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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야기

 

늑대, 양의 최고의 천적

히브리어로 늑대는 제에브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사납고 잔인하며 난폭한 동물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사납고 난폭한 동물로 여겨진 늑대는 성경에서 종종 양과 함께 등장한다. 자체적인 방어수단이 아무 것도 없어 맹수에게 고스란히 뜯어 먹힐 수밖에 없는 양은 사나운 늑대와 가장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양의 최고 천적은 바로 늑대다. ‘거짓말하는 양치기이야기에도 늑대가 언급된다. 양의 천적으로서 늑대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나온다.

 

요한복음 10:12

우리는 흔히 삯꾼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수백, 수천 마리의 양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은 일정한 삯을 주고 삯꾼에게 자신의 양들을 분배해서 맡겼다. 성서시대에 양떼를 치는 목자들은 대부분 삯을 목적으로 남의 양을 치는 삯꾼 목자였다. 이들은 위험한 광야에서 홀로 수십 마리의 양을 쳤기 때문에 갑자기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아도 책임이 없었다. 늑대가 나타날 경우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양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게 이들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양도 자기의 양이 아니고, 맹수에게 뜯어 먹힌 양들에 대한 배상 책임도 없고, 일하는 목적도 순전히 삯에 있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22:13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위험성을 묘사하면서 양과 늑대의 극적인 대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본성은 노략하는 늑대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7:15

 

당시 교육 받은 유대인들은 구약에서와 같은 의미의 진정한 선지자는 더 이상 출현하지 않을 것을 알았고 거짓 선지자들이 계속 난무 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도 1세기에 있었던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늑대와 양이 함께 뒹군다?

이사야 11:6

수메르 신화 엔키와 닌후르삭을 보면 사자와 여우가 어린 양을 죽이거나 잡지 않는 유토피아를 묘사하고 있다. 유토피아를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도 약탈자가 없는 세상, 특히 뱀, 전갈, 사자, 늑대가 없는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천적 관계인 늑대와 양의 이미지를 알 때 두 동물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메시아 시대에 임할 유토피아적 환상을 묘사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특히 본문에는 단순히 양이 아니라 어린 양’, 탈레를 언급하고 있다. 가뜩이나 아무런 방어력이 없는 동물이 양인데, 거기다가 어린 양이라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늑대 앞에 차려놓은 맛있는 식탁일 것이다. 이것은 굉장한 과장법적 표현이다. 하지만 메시아 시대에는 늑대가 어린양을 상하게 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논다는 것이다.

 

누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가?

사무엘하 18:27

이 말씀은 압살롬의 반란이 성공적으로 진압된 후 그 결과를 다윗 왕에게 전하러 가는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에 대한 이야기다. 다윗 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라고 하는 두 명의 제사장이 있었지만 후에 아도니야 반란에 아비아달이 가담함으로써 솔로몬 때는 사독이 홀로 제사장 직분을 수행했다. 이처럼 사독 집안은 다윗 통치 후기에 있었던 두 번의 쿠데타에서 항상 다윗 편에 섬으로써 충성되고 신실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일으키고 패역무도하게도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반란의 성공적인 진압보다는 아들 압살롬의 안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반란 진압을 책임진 요압 장군에게도 절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그것이 아마도 못난 자식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다윗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온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이야기를 통해 사슴과 노루에 대한 유대인들의 상징과 이미지를 살펴보자.

 

아름다움과 영광

사슴과 노루는 유대인들에게 비슷한 상징을 가졌기 때문에 함께 다루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사슴은 히브리어로 아얄이라고 하는데, ‘도움, 을 의미하는 에얄에서 파생된 단어다. ‘아얄에얄의 히브리어가 똑같다고 하는 분이 있겠지만, 이것은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이루어진 히브리어의 특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오해다. 모음 부호를 찍게 되면 두 단어는 아얄에얄처럼 발음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귀 기울여 주심을 바라며 죽어 가는 자의 기도를 담고 있는 시편 88편에는 사슴의 어원이 되는 에얄이 등장한다. 우리말로는 으로 번역되어 있다.

