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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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미물微物의 소리, 발람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하였으나, 도마는 그들에게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요한복음 20장 24-25절]

성서 새번역 본에는 그리스어 성서 본문에 없는 소제목들이 달려 있습니다. 위 도마에 대한 이야기의 소제목은 ‘도마의 불신앙’입니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소제목이겠지만 그의 일생에 비춰서는 그리 공정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그를 대표하는 표현은 ‘의심 많은 도마’가 되어 버립니다.
도마는 갈릴리 호수의 어부로 예수와의 만남 후 제자가 되었습니다. 위 본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는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를 만나 손에 못자국을 보고 또 넣어 보고 예수의 옆구리에 넣어 보고 난 후 부활에 대한 믿음을 가졌을 뿐 아니라 삶이 놀랍도록 변화되게 됩니다. 성서 바깥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도마 행전』에는 왕궁 건설자로 인도까지 가서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인도 반도의 서쪽에 위치한 케랄라 주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도마 사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도마의 선교와 순교로 인해 인도 그리스도교라는 독특한 형태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도마는 가톨릭에서는 건축가와 목수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으며, 1972년 교황 바오로 6세는 도마 사도의 순교 1900주년을 맞아 인도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도마와 함께 읽을 수 있는 구약 성서의 인물이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에 나오는 예언자 발람입니다. 하나님의 우리에게는 ‘발람과 나귀’란 제목으로 친숙합니다. 야훼의 천사로 인해 마음을 바꾸게 된 발람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본 후 삶이 변하게 된 도마의 원형으로 생각됩니다.
민수기 22장은 예언자 발락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와 히브리인, 그들은 요르단의 동쪽 지역을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갑니다. 모세는 그 길 위의 지역 왕들에게 안전히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지만 거절당하고 히브리인은 지나는 모든 영토를 정복하게 됩니다. 모압의 왕 발락은 그들이 모압 땅에 다다른 것에 적잖이 당황해, 히브리인들과의 전쟁을 대비하며 그들을 저주하기 위해 발람을 불러오도록 원로들과 고관들을 보냅니다. 발람이 나귀에 올라 출발하는데 그 길 위에서 칼을 빼든 야훼의 천사를 세 번이나 만납니다. 나귀는 천사를 피하려 하지만, 야훼의 천사를 볼 수 없었던 발람은 번번이 나귀에게 채찍질을 해서 다시 길로 들어서게 합니다. 바로 그때 야훼는 나귀에게 말하는 능력을 주고 나귀는 입을 열어 말합니다. “나는 지금껏 충실했는데 왜 내게 채찍질을 합니까?” 그러자 야훼는 칼을 뽑아들고 서 있는 자신의 천사를 발람이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고 그에게 말합니다. “왜 너는 네 나귀를 세 번씩이나 때렸느냐?” 그러자 발람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는 발락에게로 갑니다. 발락은 발람을 이스라엘인 진지로 보내 저주를 내리게 하지만 오히려 히브리인을 세 번 축복하고, 발락에게 이들의 찬란한 미래를 예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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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라스트만, 『발람과 나귀』, 1622, 뉴욕, 개인 소장.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나귀와 발람의 표정입니다. 나귀의 눈에서는 칼을 들고 앞 길을 막아선 야훼를 피하고자 했으나 세 번에 걸쳐 채찍질을 한 발람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습니다. 나귀의 열려진 입은 그 원망을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발람의 채찍은 채찍이라기보다는 몽둥이에 가깝습니다. 이유 없이 갈 길을 지체하는 것 같은 나귀에 대한 이해하지 못함의 크기만큼 커다랗습니다. 하지만 발람이 이제 야훼로 인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의 놀란 큰 눈은 칼을 든 야훼의 천사를 본 것이 분명합니다.
여성처럼 그려진 야훼의 천사, 그가 든 칼이 아니라면 두려워 보이진 않습니다. 하긴 칼을 든 이유가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축복의 선언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무서울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조금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면 야훼의 천사가 들고 있는 칼은 역사적 고증을 거치진 않았습니다. 화가가 그린 17세기를 반영한 듯 반듯한 검을 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모세의 이집트 탈출 당시에는 이런 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발람과 야훼의 천사 사이에 그려진 인물들. 흐릿한 모습 속에서 여전히 발람과 나귀에게 일어난 야훼의 천사와의 만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 멀리 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 말을 탄 사람은 발락은 아닐까? 히브리인들의 접근 앞에 두려운 마음에 발람의 예언을 마중 나온 간절한 기다림이 느껴집니다.  

20170618_006.jpg 『목탁치는 우牛보살』, 강화도 선원사지.

강화도 선원사지에는 유명한 소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소가 목탁을 친다는 소문이 한동안 자자해 TV에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직접 이 특이한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정말 제법 그럴 듯한 목탁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습니다. 목탁 소리의 실제는 소의 혀 차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 실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탁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이제 이 소를 그냥 소라 하지 않습니다. 우牛보살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우보살님의 목탁 소리 앞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부처님의 가피 곧 부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또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보살님들은 구제역을 넘지 못하고 살처분되었습니다.
발람의 나귀, 강화의 우牛보살의 공통점은 듣는 이들에게 깨달음과 변화를 준다는 건 아닐까? 예언자 발람. 신의 소리를 듣고 대언하는 그는 세 번에 걸친 나귀의 거부에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나귀를 통해 신을 만나게 되고 깨닫게 되고 변화됩니다. 강화의 우보살님을 만난 사람들은 소의 혀 차는 소리에서 목탁 소리를 듣고 부처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고 또한 변화됩니다.
독일의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만을 보게 된다.’는 ‘지향성 intentionality’을 말합니다. 어느 날 신발을 사고 싶은 날에는 하루 종일 다른 사람의 신발만 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도 신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듣지 않는 걸까요? 후설의 이야기를 빌리면 우리의 관심이 다른 데 가 있어 지나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주변에 귀 기울여 보세요. 신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우리를 부르시는 신의 소리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로 변화되기를 한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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