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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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난 이야기, 모세

 

“에잇, 이제 딸이라는 말 듣기도 싫고 딸아이 얼굴 보기도 싫다. 당장 갖다버려라.”

오구대왕이 역정을 내어 벼락같이 호령을 하네. 어느 영이라 거역할까. 하릴없이 아기를 갖다 버리는데, 마구간에 버리이 말이 쫒아 나오고, 외양간에 벌니 소가 쫒아 나오네. 오구대왕이 또 벼락같이 호령하기를,

“그런 데 버릴 것이 아니라 멀리 가서 아주 돌아오지 못하도록 옥함에 깊이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라.”

“버릴 아이 본이름이 무슨 소용 있으리요. 본이름은 그만두고 별명만 지어 주되 바리데기라 하시오.”

 

버려지는 아이. 세월호. 아이의 죽음. 죽은 아이라도 기다리는 이 때, 참 먹먹한 이야기입니다.

바리데기 이야기의 한 부분입니다. 오구대왕이 일 년을 미루어야 아들을 낳는다는 예언을 듣지 않고 나은 일곱 번째 딸. 버려진 아이란 뜻의 바리데기입니다. 아이는 그 이름대로 강물에 버려지게 되고 한 노부부에 의해 구해져 키워집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오구대왕은 죽을병에 걸리고 마는데 서역(저승)의 약수만이 아버지를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받던 여섯 언니들은 모두 그 길을 거부하는데 바리데기만이 기꺼이 서역의 길로 들어섭니다. 서역에 도착한 바리데기, 수문장은 결혼과 출산 후에야 약수를 주겠노라 합니다. 바리데기는 이 모든 약속을 이룬 후 수문장과 함께 약수를 가지고 돌아와 아버지를 되살립니다. 그리고 바리데기는 죽은 자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고 저승으로의 길을 돕는 여신이 됩니다.

바리데기의 ‘고난 이야기’는 무교巫敎의 ‘사령死靈굿, 곧 죽은 사람을 위한 굿에서 무당에 의해 ’오구풀이‘란 이름으로 오늘까지 재현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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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굿, 김수남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약의 바리데기, 모세 어떨까요?

이집트의 파라오는 늘어나는 노예 히브리 사람들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히브리 사람의 아들들을 강물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죽음의 시대에 한 아이가 태어납니다. 하지만 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어머니는 역청과 나무진을 바른 갈대상자에 아이를 넣어 강에 띄웁니다. 우연히 이 아이는 이집트의 공주에 의해 건져져 공주의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공주는 이 아이에게 이름을 주는데, 물에서 건진 아이, 곧 모세입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모세, 같은 민족인 히브리 사람들의 고통스런 노동을 본 그는 이집트 감독관을 죽입니다. 이 살인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미디안으로 달아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양을 치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당시 그의 마음은 아들 이름 ‘게르솜’에도 나타나는데, גּרשׁ(가라쉬), ‘내쫓다’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아이의 이름을 짓고는 “내가 낯선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구나!”라고 슬퍼 외칩니다. 하지만 신은 다시 그를 부르는군요. 불꽃으로 나타난 천사, 불이 붙으나 타지 않는 덤불의 놀라운 경험과 함께 신, 야훼를 만나고 또 ‘노예로 살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을 구원하라.’는 명령을 듣고 그 삶으로 불리게 됩니다.

강에 버려지는 모세, 사막으로 쫓기는 모세,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을 만나고, 신의 사람으로 불리고, 신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고난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예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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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 6세기 경, 모자이크, 산 비탈레 성당, 라벤나, 이탈리아

 

미술 시간, 종이를 작게 오려 붙여 큰 그림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여간 수고로운 작업이 아닙니다. 종이를 작게 자르는 것도 자르는 것이지만 작은 종이 조각 하나하나에 풀을 바르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이 온통 검게 물들기 일쑤입니다. 그렇게 온통 물든 손가락으로 다시 풀칠을 하다보면 다른 작은 조각에까지 검정물이 듭니다. 난감합니다. 게다가 밑그림이 조금 크거나 조각이 너무 작기라도 하면….

‘모자이크’ Mosaic, 우리말로 ‘쪽무늬그림’은 작은 돌, 도자기, 타일, 유리, 패각, 나무 등을 사용하여, 건축물의 마루나 벽면, 혹은 공예품의 장식을 위해서 예로부터 사용되던 방법입니다. 이런 모자이크는 고대 교회의 내부를 꾸미는 데에도 자주 쓰였습니다. 모자이크는 자체의 예술성도 예술성이지만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벽은 실내로 들어온 빛이나 촛불 같은 조명 등을 여러 빛으로 반사해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산 비탈레 성당은 이러한 모자이크로 장식되었는데, 오늘 그림,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가 그 중 하나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 출애굽기 3:1-2

 

그림의 배경이 되는 성서본문입니다.

샌들의 끈을 다시 묶고 있는 모세,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조금 우스꽝스런 신의 손길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이 친히 함께 한다는 것을 아주 직접적인 손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손길을 느끼게 된 계기를 모세 주위 여기저기의 불타는 떨기나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둘러싼 불타는 떨기나무, 마치 신이 함께 하는 것에 바깥은 없다는 듯 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불타는 떨기나무 그림은 불타는 떨기나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세로 그려져 있는데, 오늘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하늘을 얼굴을 돌려 올려다보고 있군요. 그 모든 사건들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그리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모세의 신앙은 아닐까요? 그러니 모세, 머리 뒤 후광으로 표현한 것과 같이 성인saint이 맞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종교적 고난 이야기를 탄핵에 대입해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태극기 집회입니다.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1858~1917)은 그의 책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종교의 발달을 공동체적 삶을 통하여 얻는 감정적 안정으로 이해했습니다. 여기서 공동체적이란 같은 상징, 주기적 모임, 정해진 의례 그리고 집단 동질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여기에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고난 이야기로 읽는다는 것입니다. 파면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예수이며, 언론은 예수를 법정에 세운 제사장, 결정적인 물증을 조작했다고 지목하고 있는 고영태씨는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 그리고 파면을 확정한 헌법재판관들은 예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르켐이 다루지 않은 것 그리고 태극기 집회가 담지 않은 고난 이야기의 목적이 있습니다. 바리데기, 모세, 그리고 모든 종교적 고난 이야기는 내용이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이야기되고 또 이루어야할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의지입니다. 그 신의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하겠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 출애굽기 3:9-11

 

고난 이야기 속에 신은 함께 하여 고난에서 일으켜 새로운 신의 의지가 펼쳐지는 세상을 만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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