로 기도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해 놓았다.

 

나는 홀로 조용히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화과나무 아래 엎드렸고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이슬 신령한 제사’(베드로전서 2:5)가 되었습니다.

 

무화과나무 그늘은 팔레스타인 가난한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쉼터이자 기도처였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가장 큰 복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하나님의 현존)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주어지는 무병장수, 자손의 번성, 토지의 획들은 부수적인 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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