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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이야기

 

이스라엘은 어떻게 유월절을 준비하나?_북적북적한 유대 최고의 명절 준비

예수님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성 안으로 미리 보내 객실을 준비하게 하셨다.

누가복음 22:8

 

구석에 박힌 누룩을 제거하다

유대 달력으로 첫 달인 니산월(4월경) 14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유월절 준비의 가장 하아라이트는 그 전날인 13일 저녁부터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 일이다. ‘누룩을 제거한다고 하면 얼른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은 누룩이 들어간 빵가루 등을 찾아내서 불에 태우는 것을 뜻한다.

누룩을 제거하는 일은 그야말로 철저함이 요구된다. 성서시대에는 올리브 램프를 밝혀 가며 구석구석에 박힌 누룩을 완벽하게 제거했다. 이렇게 해서 찾아낸 누룩은 일정한 장소에 모아 두었다가 성전에서 보내는 신호에 따라 동시에 태워야 했다. 누룩을 제거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전함과 거룩해짐을 상징하는 의시이다.

고린도전서 5:6-7

 

아울러 이는 출애굽 할 때 누룩으로 반죽이 부푸는 것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급박하게 애굽을 벗어났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출애굽기 12:39

 

유월전 전야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올리브 램프의 불을 밝혀 누룩을 찾아내는 의식을 이해하고 나면 스바냐 선지자의 말씀이 와 닿게 된다.

스바냐 1:12

 

니산월 14일 아침이 되면 성전에서는 사람이 잘 보이는 곳에 두 개의 진설병을 가지런히 놓는다. 이중 하나를 치우면 이때부터 누룩이 들어간 음식을 먹지 말라는 신호다. 이후 남아 있는 진설병마저 치우면 집 안에 모아 둔 누룩을 일제히 불태우라는 신호다.

니산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이어지는 무교절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묵병만을 먹는 절기다.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모든 슈퍼마켓은 제빵 코너가 폐쇄된다. 이때에만 나오는 마짜로 불리는 무교병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마가복음 14:1-3

 

유월절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예수님은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셨다. 저마다 유월절 준비를 위해 육신의 정결과 누룩 제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을 때 예수님은 부정한 나병환자의 집을 찾아 함께 식사를 하셨다. 누룩을 제거하면서 출애굽의 역사를 기념하는 유월절이 임박했을 때 예수님은 기쁨의 절기에서 소외된 나병환자를 심방하신 것이다.

 

누룩을 제거하는 데 일주일씩이나 걸려?

이스라엘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일단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별로 없고, 휴일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사교육도 거의 없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절기들은 현대 이스라엘의 명절로서 법정 공휴일이다. 이중 유월절 명절이 되면 3주간의 긴 휴일이 이어진다. 이 정도면 거의 방학과 진배 없으며 이스라엘의 최고 명절이라 부를 만하다. 웬만한 직장도 유월절에는 2주 정도의 휴일을 갖는다. 유월절과 무교절로 이어지는 절기가 기본적으로 일주일간 이어지고, 유월절을 앞두고 집 안에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 별도의 시간으로 일주일이 주어진다.

무슨 누룩을 제거하는 데 일주일이나 걸릴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그것은 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유월절을 앞두고 대부분의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온 집안을 한바탕 뒤집어엎는 대청소를 한다. 일단 물에 들어가서 부풀려지는 곡물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 평소 아침 식사 대용으로 먹는 켈로그 시리얼 조각도 구석구석 뒤져서 찾아내야 한다. 소파, 장롱 등도 자리를 옮겨 가며 구석구석에 있는 누룩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낸다. 바쁜 현대 유대인들을 위해 이러한 누룩 제거를 대행해 주는 회사도 있다.

 

집안의 그릇을 정결케 하다

유월절에는 집 안에 있는 모든 그릇을 정결케 하는 의식을 갖는다. 돌그릇과 놋그릇은 정결탕에 가져가서 씻기만 하면 되지만, 흙으로 만든 질그릇은 부정해지면 깨뜨려 버려야 했다. 정결한 새 질그릇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모디인이라는 마을에서 주로 판매했는데, 제사장 가문이 많이 사는 모디인의 질그릇을 특별히 정결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6

 

가나 혼인잔치의 연회장 밖에는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돌항아리 6개에 물이 채워져 있었다. 돌항아리를 놓아 둔 것은 부정해지더라도 정결탕에서 깨끗하게 씻으면 재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흙으로 만든 항아리를 둘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부정해지면 매번 깨뜨려 버려야 했다. 그러면 항아리 값으로 가산을 탕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얀 수건, 유월절 빈 방있음

