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수도사 루터"
신앙생활에 있어서, 루터는 고민이 많았다. 위와 같은 고민에 대해서, 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듯이, MMORPG에서도 더 높은 곳,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팀플레이, 즉 연계가 중요하다. 루터도 도움을 요청하고, 팀플레이를 요청한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놓을수록, 대부분 루터를 예민한 사람,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한다. 똑같이 한국교회로 비춰보자. 신앙적 논의나, 신앙적 고민이 깊게 하면 할수록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일쑤다. 당연한 것이, 한국교회에는 고민, 특별히 “왜?”라는 질문이라는 형식이 사라졌다. “왜”에 대한 응답이나 대답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혼자서 풀 수 없는 문제가 허다하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고 모든 “왜”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팀플레이가 필요하다. 이것이 성장의 비결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구성원들 간에 팀플레이가 사라진지 오래다. 

"깨어난 용, 루터
고민이 많고, 물음이 많은 누군가는, 확실하게 “티”가 난다. 얼굴에 쓰여 있다. 본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사람들을 가만히 안 두고 괴롭히는 이들이 있다. 수도자 루터에게 좋은 멘토(이 말은 싫지만,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른다)가 있었다. 바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총 감독이자 신학박사인 ‘요한 폰 슈타우피츠’였다. 종교개혁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기 전 슈타우피츠는 루터의 신앙적 버팀목이었다. 

그는(슈타우피츠) 타울러(Tauler)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에 의해 대표되는 신비주의 또는 가톨릭 경건주의에 속한 사람이었다. 외적인 형식과 규율의 준수보다는 내적 영성의 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위로와 평화의 기반으로 개인의 선한 행위보다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더 신뢰하였다.              위의 책, 106-107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한 논리학이 스토아철학을 이루고,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가는 엄청난 중세신학의 여정 속에서, 루터를 포함한 중세 수도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필자조차도 이를 설명할 수 없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중세의 큰 줄기는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신앙은 알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처음부터 끝이 논리학의 귀결이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드릴 때도, 수학의 공식처럼, 사소한 것 하나부터의 생활이 공식화되어있었다. 이 논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반면,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와 바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다시금 주창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정의가 구원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정의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의롭게 되시는 그 의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그 의를 이해해야 한다. 이 일은 복음 안에서 믿음을 통해 일어난다.          『마르틴 루터』, 스콧 헨드릭스, 134

“믿음으로 의롭게 되다”는 루터가 발견한 것이 아니다. 그 전부터 있었던 주장이었는데, 루터가 다시금 그 시대에 맞게 주창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교수로 학생을 가르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성서가 먼저,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였다. 바울의 신학에 매료되어서, 점점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쭉쭉 뻗어나가는 용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의롭다 함(justification)은 신앙과 선행에 의해 결정되는 점진적 과정이지만, 프로테스탄트의 입장에서 그것은 하나님의 단독행위이며, 그 뒤에 성화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의롭다 함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공로이며, 그 조건은 믿음이고, 선행은 그 표현인 것이다.                                                                           『교회사 전집 7』, 110

어느 편에 설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분명히 장단이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루터가 느꼈던 해방감이다. 그 해방감은 한낱 글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은… 신앙의 단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단계이고, 레벨 업의 기쁨을 보람으로 당장 보여 지는 성과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종교개혁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그래서 뤼시앵 페브르는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평한다. 

20180218_002.jpg 개혁가라고? 그렇다. 내적 삶에 대한 개혁가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보름스에서 세상 풍정에 대해 표명하게 될 다음의 대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누구나 양심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Unus quisque robustus sit in conscientia sua).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뤼시앵 페브르, 86

수도원 문제로, 루터는 로마기행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로마교회에 대단한 실망감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한 때, 가장 거룩한 도시가 이제는 가장 악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역대 교황들의 전적들만 봐도 가관이다. 아래와 같이 후기를 남긴다. 

과거를 회상하며, 루터는 로마의 사제들은 아무런 진지함과 내면의 공감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 미사를 집전했다고 했다. 그러고는 전체적으로 경멸적인 평가를 내렸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로마 위에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비난은 훗날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타올랐다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아는 루터, 아무도 모르는 루터』, 파이트 야코부스 디터리히, 48

이후로, 루터의 비판은 날카로워지고, 거침이 없게 된다. 드디어 용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뤼시앵 페브르는 이 시기를 재미있게 논평하는데 다음과 같다. 

대담하고도 완전한 전환이다. 조금 전까지는 맹렬히 싸웠지만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검투사의 격렬한 능동성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싸워보지도 않은 채 패배를 자인하며, 패배의 심취 그 자체에만 기대를 거는 체념한 자의 축복받은 전적인 수동성이다.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71

이 수동성으로 신과의 직접 교제가 가능하고, 은총을 선물 받을 수 있다. 그 은총은 흔들리지 않는 용기 혹은 양심이 되어서,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목도(目睹)하게 되고, 자신이 그 전장에 직접 뛰어들게 된다. 
믿음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20180218_001.jpg
당시 면죄부 판매 모습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3 Sola Ephebus (솔라 에페부스) "오직 청년으로만" (4)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5.26 37
282 Sola Ephebus (솔라 에페부스) "오직 청년으로만" (3)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4.28 12
281 Sola Ephebus (솔라 에페부스) "오직 청년으로만" (2) - 남기평 목사 좋은만남 2018.04.14 62
280 Sola Ephebus (솔라 에페부스) "오직 청년으로만" (1)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3.31 53
279 종교개혁사(8) "시대에 맞서다!" : 남기평 목사 좋은만남 2018.03.24 21
278 종교개혁사(7) "95개 논제와 그 결과, 루터의 종교개혁 중심 서적"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3.03 78
» 종교개혁사(6) "수도사 루터, 깨어난 용 루터"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2.17 42
276 종교개혁사(5) "초기 루터"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2.05 53
275 종교개혁사(4) “루터의 탄생"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8.01.20 55
274 종교개혁사(3) “루터가 태어나기 100년 전 홀로 빛난 불길! 얀 후스"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7.12.30 90
273 종교개혁사(2) “르네상스의 시작, 팜플렛 혁명"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7.12.16 135
272 종교개혁사(1) “대환장! 16세기 이전 상황들" : 남기평 목사 file 좋은만남 2017.12.02 42
271 박성중 목사의 "그림으로 읽는 구약 이야기" 20 file 좋은만남 2017.11.18 100
270 박성중 목사의 "그림으로 읽는 구약 이야기" 19 file 좋은만남 2017.11.04 14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