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만남교회

2017.11.25 19:30

2017년 11월 26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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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립니다!
1. 오늘은 왕국주일 및 성령강림 후 마지막주일로 예배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어서 빨리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다음주일부터 아기 예수님의 나심을 기다리는 강림절기가 시작됩니다.
2. 오늘 오후에는 이관택 목사님이 '힙합과 민중신학'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해주십니다. 많이 참석해 주세요. 다음주일 오후에는 성탄목 장식을 하겠습니다. 
3. 공동식사 후 전교인 단합대회 관련하여 잠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4. 이번주 28(화)~29일(수)에 은평동지방 교역자부부 목회세미나가 속초에서 열립니다. 따라서 이번 수요성서대학은 한 주 휴강하겠습니다.
5. 남기평 목사님이 기독청년의 국제 연대활동으로 오늘까지 일본 출장 중이십니다. 안전하고 좋은 결실 맺는 출장이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촛불교회 안내] 전쟁 반대 평화 염원 기도회 | 11월 30일(목) 저녁 7:30 / 미대사관 앞 광화문광장
 
■ 목회서신
감리교회 선교국에서 주최한 사회선교정책협의회가 1박2일의 일정으로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에서 열려 다녀왔습니다. 저는 평화통일위원회에 속해 있습니다. 사회선교의 중요성과 감리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감리회 운동을 시작한 존 웨슬리는 영혼구원에만 머물지 않고 노조 설립을 지원하고 아동 노동과 노동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운동을 벌였으며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사회적 성화를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삼았습니다. 한국 감리교회도 시대의 변혁과 진보를 위해 매우 앞선 선언을 하였습니다. 1930년에 이미 인종의 평등과 국적 차별의 철폐를 선언하였고 여성의 지위, 인권, 노동의 신성성과 노동자에 대한 적합한 보호와 대우 등을 담은 사회신경을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런 사회 참여와 관심은 매우 후퇴하였고 교회 내적인 성장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고 과거의 가치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사회는 교회를 사회변혁의 걸림돌로 인식하고 있으며 교회 역시 사회를 적대적으로 인식하여 교정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는 듯합니다. 교회는 사회와 괴리된 자기 만의 시공간을 상정하여 그곳을 영적 세계, 천국이라고 착각하며 역사적 퇴행과 역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선교는 영혼구원과 별개의 어떤 특별한 사역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이고 감리교회다운 특징입니다. 그동안 세계를 기독교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세계를 위한 기독교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위해,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시는 좋은 분들과 함께 만나 감리교회의 미래를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입니다. 어떤 분이 이 모임에 참석한 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진짜 감리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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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성화를 위한 역사기억
1989년 11월 28일    "벨벳 혁명 :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일당독재 포기"
벨벳 혁명은 1989년 11월 17일부터 12월 29일 사이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비폭력 혁명으로 '신사 혁명'이라고도 부릅니다. 일당독재를 하던 공산당 정권을 무너뜨린 이 혁명은 동유럽 민주화 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1월 17일 프라하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평화시위를 경찰이 억압한 것으로 시작된 혁명은 20일에는 50만 명이 모이는 평화시위로 확대되었습니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권력을 포기하고 일당제 제도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듬해에는 1946년 이래 처음으로 실시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극작가이자 반체제 운동을 상징하는 77헌장의 발기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5년형을 선고 받았던 바츨라프 하벨이 40년만에 비공산주의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벨벳 혁명은 일당 독재로 정치적인 자유와 권리를 박탈한 정치체제에 대한 인간의 승리로 비폭력의 진정한 힘과 정치적 권리를 향한 인류의 열망을 온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최근 짐바브웨의 무가베 대통령이 37년의 장기집권 끝에 불명예 퇴진하였습니다. 독재와 독선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 짧은 얘기 깊은 생각
프랑스의 어느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낙후된 마을 발전을 위한 주민총회가 열렸다.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그 중 결정된 사항은, 자기 집에 두 대 이상의 마차를 가지고 있는 주민은 한 대씩 마을을 위해 기부하자는 것과, 말과 마차를 보관할 창고가 있어야 하니 헛간을 둘 이상 가진 사람은 그 중 하나를 마을에 내놓자는 제안이었다.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마을 공동재산이 불어나고 있던 중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주민이 머뭇거리면서 부끄러운 낯으로 일어났다.
“나는 마을을 위해 바칠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닭 두 마리가 있을 뿐인데 그 중 한 마리를 내놓아 마을 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은데 닭 두 마리 이상 있는 주민들은 한 마리씩 내놓기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그 가난한 농부의 제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왜 마차를 내자는 의견과 헛간을 내자는 데 만장일치로 찬성하던 사람들이 닭 두 마리 이상 가진 사람은 한 마리 씩 내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나타냈을까?
그 마을 주민들 중에 말이나 마차를 내놓아야 할 만큼 많이 가진 사람은 몇 안 되었지만 닭은 누구나 한 마리 이상 다 갖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남의 주머니의 지폐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자기 주머니의 동전은 아깝기 그저 없습니다.
부자들의 인색함에 대해서는 소리를 높이지만
자신의 인색함은 합리적인 일이라고 변명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덕정감리교회 문병하 목사님의 페이스북 中]
 