예수님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월절에 256,500마리의 양을 성전에서 도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 마리의 양을 최소 10명이 함께 먹어야 한다는 당시 랍비 문헌이 있는 것을 보면, 유월절 기간 동안 최소한 그 10배에 해당하는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오는 숫자가 다분히 과장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더라도, 성서시대에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순례자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예루살렘에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을 한꺼번에 수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성서시대에 예루살렘 주민들은 전국에서 몰려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객실을 내주어야 했다. 이때 객실료 명목으로 돈을 받게 되면 산헤드린에 즉시 고발되었다. 객실료는 돈이 아닌 순례자들이 가져온 그릇, 모피, 유월절 양의 가죽 등으로 대신했다. 집집마다 객실이 있었는데, 이 객실에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다는 표시를 집 앞에 햐안 수건을 걸어 두었다. 더 이상 공간이 없다면 하얀 수건을 거두어 들였다.

유월절 객실을 준비하러 성 안으로 들어간 베드로와 요한도 아마 하얀 수건이 걸린 예루살렘의 집들을 목격했을 것이다.

누가복음 22:8

 

유월절 양을 잡다

유월절에 도살할 양은 최소 4일 전(니산월 10)에 골라 두어야 했다.

출애굽기 12:3

 

유월절에 쓰이는 양은 생후 8일 이상 1년 미만의 것이었다. 유월절 양은 최소 10, 최대 20명이 함께 먹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이 함께 유월절 만찬을 했다면 당시 랍비들의 규약에 잘 맞는 숫자가 모인 것이다.

유월절에 먹을 양은 성전 안에서 의식에 따라 도살되어야 했다. 성전의 번제단의 두 줄로 늘어선 제사장들이 양의 도살을 도왔다. 한쪽 줄은 은그릇을 들고 다른 쪽 줄은 금그릇을 들고 제물의 피를 받았다 번제단이 있는 제사장의 뜰에 30명의 순례자가 들어서면 입구인 니카노르 게이트가 굳게 닫혔다.

이후 제사장 찬양대가 은나팔을 세 번 부는 것을 신호로 양이 도살되었다. 유월절 양은 각자가 도살하고 피는 번제단에 두 줄로 늘어선 제사장들을 통해 릴레이로 전달되었다. 번제단 바로 옆의 제사장은 마지막으로 피를 받아서 제단 밑에 부었다. 성전에서 도살한 유월절 양은 가지고 나와 석류나무 가지에 끼워서 화덕에 구웠다.

출애굽 날에 먹었던 유월절 양은 레위기의 제사법과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에 주어진 것이다. 율법과 제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앞서서 주어진 유월절 양의 피를 통해 출애굽을 한 것이다. 유월절 어린양으로 상징되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직도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즉 율법에 따른 제사장직인 아론의 반차 제사장이 생기기 전에 예언자적인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임하신 것이다.

히브리서 7;11

 

최후의 만찬에서 베드로는 어디에 앉았을까?_유월절 최후의 만찬

기독교 성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아닐까 싶다. ‘최후의 만찬으로 불리는 식사는 유월절 저녁에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해 자정 무렵에야 끝나는 유월절 식사를 말한다. 이 식사를 히브리어로 쎄데르라고 부른다.

전체 21장으로 이루어진 요한복음 13-17, 무려 5장의 말씀이 유월절 쎄데르 자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쎄데르의 자리 배치와 식사 순서, 음식의 메뉴 등과 관련된 배경 지식 없이 이 말씀들을 제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유대인들의 문화와 풍습에 맞추어 이 땅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신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테이블을 재현해 보도록 하자.

 

최후의 만찬 방은 사랑방?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마가의 다락방은 어떤 용도로 사용된 곳일까? 성서시대의 집들은 카탈루마로 불리는 손님방이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손님들이 머무는 사랑방쯤 될 것이다. 이 칼탈루마가 누가복음에는 여관으로 번역되어 있다.

누가복음 2:7

 

여관을 흔히 여인숙이나 모텔쯤으로 해석하는데, 이것 역시 성서시대 집들이 갖추고 있는 손님방일 뿐이다. 카탈루마는 모텔이나 호텔처럼 영업을 목적으로 손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 결코 아니다.

마가복음에도 동일한 헬라어 단어인 카탈루마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객실로 번역되어 있다. 동일한 단어가 한 곳에서는 여관으로, 다른 곳에서는 객실로 변역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분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우리말 성경은 번역의 일관성 작업을 진지하게 거쳐야 할 필요가 있다. 손님방을 의미하는 카탈루마의 의미를 볼 때, ‘객실로 번역하는 것이 성서시대 문화에 맞는 적절한 번역이 될 것이다.