시편 88:4

 

여호수아의 정복전쟁 당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쪽 가나안 연합군을 격퇴시킬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태양과 달이 멈추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이때 달이 멈춘 곳이 아얄론 골짜기인데, ‘아얄론사슴의 들판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10:12

 

노루는 히브리어로 쯔비라고 하는데 현대 이스라엘에서 남자의 이름으로 종종 사용된다. 암컷은 쯔비야. 우리말 성경에는 노루로 번역되어 있지만 쯔비는 누비아 아이벡스로서 산양과 가젤 따위의 영양류를 가리킨다. ‘쯔비는 동물인 노루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영광을 뜻하는 명사로도 사용된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화려한 장식에서 화려한은 히브리어 성경에 쯔비로 되어 있다.

에스겔 7:20

 

이사야서에 나오는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에서 영광역시 히브리어로 성경에는 쯔비로 되어 있다.

이사야 24:16

 

남유다에서 아달랴가 다윗의 후손을 죽이고 최초의 여왕이 되지만 쿠데타로 암살되고 성전에 숨겨진 요아스가 7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다. 요아스의 어머니인 시비아는 히브리어로 암노루를 뜻하는 쯔비야. 아마도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아름답고 영광스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작명했을 것인데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되고 자신은 남유다의 태휴가 됨으로써 그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열왕기하 12:1

 

아름답고 좋은 의미로만 사용되는 사슴과 노루는 모두 정결한 동물로서 식용이 가능했고 솔로몬 왕의 식탁에도 올랐다.

신명기 12:15, 열왕기상 4:22-23

 

우아한 몸체와 함께 크고 검은 눈을 가진 노루는 아름다움을 묘사한 시적인 표현에 자주 등장한다.

잠언 5:19, 아가 4:5, 7:3

 

이같은 사슴과 노루 이미지는 중근동 지방에서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가나안의 풍요의 여신인 아스타르테는 노루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남부 아라비아 지방의 아슈타르(그리스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슷) 숭배자들에게도 노루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졌다. 길거리에서 노루의 시체를 보면 깨끗이 닦아서 매장해 주고 7일간 죽은 노루를 위해 애곡했다고 한다.

 

민첩하고 빠른 발

사슴과 노루는 가늘고 호리호리한 다리로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울퉁불퉁한 길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린다. 수메르 문헌에도 빠르면서도 넘어지지 않는 사슴과 노루를 사용한 비유들이 종종 발견된다.

빠른 발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슴의 이미지는 현대 이스라엘에도 남아 있다. 이스라엘의 우체국 로고에는 사슴이 나온다. 빠른 발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슴의 이미지를 우체국에 따온 것이다.

 

아름다움, 영광의 이미지 외에도 사슴과 노루는 그들의 민첩하고 빠른 발로 인한 이미지와 상징들이 성경에 많이 등장한다.

사무엘하 2:18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죽고 나서 잠시 동안이지만 북이스라엘은 이스보셋이, 남유다는 다윗이 통치하던 분열의 시기가 있었다. 이때 기브온 못가에서 북쪽의 아브넬 군대와 남쪽의 요압 군대가 대치하면서 군인들끼리 가벼운 힘자랑이 벌어졌다. 이것은 유혈 충돌로 발전했고 요압의 동생 아사헬은 그의 들노루같이 빠른 발로 아브넬을 추격하다가 아브넬에게 죽고 만다.

이사야는 구원받을 백성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그날에는 저는 자들도 사슴같이 뛰게 될 것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사야 35:6

 

다윗은 사울을 피해 광야에서 해매고 다녔는데, 사울의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다윗의 발은 마치 사슴과 노루의 민첩한 발과 같았다. 다윗은 자신에게 원수로부터 빨리 도망칠 수 있는 암사슴의 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시편 18:31-33

 

잠언 기자 역시 사냥꾼의 손에서 가볍게 벗어나는 노루의 님첩한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다.

잠언 6:5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열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특별히 납달리를 향한 축복문에서 암사슴을 언급하고 있다.

창세기 49:21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는 이 구절을 독특하게 해석하고 있는데, 바로 납달리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의 비옥한 토양으로 인해 열매들이 빠른 속도로 익는다고 해석한 것이다. 실제로 납달리 지파에 속한 게네사렛 평야는 이스라엘에서 최고로 비옥한 지대로서 가장 먼저 보리 추수를 했다. 게네사렛 평야에서 추수된 이 첫 보리는 초실절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려졌다.

