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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주인 된 사람들의 세상, 사울과 다윗

성낙인은 그의 책 「헌법학」(법문사, 2014)에서 지방자치에 대해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그 지방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재산관리에 관한 사무․기타 법령이 정하는 사무를 그들 자신의 책임 하에서 자신들이 선출한 기관을 통하여 직접 처리하게 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제고하고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과 아울러 국가의 민주적 발전을 도모하는 제도”라고 정의합니다.
지방자치에 대한 논의는 중앙집권이 가진 행정구역간의 불균형과 갈등의 해소, 국가적 사업의 효율적 수행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특수성 간과 및 지역 민주주의의 약화 그리고 권위주의적이며 전체주의적 경향으로 흐르는 단점을 극복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지방 상황에 적절한 융통성 있는 행정과 주민의 다양한 요구에 신속한 정책결정, 무엇보다 그간에 중앙집권에 의한 명령과 복종이 아닌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한 작은 공동체를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주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처음의 왕을 사울이라고 또는 다윗이라고 보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에 의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는 장면(사무엘상 10장 1절)에서 그는 ‘왕’을 뜻하는 히브리어 ‘멜렉 ךלֶמֶ’이 아니라 ‘지도자’를 뜻하는 ‘나기드 דגִינָ’로 칭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로 행한 적국과의 전쟁과 궁궐이 아닌 군사요충지로써 수도 기브아 설치 등 실행한 일들은 아무래도 마지막 지도자 ‘사사’로서의 군사적 역할에 더 적절해 보입니다. 
반면, 다윗의 경우 유다의 왕(사무엘하 2장 4절)으로 그리고 북부의 사울계와 남부의 다윗계 세력의 7년간 통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름을 받는 장면(사무엘하 5장 3절)에서 그는 ‘나기드’가 아닌 ‘멜렉’으로 칭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통치는 상비군과 행정체제를 갖추고 블레셋, 암몬, 모압 및 에돔 등을 향한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여 봉신왕을 임명하거나 총독을 파견하는 등 제국의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사울과 다윗에 대한 지도자와 왕에 대한 칭호 그리고 통치 방법 등을 볼 때, 사울을 마지막 사사로 다윗을 초대 왕으로 보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사울에서 다윗으로의 이스라엘 지도자의 변화는 이스라엘 정치체제의 측면으로 부족연맹의 해체와 전체주의적 왕정으로의 이행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우리의 관점으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있어 부족연맹 시기 자치와 민주라는 단어의 의미를 그리고 그것에서 신의 뜻을 발견하려는 우리의 수고로움을 생각할 때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은 이러한 체제 이행에 그리 긍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20170806.jpg
렘브란트 하르먼손 판 레인, 『사울과 다윗』, 1656,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헤이그 네덜란드.

그리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면,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탔고, 그 때마다 사울에게 내린 악한 영이 떠났고, 사울은 제정신이 들었다.(사무엘상 16장 23절)

사울과 다윗의 첫 만남입니다. 사울은 신이 보낸 악한 영(‘루아흐 חַוּר’, 호흡, 바람, 기운)에 의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신하들은 사울에게 수금의 연주를 통해 고통이 덜해질 것이라 조언합니다. 그리고 찾은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고 다윗을 통해 사울의 고통은 잊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만남은 사울과 다윗의 개인적 만남을 넘어 이스라엘 국가 통치 체제 변화의 계기이기도 합니다.
왼쪽 사람이 쓰고 있는 왕관과 지팡이를 통해 그가 사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초점 없는 응시, 그의 표정을 보니 악한 무엇에 의한 고통이 느껴집니다. 고뇌일까? 왼손은 망토를 쥐고 얼굴로 가져가 왼눈을 가리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힘없이 앞으로 쏠린 허리와 어깨는 그가 앉은 자리의 무게를 보게 합니다. 
오른쪽 다윗은 수금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림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지만 그의 양손은 부지런히 현을 뜯고 있습니다. 왼쪽 아래를 향해 숙인 고개와 떨군 눈은 몰두를 연상하게 합니다. 연주 자체일지 아니면 진심 어린 사울을 향한 걱정일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의 열정적 연주는 삶으로 지속될 것이고 그 열정의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 그림은 렘브란트(1606~1669) 후기의 작품입니다. 초상화로 유명했던 그는 말년에 들어서 내면의 묘사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때문에 점점 인기는 떨어지고 또 명예와 부를, 이어서 아내와 자식을 잃는 아픔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역사의 장면 속에 자신의 고뇌를 담는 일이 잦아지게 됩니다. 
비교적 크게 그려진 사울과 작게 그려진 다윗, 조명을 받은 것 같은 사울과 비교적 어두운 다윗을 볼 때, 렘브란트는 사울에게 보다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가 그림을 통해 집중하는 것은 사울의 고뇌일 것입니다. 사울의 모습에서 그의 고뇌를, 다윗의 수금에서 구원의 요청을 보게 됩니다. 
이 그림에서 이스라엘의 통치제도의 변화와 그 의의를 읽는 것은 성서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화가의 고뇌와 투영된 그림으로만 그림을 읽는 것에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화가가 자신의 삶을 그림에 담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읽을 수 있다면, 조금 다른 측면으로 그림을 보고 싶습니다. 그 그림의 상황인 사회구조, 그들로 인한 사회의 변화 그리고 그곳에 살고 있는 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이면, 이제 이스라엘 왕국의 출발로 인해 신에게 주어져 누리던 자치와 민주를 잃은, 그런 고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20170806_017.jpg “시베리아에서 몇 년간 지내면서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교훈을 얻었다. 행정기구는 절대로 민중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될 수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같은 환상에서 영원히 벗어났다. 나는 인간과 인간성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내적인 원천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문서에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민중의 건설적인 노동이 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눈앞에 또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나는 아무르지방에 이주된 두호보르파(역자 주. 러시아 정교의 한 부파로 교회중심이 아닌 신앙중심의 개혁을 주장해 정부와 교회 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공동체의 생활방식을 보면서 형제애를 기반으로 한 반(半)공산주의적 조직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이득을 보았다. …. 나는 이미 아나키스트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 크로포트킨, 김유곤 역, 『크로포트킨 자서전』(우물이 있는 집, 2003), 289-290.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Пётр Алексе́евич Кропо́ткин, 1842~1921). 19세기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무권력주의자) 혁명가이자 이론가, 지리학자입니다. 그는 정부와 교회의 권력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종교는 그의 사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 글은 시베리아에서의 종교 경험입니다. 그는 이 종교 공동체 경험을 통해 자발적 협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상호적 교환에 기반을 둔 경제적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서 러시아는 로마 같은 제국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문명과 진보를 이룩하는 민족 연합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한 형태의 ‘함께 함’의 붕괴를 살고 있는 이때,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되어 결정하고 공동체를 이루어 또 다른 ‘함께 함’을 제안하는 꿈쟁이 크로포트킨입니다. 그리고 오늘 통제와 억압을 넘어선 촛불의 혁명이 나타내는, 신의 의지이기에 꿈꾸어야 하는 주인 된 사람들이 연합된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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