마가복음 14:14

 

원래 광야에서 목축을 하던 반유랑 민족인 이스라엘 약속의 땅에 들어와 농경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농경 문화로 바뀌었음에도 목축 문화의 소중한 유산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광야의 손님 접대인데, 집집마다 있는 카탈루마에서 나그네를 위한 접대가 이루어졌다. 지금도 브엘세바 광야에 거하며 양들을 치는 베두인들은 손님 접대를 최고의 가치와 명예로 여긴다.

 

마가의 다락방은 2층 방

누가복음 22:12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마가의 다락방에 대한 묘사는 누가복음이 가장 자세하다.

첫째, 다락방이었다. 성서시대 대부분의 집들은 단층으로 이루어졌지만, 부유한 사람들은 2층으로 집을 올렸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의 제자인 마가는 동시대 사람들 중에 그럭저럭 재력을 갖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락방이라는 번역으로 인해 우리는 한국의 다락을 생각하기 쉽지만 이것은 2층에 있는 방을 가리킨다. 최후의 만찬 방은 2층에 있는 카탈루마였다.

둘째, 큰 방이었다. 이곳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충분히 큰 방이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 방에서 120명의 무리가 함께 기도 모임을 할 정도로 대단히 큰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13-15

 

셋째, 자리를 베푼 방이었다. 이것은 숙식을 위한 최소한의 도구를 갖추고 있었다는 말이다. 손님이 머무는 카탈루마에는 보통 메트리스나 쿠션이 구비되어 있었고, 손님들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오류

첫째, 테이블의 모양이 잘못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처럼 사각형의 테이블이 아니라, 한글 자음의 자 모양의 3면 테이블이어야 한다. 이러한 3면 테이블은 고대 로마 제국에서 사용하던 거 인데, 로마 제국의 속국으로 편입된 유대 땅에도 급속하게 보급되었다. ‘자로 움푹 들어간 곳을 통해 종들이 음식 서빙을 자유롭게 했다.

둘째, 테이블에 앉는 좌석 배치가 잘못되었다. 3면 테이블에는 상석과 말석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상석은 왼쪽 날개 부분이고, 말석은 오른쪽 날개 부분이다.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 상석은 당연히 그 식탁의 주빈이었던 예수님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좌석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처럼 가운데가 아니라 왼쪽 날개의 중앙에 있어야 한다.

셋째, 테이즐에 앉는 자세가 잘못되었다.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유월절 쎄데르 식사를 바닥에 앉은 자세에서 비스듬히 누워서 먹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친의 그림처럼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한 것이 아니다. 비스듬히 누워서 먹는 식사법은 주전 63년에 폼페이 장군에 의해 유대 땅이 로마제국으로 편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말씀처럼 출애굽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허리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서서 급하게 식사를 했다.

출애굽기 12:11

 

그러나 로마의 문화에 비추어 볼 때 서서 식사를 하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애굽에서 탈출해 자유인이 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식사는 로마의 문화 속에서 변천되었다. 노예처럼 서서 식사하던 데서 점차 앉아서 식사하고 더 나아가 로마의 귀족처럼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변천된 것이다. 이로써 완벼한 자유인이 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랍비 문헌은 유월절 식사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일 년 중 한 끼 식사, 즉 유월절 만찬만큼은 부자처럼 기대서 먹어야 한다.

 

기대서 식사를 할 때 머리는 테이블 쪽을 향하고 바른 뒤에 있는 벽을 향하게 된다. 이러한 식사 자세를 염두해 둘 때, 식탁에 있는 예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도 새롭게 와 닿을 것이다.

누가복음 7:38

 

제자들이 상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다.

자 모양의 3면 테이블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로마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로마 사회는 가장 상위층의 원로원 멤버를 시작으로 귀족, 시민, 노예로 이어는 사회 계급 구조가 매우 엄격했다. 공적인 모임에서도 신분에 따른 자리가 정해져 있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당시 로마 제국에 편입된 유대 사회의 계급 구조에 대해 언급하신다.

누가복음 14:8-10

 

3면 테이블의 경우 상석과 말석이 확실하게 구분되었는데, 이는 당시 로마의 계급 사회에 맞게 고안된 것이다. 3면 테이블이 갖추어진 최후의 만찬장에 들어갈 때 제자들의 주된 관심과 고민은 광연 누가 성석에 앉느냐하는 것이었다. 만찬장에서 식사하던 중 서로 누가 크냐의 문제로 제자들 간에 실랑이가 일어난 것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누가복음 22:24

 

3면 테이블의 상석은 왼쪽 날개 부분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세 명이 그곳에 앉는다. 중아에 잔치의 주빈이 앉고 좌에 주빈의 오른팔과 왼팔이 앉게 된다.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는 당연히 왼쪽 날개의 중앙에 예수님이 주빈으로 앉았을 것이다. 그리고 좌우에 누가 앉을 것인가가 제자들 사이에서 매우 민감하고도 치열한 쟁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의 치맛바람을 이용하면서까지 그 자리를 탐낸 것을 보면 상류층으로 올라고 싶은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마태복음 20:21

 

성서시대의 문화와 복음서의 기록을 토대로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 요한과 가룟 유다, 그리고 베드로의 좌석 배치를 유추해 낼 수 있다.

