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대학 -성전이야기 네 번째 / 남기평

by 좋은만남 posted Apr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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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야기

 

사탄이 예수님을 데려간 성전 꼭대기는 어디일까?_성전 꼭대기

성전 꼭대기: 나팔 부는 곳

왕의 행각 서쪽 타워는 성전 꼭대기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성전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물론 예루살렘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전망대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팔 부는 곳으로 알려졌는데, 안식일과 월삭(새 달 초하루), 신년(나팔절)이 되면 이곳에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

비잔틴 시대에는 왕의 행각 남서쪽 끝이 아니라 남동쪽 끝을 나팔을 부는 성전 꼭대기로 생각했다. 그러나 남동쪽 끝은 기드론 골짜기에 가깝고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에서 멀기 때문에 나팔 부는 장소로 적합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가까운 남서쪽 타워에서 나팔을 불어야 예루살렘 시민들이 모두 나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남서쪽 타워 밑에는 서쪽과 남쪽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로 인해 엄청난 군중이 몰려들었다.

성전 남서쪽의 타워가 나팔을 불던 성전 꼭대기임을 밝힌 사람은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벤자민 마자르다. 이것은 지붕과 타워에 올라간 사람이 자칫 실수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또는 타워)난간에 새겨져 있었다. 이스라엘의 건축물은 신명기 율법을 따라서 반드시 지붕에 난간을 만들었다.

신명기 22:8

 

성전꼭대기: 메시아의 통치를 알리는 곳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나팔을 불며 모든 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성전 꼭대기에 대한 특별한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메시아의 날이 도래하며 메시아가 이 성전 꼭대기에서 나팔을 불며 메시아의 우주적인 통치를 알릴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메시아 시대의 도래와 나팔에 대한 유대인들의 이런 믿음은 복음서와 바울의 서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마태복음 24:31, 데살로니가 전서 4:16

 

이스라엘 역사가 보여 주는 성전 꼭대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몇 십 년 지나지 않아 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에 반기를 들고 전국적인 봉기를 일으켰다(66). 이때 예루살렘에 세 명의 거짓 메시아가 나타났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성전꼭대기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특별한 믿음을 잘 보여 준다.

엔게디 출신의 메나헴은 마사다에 있는 헤롯 대왕의 무기고를 기습 공격해서 완전무장을 한 채 추종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메나헴은 성전북쪽에 있는 안토니오 요새에 로마에 대항할 지휘 본부를 차렸고 백성은 그를 메시아로 환호했다. 안토니오 요새는 철천지 원수인 로마군의 수비대가 주둔하던 곳으로서, 메나헴이 이곳에 본부를 차린 것은 유대인들의 반로마 감정을 고취시키고 자신의 리더십을 견고히 하고자 함이었다.

다음은 유대 광야에서 명성을 날리던 시몬이었다. 시몬은 추종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입성해 마카베오 왕궁에 본부를 차렸고 백성은 시몬을 메시아로 따랐다. 마카베오 왕조는 이스라엘 왕국 황금기를 누린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버금가는 통일 왕조로서, 예수님이 오시기 1세기 전에 이스라엘 전역을 통치한 유대인 왕조였다.(기원전 167-63) 로마의 압제가 심해질수록 유대인들은 강력했던 마카베오 왕조의 영화를 동경했다. 당시 유대인들의 이름 중 75%가 마카베오 왕조의 왕들의 이름이었던 것만 보아도 마카베오 왕조에 대한 환호와 동경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 요한, 유다 등도 마카베오왕조의 왕들의 이름을 따른 것이다. 시몬이 마카베오 왕궁에 반란군의 본부를 차린 이유도 당시 유대인들의 마카베오 왕조에 대한 동경을 한데 모아 자신의 리더십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거짓 메시아는 갈릴리 구쉬할라브 출신의 요한이었다. 구쉬할라브는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바울의 부모님이 살던 고향이라고 한다. 갈릴리에서 로마군에 대항해 최후까지 저항하던 요한은 안식일의 야음을 틈타 추종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도망했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 반란군의 본부를 차렸다. 이때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메나헴과 시몬을 추종하던 많은 사람들이 요한을 따르며 그를 메시아로 추종했던 것이다. 로마군의 예루살렘 포위만이 점점 좁혀 오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성전 꼭대기에 본부를 차린 요한은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적 열망을 한껏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고 가장 강력한 메시아로 예루살렘을 다스릴 수 있었다.

