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주일 잔치날 이야기

by 좋은만남 posted Apr 1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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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잔칫날이라면 성탄절과 부활절을 꼽을 것입니다. 가장 사람이 많이 북적대고 또 교회에서도 이런저런 행사에 선물도 한줌씩 들려 보내니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제일 흥겨운 날일 겁니다. 

예배를 마치고 모두 함께 부활주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우리 좋은만남교회도 오랜만에 잔칫날을 맞은 것같이 기쁘고 흥겨웠습니다. 작년에는 열 명도 안 되는 교인들이 모여서 꿋꿋하게 주일예배를 드린 날이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적잖이 지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교회는 꼭 많은 사람이 모여야 좋은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라도 신실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라며 서로를 위로했었지요. 물론 그 말에는 위로 반, 신념 반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잔칫집 분위기가 물씬 나는 흥겹고 정신없는 부활주일을 보냈습니다. 정신은 없어도 마음은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일단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왔습니다. 결혼을 하고선 송파구로 이사를 가고 남편이 다니던 교회를 다니던 집사님 내외가 새로 태어난 아기를 안고 네 식구가 되어 왔습니다. 서너 달에 한 번씩은 오시는데 아기를 낳아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으려니 하면서도 내심 부활주일인데 한 번 안 오시려나 했었는데 바램을 눈치채셨나봅니다.

남편인 성도님이 하시는 말씀이 다니는 교회는 부활주일인데도 계란을 안 주고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데(아마도 작은 교회나 이웃에게 보내줄 계란값을 모금하는 모양이지요) 아내가 부활주일에 계란도 안 주는게 어디 있냐며 계란 먹고 싶다고 좋은만남교회에 가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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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식구가 돼서 오신 집사님 부부, 정말 반갑고 감사합니다.
큰 딸은 벌서 사진 찍는 포즈도 잡을 줄 아는 숙녀가 됐습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가 잠시 들어와 다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처제 내외도 여덟 달 된 딸내미를 안고 왔습니다. 손아래 동서라지만 제대로 마음 터놓고 애기도 못해본 게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부활주일이라는 특별한 날에 우리교회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미안한 마음도 컸지만 좋은 날에 만나니 반가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환영했습니다.

새로 온 청년도 있었습니다. 감신대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인데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할지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신학생 친구들의 소개로 우리교회에 나오기로 마음 먹고 처음 온 것입니다. 그리고 동네에 사는 고3 여학생도 한 명 왔습니다. 대입시험을 준비하면서 저녁때 교회 사랑방에 와서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몇 번을 예배에 참석했는데 매주일 성만찬을 하는 것이 어색했는지 성만찬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사라지던 학생인데 오늘은 성찬도 함께 받고 끝까지 함께 예배를 드리고 부활주일 기념사진 촬영에도 함께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게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긴 그래봐야 다 합쳐 어른이 스물 한 명입니다. 예배 끝 무렵 파송찬송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며 서로 인사하는 친교와 교제의 시간이 있는데 반갑게 포옹하고 악수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우리 권사님 한 분은 너무 반갑고 기쁜 나머지 눈물도 좀 흘리셨다고 하시더군요.

예배를 마치고 공동식사를 하는데 4인용 식탁을 6개 펼쳐놨는데(평상시에는 다섯 개로도 충분하고 남았지요) 어린이들까지 다 모이니 자리가 모자랍니다. 반찬이야 뭐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반가운 식구들, 환경하는 새가족들과 함께 북적대고 나누니 더 맛나게 느껴집니다. 모두가 다 맛있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차린 음식은 안 그래도 북적대면서 나누는 식사는 영락없이 잔칫날 잔칫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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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유정란에 '예수 부활하셨네, 좋은만남교회'라고 인쇄한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부활절에는 계란이 빠지면 안 됩니다. 이번에 감리교농도생협에서 유정란 계란을 조금 저렴하게 팔길래(그래도 한 판에 9,000원입니다) 부활절 의미(생명을 담고 있는 유정란으로)도 살리고 건강에도 좋은 것으로 준비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이웃에게 계란이라도 좀 보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어 우리교회 청년들이 주일오후마다 가서 봉사하는 노숙인 주말배움터에도 100개 정도 보내자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주일 오후마다 옷걸이 행거 다섯 개를 끌고 거리에 나가 초록가게를 운영하면서 이웃에게 수정과차를 대접하는 권사님들도 지나다니는 이웃에게 좋은 유기농 유정란 계란을 대접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거기도 한 100개 준비하기로 합니다. 결국 계란을 여덟 판을 준비했습니다.