 

요한의 좌석

왼쪽 날개 부분의 중앙은 그 잔치의 주빈인 예수님 자리였다. 주빈의 오른쪽 자리는 주빈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앉았다. 그 자리는 바로 요한의 몫이었을 것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늘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로 표현했다. 이것은 요한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듯싶다. 최후의 만찬장에서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에 요한이 위치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왼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 앉는 당시의 풍습을 통해 볼 때, 요한은 분명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아서 왼쪽으로 기대어 예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을 것이다.

요한복음 13:23

 

가룟 유다의 좌석

잔치 테이블 상석에 있는 주빈의 왼쪽 자리는 가룟 유다였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떡을 찍어다가 유다의 입을 넣어 준 것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테이블은 3명의 한 조가 되어 겸상을 했는데, 오른손으로 떡을 쩍어다가 자신의 왼쪽에 앉아 있는 사람의 입을 넣어 주었다.

요한복음 13:26

 

이렇게 주빈인 예수님과 그 좌우에 앉은 요한과 가룟 유다가 최후의 만찬 테이블의 상석을 차지했다. 주빈과 함께 그 좌우에 앉은 일은 명예를 중식하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누구나 추구하던 복이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왼편에 앉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자신의 몸을 왼쪽 팔꿈치를 이용해 기대던 당신 풍습에 기초해 볼 때, 예수님은 배반자 유다의 품에 안겨서 식사했음을 알 수 있다. 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 고 있던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안겨서 식사를 하심으로써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모범을 보이셨다. 결국 버티다 못한 유다는 만찬장을 떠나게 된다.

요한복음 13:1

 

베드로의 좌석

베드로의 좌석은 아마 테이블 오른쪽 날개의 가장 말석이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말석에 앉았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정황적 증거들이 있다.

첫째, 베드로는 예수님의 좌우 상석에 당연히 요한과 자신이 앉을 것으로 기대했다. 베드로에게 2개 밖에 남지 않은 상석의 경쟁자는 요한과 야고보였다. 그런데 한 자리는 이미 요한이 차지했고 나머지 자리마저 의외의 인물인 가룟 유다가 차지하고 말았다. 상석을 차지하지 못한 베드로는 내친김에 가장 말석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유다는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유대 지방의 소도시인 가룟출신이었다. 갈릴리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철저하게 경멸하고 무시했다. 유대 사람들은 갈릴리 출신들에게 딸을 시집 보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짐승과 같이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곧 갈리리 사람들을 짐승에 비유했던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 지방 출신의 유다에게서 최대한 멀리 앉으려 했을 것이다.

둘째, 배반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베드로가 보여 준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무시무시한 예언 앞에 제자들은 저마다 저는 아니죠?’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때 베드로는 요한에게 머릿짓을 해서 배반자가 과연 누구인지 예수님꼐 묻도록 신호를 보냈다. 베드로의 신호를 받고 예수님의 품에 안긴 요한이 주여 누구오니이까라고 묻는다.

요한복음 13:24-25

 

베드로가 요한에게 머릿짓 신호를 보낸 것을 볼 때 베드로는 상석에 앉은 요한의 맞은편인 말석에 앉았을 것이다.

셋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순서와 베드로의 엉뚱한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 자신의 옆에 앉은 제자들로부터 차례로 발을 씻겨 주셨다. 민망하지만 제자들은 순순히 예수님께 자신의 발을 맡겼다. 드디어 말석에 앉아 있던 베드로 차례가 되었지만 그는 발을 내밀지 않고 버텼다.

요한복음 13:8

 

일반적으로 하인들이 옆에서 시중들며 발을 씻겨 주어야 하지만, 최후의 마찬은 당시 예수님을 체포하려던 종교 지도자들을 피해서 외부인에게 고개되지 않은 비밀스런 모임이었다. 하인이 없다면 당연히 가장 말석에 앉은 사람이 참석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이 불운율이었다. 베드로는 말석에 앉은 것도 서러운데, 다른 제자들의 더러운 발까지 씻어 줘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가 끝까지 모른 척하며 버티자, 언제나 모범으로 가르치시던 예수님이 일어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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