■ 한자락 詩20171126_02.jpg
 가을렛슨    | 채희문
 
가을이 가기전에 한번쯤은
떠나볼줄도 알아야지
좀 돌아서 갈 줄도 알아야지
좀 천천히 갈 줄도 알아야지
 
떨어지는 잎, 다시 볼줄도 알아야지
싸늘한 바람에 손만 흔들고 서있는
나무들도, 다시 볼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전에 가을비
아침이슬같은 빗물로 만나
한번쯤 썰렁한 가슴
젖어볼 줄도 알아야지
 
가을이 가기전에, 한번쯤은...
 
■ 헨리 나웬의 "살며 춤추며"
졸졸졸거리며 흐르는 개울  「영적 발돋움」
가슴(마음) 기도는 날마다 졸졸졸거리며 흐르는 개울과 같다. 가슴 기도는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예속되지 않게 하고 마침내 ‘홀로 있기’에서 ‘하느님’께 가닿게 한다.
가슴 기도는 무엇보다 하느님만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의 온갖 어지러운 마음, 관심, 걱정, 편견을 버리고 하느님 한 분으로 마음을 채우라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예수 기도는 하느님 아닌 모든 것을 우리 마음에서 비우고 오직 그분만을 위해 방을 내드리는 데 도움이 되는 훌륭한 방편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기도는 하느님으로 가득 채워진 생각mind이 내려가서 소멸될 공간을 자기 존재 중심에 마련했을 때, 그리하여 거기서 생각과 느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지식과 경험), 관념과 정서를 초월할 때, 바로 거기서 하느님이 우리 주인이 되실 그때 진정한 가슴 기도가 된다.
예수께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누가복음 17장 21절) 가슴 기도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새긴다. 머리mind에서 모든 생각을 비우고 가슴heart에서 모든 경험을 비울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안에 계시고 싶어 하는 하느님을 위한 방을 우리 중심 깊은 곳에 마련해 드릴 수 있다.
 
귀가歸嫁  「주님의 집에서」
영성생활에서 수련이란 고향 집으로 돌아가 거기서 들리는 음성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다. 그 음성은 성 요한이 말하는 ‘먼저 사랑first love’의 음성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일서 4장 19절) 우리가 안전하게 거처할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이 먼저 사랑이다. 먼저 사랑은 말한다.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거나 네가 사람들을 사랑하기 오래전에 너는 사랑받았다. 네가 사람들을 받아들이거나 사람들이 너를 받아주기 오래전에 너는 받아들여졌다. 네가 사람들을 안전하게 해주거나 사람들이 너를 안전하게 해주기 오래전에 이미 너는 안전하다.”
이 먼저 사랑이 거처하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하는 곳이 바로 우리 집이다. 그 집으로 돌아가 그 음성에 귀 기울이려면 수련을 해야 한다. 특히 온갖 두려움이 우리를 떠밀어 자꾸만 바깥으로 나가게 하는 때일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미 집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두려움이 만든 미망의 탈을 벗고 계속해 돌아오고 또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
회심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기도는 주님이 집을 지으신 곳(우리 중심의 내밀한 장소)에서 그 집을 찾는 것이다. 기도야말로 하느님 안에 우리 집을 짓는 가장 구체적인 수단이다.
 
20171126_01.jpg ■ 가을엔 독서닷! VOL 3 - 이관택 목사
수다스러움! 그 촐싹거리는 진리
 ‘오두막’ 을 읽고
윌리엄 폴 영, 세계사, 2009.
 
