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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중세교회와 샴쌍둥이처럼 약간은 다르게 보이지 몸통은 같다. 맘몬에 사로잡혀 있고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중세를 암흑시대로 명명했듯이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보내고 있는 한국교회도 암흑시대라고 명명해도 무방하다. 사회 불평등에 몸살을 앓고, 극으로 치닫는 각자도생하는 무한경쟁시대인 헬조선과 여기에 하나 더 얹어서 질문이 사라지고 능동적 결정권이 없으며, 더욱이 개인의 위로조차 사라진 암흑한국교회시대에 공존하고 있는 기독청년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은 분노하는 선택과 무시·방관으로 일관하는 냉소적인 선택의 갈림길에 있다. 냉소는 ‘희망 없음’의 동의어다. 기독청년들은 암흑한국교회시대를 냉소로 바라보고 있다. ‘가나안교인’이 대표적인 단어이고, 예수를 믿고 따를 용의가 있지만 이 사회 속에서 교회의 존재적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즉, 가나안교인은 교회에 대한 냉소이다. 

냉소는 목회자들의 추문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냉소의 벽을 더욱 두껍게 만들고 있다. 이는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문제점’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음을 보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예배·설교 분위기, 발전적이지 않는 목회자와 비민주적인 의사구조’를 주목한다면, 청년들이 교회에 갖는 냉소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조금만 교회를 비틀어 보면 무엇 하나 교회에서 선한 것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날 기독청년을 헬조선에서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며 암흑시대에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이들이다. 이 글을 읽는 어른들은 청년들의 취직 여부, 대학 입학여부, 결혼여부 등을 관심(인사로 이를 물어보는 어른들이 많은데, 쉿! 조용히 하시라)을 자신의 마음 속 휴지통에 꾸겨서 던져 놓으시고, 현재 청년들에게 무조건적 응원이 필요하다. 

청(소)년이(아니)다

20180429_001.jpg 질문이다. 청년을 교회 내에서 어떻게 분류하는가? 대부분의 답은 교육부 소속으로 대답할 것이다. 크나큰 착오이다. 청년은 나이 먹은 청소년이 아니다. 이것은 확실히 해두자. 청년은 평신도에 속한다. 어엿한 성인이고, 법정 나이를 훌쩍 넘어선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면 청년의 나이 기준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통 만 19세부터 만 34세로 보고, 서울시 기준으로는 만 39세로 통칭한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재미있는 기준을 선보인다. 바로, 결혼유무에 따라 청년의 자격기준을 판단(전근대적 기준이다. 상투 틀고 안 틀고가 그렇게 중요한가?)한다. 자, 고등학생이 결혼을 했다고 치자, 그런 경우가 종종 있으니, 그럼 이들은 고등부인가? 청년부인가? 장년부인가? 애매하지 않은가? 고등학생 부부는 예측하건대, 교회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구별 짓는 문화의 잣대가 이들을 판단할 것이고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청년부를 교육부로 분류하는 것은 현재 교계 지도력들이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그들이 교회정책을 펼치고 프로그램으로 선보일 때에 고스란히 들어난다. 사실 각 교단의 청년정책은 전무하다. 기껏 호기롭게 시작하는 작업이 청년들을 위한 교재개발이다. 이마저도 꾸준하지 못하다. 단발성으로 끝날 때가 대부분이며, 예산이나 판매량을 이유로 중단하기 일쑤이다. 청년들은 질문이 많은 세대이다. 이 질문을 풀어낼 공간은 또래 집단인데, 이들에게도 마땅한 신앙지침이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 소그룹 혹은 성도와 나누는 대화의 주제’에서 볼 수 있듯이 ‘삶․고민(57.7%)’을 주로 나누고 신앙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지만, 딱히 청년소그룹 내에서는 현명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 교회 내 청년대상에 대한 무지는 고등부 다음 단계이상, 곧 나이를 조금 더 먹은 고등학교 4-5학년으로 취급함은 물론 고등부와 별반 다르지 않는 콘텐츠로 이들에게 접근하게 된다. 바뀐 것이라고는 고등부 선생님에서 청년부 리더로 바뀌는 것 말고는 없다. 청년부에 해당하는 전 연령층이 이와 같은 상황에 속해있다. 그래서 청년부 내에서 나이듦은 불안요소이고 낯부끄러운 지점이며, 청년으로서의 자존감은 낮아진다. 교회 안에서 청년은 아직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하는 불안한 존재이기에 청년부에 남는 것은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하는 고행의 연속이다. 

N포 세대를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결혼은 포기의 대상이거나, 저만치 멀리 있는 미래의 어느 공간에 나에게 있을 법한 이벤트일 뿐이다. 교회 내에서 청년부에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결혼인데, 헬조선에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현재, 청년부의 고령화 현상이 벌어진지 오래다. 미봉책으로 제1청년부와 제2청년부를 나이별로 나누지만,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어서가 아니다. 이미 청년부와 장년부의 세대문화는 융화할 수 없을 만큼 벌어져 있다. 하지만 30대 이상이 되면 자연스레 청년부에 대한 자신의 소속감을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고 장년부의 정체성을 지니지도 않는다. 졸지에 여러 세대 경계인 혹은 낀세대로 교회 내에서 자리매김하게 되고, 교회 내 자신의 위치가 애매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청년이다. 한국교회에서 어느 누구도 기독청년의 정체성, 소속감 그리고 역할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가 없다. 왜 청년이어야만 하는지, 교회 내에서 청년이 중요한지, 어떠한 질문을 가지며,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만 하는지를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청년들은 청소년은 아니지 않는가? ‘교회를 떠나가 된 이유’에 대한 질문에 ‘개인의 사정으로 떠나가 되었다(49.4%)’와 같은 50%에 가까운 답을 했는데, 어정쩡한 정체성과 교회 내에서의 갈피를 못 잡는 정체성이 한몫을 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본다.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자존감의 상실로 이어진다. 헬조선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청년들에게 교회의 문턱을 넘는 순간, 자신의 애매모한 위치를 발견하는 지점에서,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교회가 위로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와 똑같이 일꾼으로 취급하는 순간, 교회에 대한 냉소와 더불어 청년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묻는 질문에 ‘심적인 안정(31.9%)’이 제일 높게 나오는 것만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불안해서 지금의 한국사회가 여러 혐오와 내부갈등이 심각함은 물론, 무엇하나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사회를 몸소 경험한 청년들에게 정체성의 확립과 자존감의 회복은 인생일대의 큰 과제이다. 

청년들이 교회의 품으로 오는 순간, 교회조차도 사회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하는 순간, 기독청년이라는 자존감은 땅에 떨어진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 상실이며, 정체성 즉 자기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이다. 특별히 교회공동체라는 기독청년의 마지막 심리적 보루가 무너지면, 심리적 질병을 앓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헬조선에 살고, 암흑시대 속한 기독청년들은 현재 주의요망이다. 이들은 청소년이 아니고, 교육대상이 아니다. 현재의 지도력이며 교육을 주도할 수 있는 주체이고 무엇보다도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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