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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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생각하는 사람들, 가나안 정탐대

일본에 대한 흉흉한 소식이 조선 조정에 들려옵니다. 여러 곳에서 활동하던 무사들이 정리되고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조선 조정은 일본의 상황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정탐꾼이 보내진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은 자국의 경계와 검문을 강화합니다. 그러자 조선 조정은 1590년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그리고 허성을 종사관으로 임명하여 공식적인 사절단인 조선통신사를 일본으로 파견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후 무언가 일이 꼬여가기 시작합니다. 
통신사 황윤길의 말합니다. 
“필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부사 김성일이 잇습니다.
“그러한 정상은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인심이 동요되게 하니 사의에 매우 어긋납니다.”
함께 일본을 다녀온 통신사와 부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통치자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외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반짝하여 담과 지략이 있는 사람인 듯 하였습니다.”라고,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와 같으니 족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라고 부딪칩니다.
선조수정실록 25권, 선조 24년 3월 1일 정유 3번째 기사입니다.
일본에 대한 혼란스런 보고, 조선 조정은 과연 전쟁 준비를 해야 할까요 하지 않아도 될까요? 이런 가운데 1594년은 다가오고 7년간의 긴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나안을 눈앞에 둔 히브리 백성들에게도 혼란이 일어납니다. 민수기 13-14장의 기록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도착할 무렵 모세는 여호수아를 포함해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모아 정탐꾼으로 보내어 그곳을 살피게 합니다. 40일 후, 정탐꾼들은 돌아와 가져온 커다랗고 먹음직스런 포도와 석류 그리고 무화과를 보여주며 모세에게 보고합니다. 
“틀림없이 그곳은 우유와 꿀이 흐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나안 큰 성벽 도시에 사는 강대한 나라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때 갈렙이 모세 앞에서 혼란스런 사람들을 조용히 시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그러나 강인한 목소리에 담대함을 담습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정탐꾼들은 “우리는 그들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포기를 내놓습니다.
이제 서로 다른 두 보고를 들은 히브리 사람들, 겁을 먹고 불평합니다.
“차라리 이집트나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야훼는 히브리 사람들의 징징거리는 소리에 지칩니다. 결국 그들을 40년 동안 사막에 머물 필요가 있다고 결정합니다.

giovanni.jpg
조반니 란프랑코, 「모세와 가나안에 파견했던 사자들」,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게티 미술관.

정탐꾼들이 40일 간의 가나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가운데 젊은 정탐꾼, 오른손으로는 무화과를 들고, 왼손 검지로는 동료들이 메고 오는 포도송이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풍성하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들입니다. 그리고 왼 편의 한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이 가나안에서 본 사실을 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큰 눈과 벌어질 듯한 입은 그 소식이 짐짓 놀라운 것이며, 그로인한 서두름이 배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포도송이를 맨 왼쪽의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정탐꾼의 눈가와 이마는 그가 메고 온 풍요로움과 달리 무언가 두려운 기색이 스며있습니다. 굳게 다문 그의 입이 불안합니다. 그리고 젊은 정탐꾼을 향해 급하게 돌아보는 다른 한 젊은이의 입에서 그 불안이 선언될 것 같습니다. 
그림 왼 편 붉은 옷을 입고 지팡이를 든 모습, 역시 지도자로서의 모세를 그리고 있습니다. 놀라운 눈빛을 하고 있음에도 눈빛 자체보다는 바짝 힘이 들어간 손가락, 펼쳐진 오른손으로 눈길이 미칩니다. 그 손은 그림을 정지시키고 있습니다. 
긴장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풍요로운 가나안 앞에서 나아감과 멈춤 사이에서 갈등할 것입니다. 그 갈등의 상황으로 우리를 몰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림의 역동적 배경은 이러한 몰입을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상적인 모습은 그림의 화가 조반니 란프랑코(Giovanni Lanfranco, 1582~1647, 이탈리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을 ‘민중people’과 ‘대중mass’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조금 어려운데 이 둘을 구분하는 건 능동과 수동입니다. 민중은 조금 더 능동적인 사람들을, 대중은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생각할 수 있는 사람과 생각이 주어지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Louis Pierre Althusser, 1918~1990)와 그의 제자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의 구분점이기도 합니다. 랑시에르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의 능동성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조했다면, 알튀세르는 세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수동성과 스스로 생각한 것이라 착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선통신사 대열의 부사 김성일은 민심이 흔들릴 것이라 걱정하고, 많은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 앞에 사람들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통신사 일행이나 정탐꾼들이나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일본에 대해 전쟁을 준비할 수도 있고 전쟁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수도 있습니다. 갈렙처럼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찬성할 수도 있고 돌아갈 계획을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논의에서 사라져 버린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소식을 들은 사람들 곧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긍정적인 생각에 대한 요구가 때로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들을 막아서고 단 한 가지 생각 곧 긍정적인 생각으로만 이끕니다. 그리고 긍정적 판단과 부정적 판단 사이에서 보다 적절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물음을 닫아 버립니다. 
긍정과 부정보다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가 생각의 주체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강요당하고 있는가’입니다. 이 물음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체로 서야 합니다. 이 때, 김성일의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며 야훼의 축복을 의심하며 노예였던 땅,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불만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현실에 좌절하거나 긍정적인 선언에 속지 않고, 우리가 스스로의 삶에 주체가 될 때 우리의 역사를 보다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꿀 수 있습니다. 
정탐꾼의 서로 다른 두 보고와 그 긴장을 담고 있는 그림. 그림은 보는 우리들의 생각에 열려있습니다. 매 순간 우리에게 일어나는 갈등, 그림은 그 사이에서 우리에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나아가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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