 

사탄은 왜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려갔을까?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까지 데려가서 시험했던 사탄은 분명히 성전 꼭대기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믿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4:9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적 믿음이 응집된 장소였던 성전 꼭대기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이 자신을 메시아로 드러내고 선포할 수 있는 가장 잘 준비된 무대였다. 이곳에서 단 한 번의 기적을 통한 깜짝 쇼를 벌인다면,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했을 것이다.

사탄은 예수님을 이곳으로 데려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한 다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인용한다.

누가복음 4:10-11

 

이것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메시아적 영광을 얻도록 하신 하나님의 구원 프로그램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서 예수님에게는 굉장한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산헤드린 법정은 어디 있었나?

왕의 행각 동쪽 끝에는 반원형으로 이루어진 건물이 있는데, 이곳에 예수님 당시 71명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이 있었다. 71명으로 구성된 유대인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은 70명의 공회원은 모세가 세웠던 70명의 장로에서 왔다고 한다.

출애굽기 24:9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던 로마 법정과 달리, 이곳은 북쪽 공간을 완전히 대중에게 개방하여 재판과정을 지켜보도록 했다.

예수님도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지기 전에 안나스와 가야바 가문이 주재하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 서야 했다.

누가복음 22:66

 

유대인들의 법정은 오늘날의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과 같은 3단계의 상소 절차가 있었다. 각 도시에 최소 3명에서 최대 9명으로 구성된 지방법원이 있었고 이들은 성문에 앉아서 재판을 했다.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중간 법정은 23명으로 구성되었고, 왕의 행각으로 올라오는 제단 중앙에 있는 건물에 있었다. 그리고 71명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 법정은 왕의 행각 동쪽 끝에서 열렸다.

 

여인의 뜰은 여자들만 들어갔을까?

여인의 뜰 : 기도의 뜰

성전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여인의 뜰은 여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까? 그렇지 않다. 이곳은 오히려 이스라엘 여인들이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한계를 가리킨다. 여인의 뜰은 이스라엘 사람이면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정기적인 번제 때에 성소에서 분향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 성전에 기도하러 온 사람들은 여인의 뜰에서 기도를 했다. 그래서 여인의 뜰은 기도의 뜰이라고도 불린다.

과거 솔로몬 성전에는 여인의 뜰이 없었다. 성경에서 여인의 뜰이 처음 언급된 것은 역대하에서다.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 때 모압, 암몬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연합해서 유다를 치러 올라왔다. 이때 하나님을 경외하던 왕 여호사밧 은 온 유다 땅에 금식을 선포하고 온 회중을 성전의 새 뜰에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진심으로 기도했다. 여호사밧이 기도했떤 새 뜰이 성경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된 여인의 뜰이다.

역대하 20:5-6

 

솔로몬 성전은 동쪽에 위치한 오픈된 공간으로서 성전 예배에 필요한 기명들을 보관하던 몇 개의 챔버들만 있었는데, 헤롯이 성전을 증축할 때 사방을 벽으로 두르면서 여인의 뜰로 불리는 독립된 성전 뜰이 생기게 된 것이다.

여인의 뜰 삼면에는 기둥들이 늘어선 행각이 있었는데, 이곳은 시니어 랍비들이 토라를 강론하던 곳이다. 종려주일에 승리의 입성을 하신 예수님도 이곳 여인의 뜰 행각에서 마지막 일주일 동안 말씀을 가르치셨다. 공생애 사역 초기에 주니어 랍비로서 솔로몬 행각에서 가르치신 것과 달리, 후기에는 시니어 랍비로 명성을 얻은 예수님의 신분 상승을 엿볼 수 있다.

