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머리가 복잡합니다.
목사로 산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자연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현대인으로써 정치적인 목적성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반도국에서 목사로 사는 것이 자연인 혹은 정치적 목적성을 갖고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동의하듯이 지금 이 나라는 엉망진창입니다.
가는 길마다 공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조용한 변방 마을에 사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니 앞으로 10월부터 시작한다는 소위 4대강 살리기 사업이 시작된다면 이루 말로 다 못할 것 같습니다.
용산에서는 억울한 인생이 다섯 명, 아니 여섯 명이나 스러져갔고 전직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였고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기본권은 무시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으며 북녘의 동포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갇혀 있었던 기나긴 고립의 그늘로 또다시 내몰리고 있습니다.
수십년동안 통일운동에 앞장 섰던 원로 목사는 자신의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며 이명박을 내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기가 막혀서 말도 잘 안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는 이런 일에 나서지 말아야 하고 교회라는 공동체를 지키고 키우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유형무형의 압력이 들어옵니다.
그동안 배웠던 바로는 목사, 기독교인의 정치적 삶은 무정부주의자의 삶과 궤를 같이 한다고 봅니다.
기독교인은 로마도, 미국도 아닌 하나님 나라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당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체성도 결코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리적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써 살아가야 할 이방인이자 국외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목적과 하나님 나라라는 지향점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예배당 강단 옆에 태극기를 걸어 놓은 목사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22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일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국민무시와 노무현 전태통령의 서거로 이번 대회는 더욱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대회를 범국민대회로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진작부터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TV를 보니 서울광장에 머물려고 하는 측과 내몰려는 측이 극한 몸싸움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국회의원도 무서워하지 않는 이 나라의 경찰, 국민의 권리까지 스스로 재단하고 이를 허불허하는 경찰을 보면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인간의 생이 길어봐야 90인데, 그리고 한 정권이 아무리 길게 집권해봐야 길어 10년인데 그 후를 어떻게 설계하길래 이처럼 막나가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목사로서 오늘 결단을 하고 수요일 집회를 취소하였습니다.
취소라기보다는 장소변경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성서대학을 수요일마다 했는데 오늘을 현장수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나올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겠습니까마는 이런 일을 통해 우리 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써의 정체성에 대해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생명과 평화를 거부하고 해치는 이들은 그 어떤 세력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용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 내 자신이 생명과 평화를 해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정체성은 생명과 평화가 짓밟히는 것을 볼 때 분노하고 저항하는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성전을 침탈하면서 유대인을 위협했을 때, 성전에 황제의 흉상을 들여다 놓았을 때 유대인들은 그 자리에서 기꺼이 죽겠노라고 저항하며 목을 내놓았고 결국 빌라도는 겨눴던 칼을 거두었습니다.
나는 물론 유대인은 아니지만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이와 같은 결단과 단호함은 우리의 유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반정부인사로써 오늘 이런 결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반체제인사로써도 아닙니다.
반 한나라당 세력도 아니고 반 자본세력도 아닙니다. 역시 반제국주의자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 나라주의자로써 오늘 이런 결단의 행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자연인으로써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는 결코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정치적 목적성을 가진 현대인으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역시 목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자연적 생명에 민감하지 않고 현실정치가 얼마나 인생을 구속하고 피폐하게 하는지에 대해 돌아보지 못한다면 결코 목사가 될 수 없으며 결코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나는 목사가 되었고 목사가 된 것이 자랑스럽기 때문에 내 길을 갈 것입니다.
비웃고 손가락질 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야하는 길,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단지 걱정이 된다는 것은 이런 생각을 얼마나 오래동안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단재 내 자신이 내 스스로도 신뢰할 수 없을 만큼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이 걱정이 됩니다.
아무튼 오늘 나는 한반도에서 목사로 산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의미규정을 하였고 그에 걸맞는 발걸음을 걸을 것입니다.
오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거나 다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방패에 몽둥이에 완전무장을 하고 완전 보호를 한 공권력 앞에서 단지 분노와 정의감만으로 마주선 이들이지만 어린시절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만화영화 주제처럼, 그리고 성서의 교과서적인 반복구처럼 반드시, 언젠가는 승리를 얻고 참사람됨의 길을 발견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