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은 기독교의 끊임없는 질문가운데 하나이다. 어째서 선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는 이 땅에 억울하고, 불의한 일들이 생겨나는가!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가? 계시다면 절대로 그는 선하지 않거나 혹은 전능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뛰어난 논리를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지라도 그 무엇이 하나님을 온당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니, 어찌 이 세상의 만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오만이다!) [오두막]이라는 소설은 신정론(하나님은 의로운가?)의 질문과 더불어 고통의 문제를 치유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 전적으로 개입하고 또는 지켜보는 신의 속성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있다. 
 
 몰트만의 성령론을 살펴보면 관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모습이 등장한다. 하나님이 결국 혼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자의 완벽한 다양성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판에 박혀있는 신이 아니라, 역동하고 움직이는 신, 권위적인 신이 아니라, 평등하고 주체적인 신, 명령하는 신이 아니라, 관계하고 대화하는 신이라는 것이다. 
20171126_04.jpg  [오두막]에서 주인공 맥이 만난 하나님의 세 위격은 우리의 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한다. 못생기고 투박하게 생긴 예수, 이웃집 아줌마의 형상을 한 파파 하나님, 살랑살랑하고 싱그러운 느낌의 성령의 모습이 그렇다. 이는 모습에서 뿐만이 아니라 맥과의 대화 가운데에서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리의 신에 대한 편견을 뛰어 넘는다. 마치 수다스런 여인네들의 공간인 부엌이 세 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 논하는 장이며, 언제라도 그 식탁에 힘들어 하는 사람을 초대하고, 맛있는 것을 나누며 서로의 아픔에 대해 공감한다. 등산을 하고, 호수 길을 걷고, 별을 보는 낭만적인 하나님들. 하지만 그 낭만 뒤의 그들의 내면 속에는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며, 한 사람의 고통에 민감히 반응하는 태도가 자리한다. 
 
 율법과 정의, 법이라는 것이 하나의 틀로서 우리의 세상을 지배한다면 진정한 하나님들의 세계에는 율법, 정의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 고스란히 현재를 구성한다. 이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리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으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형성해 놓은 법과 제도에 의해 교육되어 사물화된 전통과 세태에 따라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수다스레 대화하고, 또 그것을 바꿔가기 위해 무모하리만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항상 ‘현재형’의 삶의 태도, 그리고 과정의 연결고리와 보이지 않는 끝지점에 대해 낙관할 수 있는 긍정성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독립성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조금은 소박한 논리를 내세웠던 것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지만, 세 하나님의 모습과 태도, 그리고 따뜻한 마음은 언어에 담기 어려운 ‘하나님스런’ 모습들이 베여있다. 보이지 않는 먼 길을 ‘기대감’을 가지고 걸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 이처럼 유쾌하고, 분주하며, 세밀하기 때문에 그렇다. 
 ‘기대감’과는 달리 ‘기대’라는 단어는 책임성을 강조하고 틀에 맞추려는 듯한 느낌을 담고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항상 어떤 산의 정상에 당도하려는 도착증은 우리로 하여금 발을 부르트게 하고, 정상에 올라 야호(야호하면 야생동물에게 안좋지만)할 생각에 현재를 간과하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과거에 매이는 것, 미래에 현재를 모두 반납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조차 과거에 있었던 것, 또는 미래의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라는 이분법 속에 정작 현재에는 부재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결국 우리는 하나님 없는 현재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신앙의 힘은 촐싹거리고, 함박웃음을 짓고 바보스레 떠벌려도, 그 속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고통에 대한 공감이 있다면, 삶에 대한 진실성이 있다면 그것이 삶을 치유하며,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삶을 구성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오늘도 수다스러움으로 나의 일상을 함께 하실 하나님! 그리고 나의 고통에 그 누구보다도 촐싹거리며, 눈물 흘리실 하나님 생각에 뭔가 설레는 맘과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앞치마도 하고 싶다. 파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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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성화를 위한 기도
군대의 정치개입, 댓글 작성 혐의로 구속되었던 김관진 전 국방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에 대해 사법부가 석방 처분을 내렸습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죄를 짓고도 반성하지 않고 뻔뻔하게 버텨온 이들의 석방 결정은 국민정서와 너무나도 동떨어졌습니다. 수년 간 깊게 뿌리 내린 적폐가 일소되어 참된 국민의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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