마태복음 21:23

 

여인들의 헌신과 한이 담긴 여인의 뜰

성막을 짓도록 명령을 받았을 때 나온 헌물들은 주로 여인들의 보석류였다.

출애굽기 35:22

 

특히 물두멍은 여인들이 기부한 놋거울을 녹여서 만들었다.

출애굽기 38:8

 

이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이 섞인 기도를 드린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는데,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도 그 중 하나였다.

사무엘상 1:9-10

 

하나님은 한나의 눈물 어린 기도를 받으셔서 그 시대를 구원할 선지자 사무엘을 허락하셨다.

 

예수님이 구제헌금을 한 후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_연보궤

연보궤는 어디에 있을까?

여인의 뜰 주변을 따라 삼면의 벽에는 13개의 연보궤(헌금함)가 있었다. 각각의 연보궤는 유대인의 신년인 나팔절 때 부는 양각 나팔(숫양의 뿔)처럼 돈을 넣는 입구는 좁고 밑바닥은 넓었다. 이는 연보궤에 손을 넣어 헌금을 훔치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예수님은 헌금과 구제를 하고 나서 나팔을 불지 말라는 독특한 표현을 하셨는데, 이는 여인의 뜰에 있는 연보궤의 모양에서 나온 재미있는 표현이다.

마태복음 6:2

 

13개의 연보궤는 각각 용도가 달랐고, 그 용도는 연보궤에 새겨져 있었다. 이중 1,2번 연보궤에는 성전에 바치는 반 세겔의 성전세를 넣었다. 3,4 번의 연보궤에는 번제와 속죄제로 비둘기를 바치는 여인들이 그에 상당하는 돈을 넣었다. 첫아들인 예수를 낳은 마리아도 성전을 찾아 초 태생을 위한 속죄제로 비둘기 값을 이곳에 넣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2:22-24

 

연보궤 5번에는 제단에서 사용되는 목재, 6번에는 분향단 향, 7번에는 성전에서 사용되는 금잔 8번에는 남자의 속죄제, 9번에는 속건제, 10번에는 비둘기, 11번에는 나실인 서원, 12번에는 나병환자의 치유, 13번에는 기타 자원 헌금과 관련된 헌금을 넣었다.

초막절 명절이 끝나고 이른 아침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위해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왔다. 이때 예수님은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이들을 향해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선포하였다.

요한복음 8:12

 

이 사건이 바로 여인의 뜰에 있는 연보궤 앞에서 일어났다.

요한복음 8:20

 

과부의 두 렙돈

13개의 연보궤 외에 은밀한 방으로 불리는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이곳은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 헌금을 내는 곳이었다. 경건한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비밀리에 헌금을 하곤 했다. 과부의 두 렙돈은 아마 이곳에서 은밀하게 드려졌을 것이고 부자들은 바깥에 있는 나팔 모양의 연보궤에 위풍당당하게 헌금을 넣으며 힘차게 나팔을 불었을 것이다.

누가복음 21:1-2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문

여인의 뜰 남쪽에 있는 여인 게이트는 당시 평민들이 이용하던 가장 보편적인 문이었다. 그러나 동쪽에 있는 순결과 공의 게이트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 특히 부자, VIP귀족들이 이용하던 전용문이었다. 부자들은 이 문을 통해 들어와서는 으스대면서 많은 양의 헌금을 연보궤에 넣었을 것이다.

북쪽에 있는 음악 게이트는 성전 제사를 드릴 때 찬양단으로 섬기는 레위인 찬양대가 사용하던 문이다.

