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개혁 중심 서적(1517-1520)
오늘날까지도 개신교도들은 1517년 10월 31일을 개신교 설립일로 기념한다. 비록 할로윈이 막강한 경쟁상대로 성장했지만, 이 축제일은 적어도 루터의 영향이 미친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게다가 이 축제 일종의 르네상스를 맞은 것에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구동독 지역에서는 종교개혁 축제일이 법정 공휴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세기 이상 중시되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1517년 10월 31일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직도 100%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루터가 ‘면죄부에 관한 95개 논제’를 작성해서 우선은 자신의 상관인 주교와 추기경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에게, 이후 여러 날에 걸쳐 교회와 대학의 많은 사람들에게 보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논제들은 라틴어로 쓰였다. 루터는 학자들과 고위 성직자들 사이에 토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이 일에서는 놀라운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다. 논제들은 곧바로 독일어로 번역되어 14일 안에 독일에 퍼졌다. “마치 천사가 심부름꾼인 것 같았다.” 논제들은 당시까지 무명의 루터를 단숨에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루터의 논제는 면죄의 오용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27. 돈이 헌금함에서 쨍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해방된다고 꾸며대는 사람들은 인간의 허튼 소리를 설교하는 것이다.
71. 사도의 가르침에 따른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는 말을 하는 자는 비난받고 저주받을 것이다!
72. 그러나 면죄 설교자의 무절제하고 뻔뻔스러운 말에 맞서는 자는 축복받을 것이다.

“돈궤 안에서 울리는 순간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 테첼의 논제
이 논제는 마침내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되었다. 교회는 반대로 루터를 이단이라고 낙인찍었다. 다른 하나는, 이 개혁자가 내면의 힘을, 근본적이며 핵심을 지르는 자신만의 신학을 완성했고, 이와 동시에 변방에 있는 독일 대학의 신학교수에서 짧은 시간 안에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교회 역사상 아주 위대한 인물로 떠오른 것이다. 루터는 교황의 권위를 의심했고, 콘스탄츠 공의회를 통해 후스가 유죄 판결을 받은 사실과 관련하여 루터는 “공의회들도 틀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파문 위협을 받은 루터는 기독교도는 교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지배된다고 반박했다. 교황이 관리이며, 적그리스도이고, 진정한 기독교의 말세적 적대자이며 반대자라는 확신에 이르자 그는 교회에 결정적인 도전장을 내밀었다. 동료 그리고 대학생들과 함께 교화의 <파문경고칙서>와 로마교회의 또 다른 서류들을 12월 10일 비텐베르크의 엘스터 성 문 앞에서 공개적으로 불살라버렸다.
“루터는 이전의 1,500년 동안 누구도 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곧 더 이상 근본적으로 이해되지 못했던 사도 바울의 칭의론으로 들어가는 직접적이며 중요한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1,500년 동안 연기되고, 파묻히고, 봉인되었으며, 덧칠된 바울의 근본적인 칭의를 알려 준 것은 놀라운 업적, 거대한 신학적 작업이다.” 한스 큉
루터의 개명은 이 시기 그의 내적 발전을 외적으로 분명히 보여준다. 면죄부 논제를 발표한 후 ‘루더’는 자신의 성을 ‘루터’로 바꾸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해방된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중심 서적"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은 진정한 성직자 계급이다. 왜냐하면 세례 받은 이미 사제, 주교, 교황에 임명된 것처럼 자랑해도 되기 때문이다.”
<교회에 대한 글>에서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기본적인 성사교리에 공격을 가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며,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두 가지 성사만이 존재한다. 즉 세례와 빵(성찬식)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두 가지에서만 올바로 세워진 하나님의 표시와 면죄의 약속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에 관한 글>에서 루터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중적 논제에서 자유에 대한 개혁적 이해를 근본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기독교적 인간은 모든 것에 대한 자유로운 주인이며 그 누구의 신하도 아니다. 기독교적 인간으 모든 것에 예속된 하인이며, 누구의 신하이기도 하다.”
따라서 면죄부가 비정상으로 만연하는 것에 대한 투쟁은 결국 선행으로 신에게 의를 인정받는 일(행위의 의인)에 반대하는 것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기독교 상황의 개선에 대해 독일민족의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에서도 모든 신도들은 근본적으로 사제가 될 수 있으며, 사실 세례를 통해 이미 사제라는 것이다. <교회의 바빌론 억류에 관하여>에서 7가지 교회의 성사를 세례와 성찬식, 단 두 가지로 축소시켰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만이 신약에서 예수를 통해 분명하게 뿌리내렸고, 세례의 물과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라는 눈에 보이는 표시를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에 대한 글>은 격렬한 비난의 물결을 일으켰다. 에라스무스는 이제 루터의 상황은 더 이상 구해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했다. 파리 대학 신학과는 이 논문에 오류가 있다며 이 글을 코란과 같은 등급에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