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중 목사의 "성서읽기" / 마가복음 7장

by 좋은만남 posted Nov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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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장의 구조

끝없는 편력(遍歷) : 6,6b-8,26

  거짓된 부정과 진정한 부정 7,1-23

  이방 지역에서 행한 기적 7,24-30

  귀머거리를 낫게 함 7,31-37

 

embalming 시체방부보호 7,6


"Isaiah prophesied rightly about you hypocrites, as it is written, 'This people honors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embalming향유를 바르다라는 어원에서 출발한 종교 행위입니다. 미이라(mummy)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신의 아들은 미이라가 되어 정작 그는 없어지고 썩지 않은 육체만이 남았습니다.

인간은 진리를 향해 돌아서는 일을 거부해 놓고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 종교적인 활동에 몰두하는 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율법적인 결속을 공동체를 해치는데 이용하면서도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공동체의 손과 발이 되기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하기분명 훨씬 용이한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군요.

 

왜 이리도 박하십니까? 7,27


"Let the children be fed first, for it is not fair to take the children's food and throw it to the dogs."


예수, 참 박해 보입니다. 그래서 좀 불만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이 본문 자체에서 보다는 문맥에서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예수는 바리사이파적 경건생활에 대해 비판하십니다. 그들은 율법의 행위는 있으나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 바리사이파와 시로페니키아(Syrophoenicia) 여인을 보다 적극적으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과장되어 예수가 박하면 박할수록 이 이방여인의 모범적 신앙은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되는군요.

공적이나 특권을 내세우지 않는 이 이방여인의 무조건적인 신뢰. 마가 공동체가 돌아보아야 했던 믿음의 본질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 됩니다.

 

무엇으로 인한 탄식일까? 7,34


Then looking up to heaven, he sighed and said to him, "Ephphatha," that is, "Be opened."


무엇에 대해 그리 탄식하셨을까 묻습니다. 예수 앞에 놓인 듣지 못하는 이, ‘듣지 못하는이에 대한 동정일까요 듣지 못하는 에 대한 동정일까요?

열림에 대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기중심적 오해가 있습니다. 너무도 명확히 보이는 사건에 끌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까지 합니다.

예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경고하십니다. 열림으로 닫히게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려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예수의 탄식으로 돌아가, 이러한 우리 오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시는 가슴 저미는 그의 사랑을 만납니다.

 

함께 나누는 이야기

페이스메이커

 

소설가 김소진이 쓴 <마라토너>란 단편에 한 노장 마라토너가 등장합니다. 그는 스스로 페이스메이커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중심 선수 옆에서 달려주는 바람잡이역할입니다.

이봉주 선수 같은 히어로 선수들이 잘 뛸 수 있도록 적절하게 보조를 맞춰주기도 하고 라이벌 외국 선수를 견제하기도 합니다. 페이스메이커는 완주를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나의 바람잡이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지치지 않도록, 또는 무리하지 않도록 보조를 맞추어 함께 달려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 인생의 달음질은 어떠한 곤경도 이겨낼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때로는 엄마의 손을 쥐고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때로는 아버지의 넉넉한 등에 업혀 사나운 여울을 건너는 아이처럼, 인생은 내 힘만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한 발자국씩 동행하는 길, 그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달리는 중에 이미 행복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의 행복은 경주가 끝나봐야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