 

요셉은 임신한 마리아를왜 가만히 끊고자 했을까?_간음이 의심되는 여인의 정결례

니카노르 게이트와 여인의 정결례를 한 장소

여인의 뜰 서쪽에는 니카노르 게이트라는 문이 있었다. 니카노르 게이트로 올라가는 계단은 15개인데, 계단 하나를 올라갈 때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편 12-134편을 한 편씩 불렀다. 유대 문헌 <미쉬나>에는 니카노르 게이트를 열고 닫는 데만 남자 20명이 동원될 만큼 거대하고 무거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니카노르는 사도해이전에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의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사도행전 6:5

 

니카노르 게이트를 지나면 이스라엘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이 나온다. 그러므로 니카노르 게이트는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경계인 셈이다.

민수기 511-31절은 니카노르 게이트에서 행하는 여인의 정결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결레를 하는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간음을 의심받는 아내였다. 결혼한 여인이 외간 남자와 간음한 것이 확인되면 돌에 맞아 죽는 처벌을 받았다.

요한복음 8:4-5/ 신명기 22:23-24

 

그러나 민수기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남편으로부터 간음을 의심받지만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오늘날 아내를 의심하는 의처증 남편과 비슷한데, 확실한 물증 없이 아내를 함부로 간음죄로 고소하는 것을 막고 사회적 약자인 여인들을 보호하고자 마련한 율법이었다.

민수기에 나오는 간음이 의심되는 여인의 정결례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 이루어졌다.

 

1단계_소제를 드리고 자신의 결백을 호소함

간음을 의심받는 여인은 니카노르 게이트에서 제사장에게 보리를 갈아서 소제를 바친다. 소제로 드리는 곡식은 일반적으로 밀이지만, 이 소제는 의심의 소재이므로 당시 가난한 자, 비참한 자의 식량이었떤 보리를 바친다. 또한 일반적인 소제에는 유향과 올리브 기름을 첨가하지만, 의심의 소제에서는 순수하게 보리 가루만 드렸다.

민수기 9:5

 

제사장은 의심의 소제를 받고 제단으로 가서 여호와 앞에 흔들고 소제 한 움큼을 취해 제단에서 태운다.

 

2단계_저주의 쓴물을 마시고 자신의 결백에 대해 책임을 짐

제사장은 그릇에 물을 떠서 성전 바닥의 흙먼지를 그 물에 섞어 저주의 쓴물을 만든다. 그리고 여인의 결백이 거짓일 경우에 임할 하나님의 저주에 대해서 경고하고 여인은 아멘, 아멘으로 두 번 화답함으로 모든 결과에 책임질 것을 맹세한다.

민수기 5:22

 

제사장은 저주문을 두루마리에 기록하고 이 두루마리를 저주의 쓴물에 담가 여인에게 마시도록 한다. 여인의 결백이 사실이면 아무런 해를 입지 않지만, 만약 거짓이면 저주문의 글귀들이 여인에게 그대로 임하게 될 것이다.

민수기 5:27-28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와 같다. 성전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명세한 이상 남편은 아내의 부정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웬만큼 강심장을 가진 여인이 아니라면 성전에서 저주의 쓴물을 마시면서까지 담대하게 거짓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처녀로 잉태한 마리아와 의인 요셉

누가복음 1:38

마태복음 1:18-19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의 신분은 몸은 처녀였지만 법적으로는 이미 요셉의 아내였다.한 남자의 아내이므로 외간 남자와의 간음죄가 법적으로 성립되고 최악의 경우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천사 가브리엘의 메시지를 듣고 순종한 마리아의 결단은 실로 목숨을 걸고 한 것이었다.

누가 보아도 마리아의 간음을 의심할 만한 상황에서 요셉의 행동은 남달랐다. 이러 경우 당시의 보편적인 이스라엘 남자들이라면 당연히 아내를 성전에 데리고 가서 정결례를 하도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가만히 끊고자 했다. 요셉은 자신의 심리적 만족과 안도감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먼저 생각했다. 간음이 의심되는 여인이 정결례는 일단 아내를 공적인 수치로 내몰게 한다. 요셉은 의인으로서 마리아를 이러한수치로 내몰지 않고 가많이 끊고자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