 

빠른 발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

오늘날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는 사슴과 노루와 같이 빠른 발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역할이 있었다. 바로 전령이다. 전령의 역할 중 전쟁의 승패를 왕에게 알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이 임무만을 위해 특별히 훈련을 받기도 했다. 고대 근동의 문서인 마리 문서에는 외교적인 급보나 대상단들이 접근한다는 소식, 전쟁터에서의 작전 지시를 전하는 전령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특히 수하룸이라는 청년은 체력이 좋고 발이 빨라 전려응로서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남기기도 했다.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압살롬 전투의 승리는 결과를 기다리는 다윗 왕에게 분명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모두 있었다.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이다. 아히마아스는 반란군 사령관인 요압에게 자신이 가서 다윗에게 이 소식을 전하겠다고 나선다.

사무엘하 18:19

 

이때 요압이 아히마아스를 극구 만류한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18:20

 

요압은 대신 구스 사람을 전령으로 보낸다. 하지만 아히마아스는 자신도 뒤를 따라가겠다고 거듭 간청했고 요압은 마지못해 승낙한다. 요압은 구스 사람이 훨씬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당연히 아히마아스가 늦게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사슴과 같이 빠른 발을 가진 전령이었고 지름길로 달려 구스 사람보다 먼저 도착했다.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좋은 소식인 전쟁의 승리만을 전하고 압살롬 관련 소식은 함구했다.

사무엘하 18:29

 

압살롬과 관렬된 나쁜 소식을 전하는 일은 뒤이어 도착한 구스 사람의 몫으로 넘어갔다.

사무엘하 18:32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죽음을 잘 알면서도 함구한 이유는 아마도 다윗의 기억 속에 평행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로 남길 바라서였을 것이다.

 

아름답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로마서 10:15

이 말씀은 바울이 이사야에서에 인용한 것이다.

이사야 52:7

 

이사야와 바울은 아름답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을 노래할 때 아마도 사슴과 노루의 발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민첩한 발을 가리키는 사슴과 노루의 이미지는 아가서에서도 등장한다.

아가 2:8-9, 8:14

 

사슴과 관련된 또 다른 표현

시편 42:1

이 시편 말씀은 사슴과 관련된 말씀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사슴과 관련된 사징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목이 말라 시냇물을 찾는 것은 사슴만의 특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다에서 출토된 고대 유물은 이 말씀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유다 지방에서 출토된 주전 8세기와 7세기 유물 중에는 물을 찾아서방황하는 암사슴을 새긴 안장이 많다. 성서학자인 킬은 이러한 대중적인 예술 모티프와 시편에 사용된 비유가 서로 관려이 있을 것으로 본다.

메시아의 시편으로 자주 읽히는 시편 22편도 사슴과 관련이 있다. 이 시편의 머리말에는 영장으로 아옐렛샤할에 맞춘 노래라고 적혀 있다. ‘아옐레트 하샤하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새벽동틀 녘의 사슴인데 성서학자들은 이것이 고대 음악의 멜로디의 일종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반, 뛰어난 적응력과 기지의 동물

잠언 30:24, 26

잠언 기자가 말하고 작고 보잘것없는 미물 네 가지 가운데 사반이 등장한다. 사반은 히브리어로 샤판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바위너구리 또는 바위오소리를 말한다. 사반은 바위로 된 벼랑 끝이나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절벽에 사는 발굽이 있는 포유동물이다. 시편 기자도 바위 틈에 사는 너구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시편 104:18

 

사람은 몰론 다른 동물들도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곳에 고립되어 생활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사반의 능력은 우리에게 적응력기지라는 교훈을 준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적응력과 기지를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사반과 같은 작은 동물로부터도 우리는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사반은 또 요시야 왕 때 서기관의 이름으로도 성경에 등장한다. 요시야 왕 18년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바견하자 사반이 이것을 왕에게 읽어 주었고 왕은 옷을 찢으며 회개했다. 여기서 위대한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열왕기하 2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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