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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마치며)

 

 

루터가 종교개혁가들과 개혁의 물결을 이끌 당시에, 주된 신학적 구호가 있었다.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성서로(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로(Solus Christus)'이다. 개신교 형성에 큰 역할을 했고, 이는 교리로 자리매김한다. 이 네 가지 명제들이 변주되고, 종교개혁가들 각자의 신학적 견해가 들어가면서, 다양해지고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직업소명론’뿐만 아니라 ‘만인사제직’까지, 복음은 평등하고도 하나님께 향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그들이 교회제도와 그들 또한 그렇게 실천해나갔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실천할 수 있고,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십자가의 길을 각자의 깜냥대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기존의 세력에 향한 돌발이었고, 파격이었다. 이들은 Protestant였다. 그렇지만, 500년이 지난 오늘날 한 가지가 더해져야 할 것이 있다. 솔라 에페부스(Sola Ephebus), 오직 청년으로만!

 

개신교인의 증가세는 90년대 말 이후로 둔화되었고, 감소세로 돌아선지 10년은 넘은 듯하다. 한국교회의 영광신화를 함께 써내려갔던 산업역군들은 교회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이제 이들은 60-70대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한국교회의 동력이 아니다. 만약 동력을 찾으려면 청년부와 장년부에서 찾아야 하는데, 40-50대 초반을 근간으로 하는 장년부도 개신교인의 감소세와 함께 그 구성력이 약해진지 오래되었고, 교회학교교육과 미래세대의 정책부재로 교회청년들의 이탈현상은 자못 심각하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교단총회에서는 청년에 대한 안건이 전무하고, 교단을 총괄하는 본부에서조차도 청년을 차세대로 분류하거나 담당자가 없거나 중고청을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 정도 겨우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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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지속성을 20년 전부터 걱정하고 이제는 감소가 눈에 띄게 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책이 없다. 5년 뒤 혹은 10년 뒤 한국교회를 상상하면 그 체감은 우리의 상상이상의 큰 충격파로 다가올 것이다. 지금도 늦었다. 빨리 이에 대한 적절하고 구체적인 대책이나 교단에서 장기적인 정책을 세우지 않는 이상, 미국과 유럽의 전처를 누구보다 빠르게 밟아 나갈 것이다. 부자가 망하면 3대를 간다고 하지만, 교회는 조금 다르게 재산으로 그 생명력과 폼을 유지하지 않는다. 교회는 사람이 재산이다. 한 사람을 어떻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키워나갈지를 고민하고 이들이 지도력이 되고 종국에는 한국교회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건물에는 기둥이, 수문에는 버팀목이, 교회에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고 무너지고 망가지고 버려진다. 

 

미래 전략의 부재는 ‘전도’에서도 볼 수 있다. 다들 양적 ‘전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맹목적인 전도만 남았다. 여러 교단총회 보고에서 각 교회에 허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전년 대비 감소하고 있음을 발표했다. 기존의 교인들도 이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부분 수평이동이며 정말 초신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도는 교인수를 불리는 것만이 전도가 아니다. 과연 얼마만큼 초신자가 유입되고, 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영유해 가는 것은 기이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알맹이 없는 콘텐츠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어떠한가? 군대 내에서의 전도는 언급할 가치가 없고, 한 때 대안이었던 캠퍼스 선교는 노방전도와 일방적인 전도방식으로 대학교의 꼴불견으로 정평이 나있으며, 이 또한 각 총학생회에 의해서 금지되었다. 또한 여러 혐오와 배제라는 구별짓기문화를 고스란히 대학교에도 가져와 적용시켜서 상아탑에 어울리지 않는 불통과 배타를 선보이고 있다. 대학교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에 뛰어든 청년들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있다. 개신교인들은 비호감이다. 개신교를 비호감과 적대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청년 초신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먼저 그 비호감을 벗겨내는 게 급선무인데, 지금으로서는 이 작업은 절망에 가깝다. 

초신자는 천연기념물이다. 보통 천연기념물에는 특별히 멸종위기인 종이 많다. 동물류를 예를 들자면, 이들을 어떻게 하는가? 전심전력을 다해 보호하고 먹이며, 야생에 가서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며, 그 사육사는 때로는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부모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을 방생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다시금 훈련시켜서 다시 내보낸다. 그렇다면, 교회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열의를 보이는가? 개교회에서 얼마만큼 지원을 하며 훈련시키는가? ‘청년이 미래’라는 말은 말로만 시작했다가 그냥 허공에 사라지는 교회청년을 향한 아무 의미 없는 접대 멘트로 전락했다. 

 

오직 청년으로만! 오직 청년들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한국교회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이 둘이 같이 병행되어 한다. 그래야지만 10년 이후를 바라볼 수 있다. 이 의미는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현재의 한국교회는 사회신뢰도와 호감에서 절망적인 수준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에서 심적인 안정 다음으로 ‘사회적 참여 활동, 단순한 종교적 기능(예배), 봉사(구제)’ 순으로 나왔다. 현재 청년들이 교회에 바라는 것이 ‘전도’가 아니다. 사회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으며, 교회건물 주 사용목적인 예배의 중요성을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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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역할은 예배를 잘 준비하는 데에도 소명이 있다. 예배의 온전한 회복은 기독교의 회복이기도 하다. 일주일 한 번 드리는 예배를, 현재의 기독청년들은 온전하게 그리고 잘 드리고 싶어 한다. ‘다시 교회를 다닌다면 어떤 교회’를 선호한다는 질문에 두 번째로 높은 응답률이 ‘예배가 분위기가 좋은 교회(24.1%)’임을 볼 때 예측가능하다. 예배가 기독교인으로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기독청년들은 교회봉사에 과부화가 걸린 상태이거나, 온전한 예배만 드리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다고 주변 신앙선배들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이다. 예배의 회복 이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존감의 회복 이후, 그때부터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교회봉사가 먼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장기적인 정책은, 앞서 교육교재개발을 예를 들었지만, 무엇하나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없다. 이것은 단순한 보기다. 오직 청년만을 위한 프로그램과 정책제안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공든 탑은 없다. 오로지 이탈만 있을 뿐이다. 오직 청년으로만!은 한국교회의 미래이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이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사항’에서 1위가 돈(30%)이고, 2위가 친구(20.8%)이다. 종교는 4.4%이다.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지금껏 한국교회가 강조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한국교회가 집중하는 것은 세속적인 성공으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세속적 성공은 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십일조를 얼마 내는지, 감사헌금과 건축헌금을 얼마나 내는지에 따라, 칭찬여부와 교회구성원으로서의 입김이 얼마 만큼인지를 결정한다. 남 탓할 필요가 없다. 이는 한국교회가 꾸준히, 복음처럼 설교하고 가르쳐왔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다. 헬조선에 살고 N포세대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다. 신앙생활(0.4%)은 전혀 고민 중에 들지도 못한다. 그런데 교회는 청년들에게 심리적 안정조차도 주지 못한다. 청년이 교회를 떠나는 거나 교회를 등한시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이것은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영역에 편입되기 위해서 교회를 등한시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치솟는 대학등록금과 주거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부채는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고 영광의 신학을 강조하는 한국교회는 청년들에게 위로나 그들의 인생살이의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 잔소리로 듣는 자기개발서의 향연을 교회에 와서도 듣고 있으니, 귀에 딱지 날정도일 것이다. 교회의 불평등한 문제는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와 더 나아가 결심거리가 된다. 솔라 에페부스! 오직 청년으로만!은 교회의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예언자적 외침이기도 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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