먼저 돌아간 분들도 있고 밖에서 초록가게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보니 교회 사랑방에는 아이들 몇과 베트남 여성 성도, 그리고 권사님이 한 분 남으셨습니다. 이들은 미처 다 붙이지 못한 부활절 계란 스티커를 붙이고 계셨습니다. 어른들이 세심하게 가위질을 하여 스티커를 잘라놓으면 아이들은 정성껏 하나하나 계란에 그것을 붙입니다. 이웃과 나눌 것이기에 더욱 정성이 담겨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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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나눌 부활절 계란에 정성껏 스티커를 붙이고 계시는 성도님들과 어린이들
 

오후 네시 반쯤에 초록가게를 철수하고 계란 100개를 묶어 놓은 판을 들고 권사님 두 분과 우리 네 식구가 차를 타고 혜화동으로 향했습니다. 혜화동에 있는 노들장애인학교에서 매주일 오후에 노숙인 주말배움터가 열립니다. 우리교회 청년도 네 명이 거기에 나가 교사로 봉사를 합니다. 계란 100개만 가져가기 손이 부끄럽다는 생각에 가다가 음료수를 댓 병 샀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손이 가벼운게 멋쩍습니다.

배움터에 도착하니 노숙인(노숙을 막 벗어나 생활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분들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겁니다)들이 손수 비빔밥을 만들어 식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아무래도 외부인들이 드나드는 것을 불편해 하시나봅니다. 그래도 목사가 얼굴 두꺼운 거밖에 없어서 일단 들어가서 눈 마주치는 분들에게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중에는 지난번에 우리 지방에 어느 교회 개척할 때 실내공사 하러 김포의 최호병 목사와 함께 왔던 남자분도 계셨습니다. 아는 얼굴이 하나라도 있으니 덜 어색하더군요. 아, 그리고 보니 자원봉사하던 여자 청년도 대학 다닐 때 종종 얼굴 마주치던 장애인 동아리 활동하던 후배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담배 한 대씩 태우시고 저녁 수업이 시작되는데 잠시 제가 인사를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배움터를 전체 진행하는 신학대학교 동기 이동현이 저를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이 친구는 제가 담임하는 교회 이름도 모르더군요. 어쨌거나 참 대견한 친구입니다.

사실 별로 할 말도 없었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 조금 베풀면서 일장연설을 할 일도 없고(그렇다고 많이 베풀면 연설해도 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또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그런 처지가 된 것이 그들만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구조 때문이기도 한데... 아무튼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주섬주섬 작은교회라 많은 선물을 못 드려 죄송하다, 건강하시고 힘내시고 건강에도 좋은 유정란을 가져왔으니 맛있게 드시라고 몇 마디 했습니다.

노숙인들이 재활을 위해 배움터로 나와 공부하는 모습을 보신 권사님들이 마음이 찡하신가 봅니다. 사실은 그렇게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을 교인들이 직접 만나보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 의도도 있습니다. 다음주일에는 배움터에서 봄소풍을 간다는데 바로 우리 교회 앞인 서오릉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권사님들이 생각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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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배움터에서 멋적게 인사를 몇마디 주섬주섬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명하다는 성북동 돈가스 집에서 돈가스를 한 접시씩 먹고 왔습니다. 어두워지는 삼청동길을 지나 오는 우리 모두의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마음은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제대로 부활주일을 보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잔칫날처럼 북적대며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니 부활의 기쁨이 두 배가 됩니다. 게다가 초록가게로 생태세계의 생명을 위해 조금이나마 일조를 했으니 그것도 매주일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활주일에 더욱 의미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작은 것이나마 삶의 한 가운데서 힘겨운 투쟁을 하시는 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 역시 부활주일의 기쁨을 더 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모두가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실 예수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안 믿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을 겁니다. 역사상 그런 일이 없었고 상식적이지도 않아 믿을만하지도 않으니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은 자기들이 예수를 만났다고 주장하면서부터 돌변하였습니다. 절망과 포기, 두려움과 염려로 절어있던 이들이 희망을 품고 비전을 갖고 회복을 꿈꾸며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 자신의 부활보다도 제자들, 예수님을 따르던 이들의 부활로써 더욱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주일은 예수님의 부활도 부활이지만 우리 자신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해야 하는 날일 것입니다.

오늘은 제대로 부활을 누린 날이었습니다. 평생에 기억에 남을 만한 부활주일! 그러나 매년 부활주일마다 더욱 큰 깨달음과 더욱 큰 기쁨을 누리고 부활을 경험하는 일이 생겨날 줄로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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