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 계신 강원도 인제에 며칠 있다 오라고 데려다주러 갔다왔습니다.
그런데 농사 지으시는 부모님 일손이 달려서 일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일오후에 강원도 부모님 계신 곳에 갔습니다.
부모님은 올해 감자농사를 많이 지으셨습니다.
농장에 도착했더니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근처 감자 밭에 감자를 캐러 가셨다고 합니다.
잠시 뒤 오셨는데 트럭 화물칸에 반 넘게 감자를 실어오셨습니다.
저녁을 먹고 감자를 크기별로 분류합니다. 주먹 만한 것은 특상품, 그보다 좀 작은 것은 대, 중 하는 식으로 분류합니다.
분류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 밤을 보내고 월료일 하루를 더 일하고 서울로 돌아오기로 하였습니다.
아침부터 감자밭에 가서 감자를 캡니다. 밭이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일일이 호미를 들고 손으로 캐야하니 그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호미로 캐다보니 감자들이 호미에 찍히고 긁힙니다. 그러면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그래도 마땅한 방법(예를 들어 관리기 감자캐는 기계)이 없어 손으로 해야 합니다.
해가 좀 높이 오르자 마침 수련회를 오셨던 작은아버지 교회 성도들이 열 명 넘게 일을 돕겠다고 오셨습니다.
점심나절까지 감자를 캐니 한 트럭이 됩니다.

트럭을 비우기 위해 혼자 트럭을 끌고 농장에 가서 한 트럭이나 되는 감자를 일일이 손수레로 실어 나르고 쭉 펴너 널어놓습니다.
선풍기를 틀어 물기를 말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한 트럭을 다 부리고 나시 한 시간은 족히 된 것 같습니다.
다시 감자밭으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를 더 캐고 돌아왔습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습니다.
이 일을 매일 같이 하셔야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런데 감자를 캐면서 들은 얘기는 특상품 감자 29Kg 한 상자가 고작 13,000원이랍니다. 대는 1,0,000원, 중은 3,500원이랍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캔 감자 한 상자가 돈 만원 밖에 안 한다니 말입니다.
육체적인 노동의 고생은 그렇다치지만 땀의 댓가가 고작 만 원 안팎이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힘이 쪽 빠집니다.
어디 우리 부모님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겠습니까?
농촌에 머무는 분들이래야 거의 60 넘은 노인들인데 그 삶이란 것이 얼마나 혹독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년동안 눈에 띄게 마르신 아버지, 허리가 확 꼬부라진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내일은 옆집의 관리기를 빌려서 감자를 캐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옆집 관리기를 갖다가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면서 어떻게 사용하는건지 갖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마침 맥가이버 뺨치시는 고무부가 오셔서 밤 늦게까지 셋이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시동을 걸고 손을 봐서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잘 된다면 내일을 캐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래도 노인들에게 무거운 감자를 주워 담는 일도 생각같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밤 11시가 훨씬 넘어서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인제 갔다 가는 길은 항상 마음이 무겁다'고 합니다.
일을 해서 몸도 쑤시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더 많이 쑤시는 그 심정을 저도 압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은 결코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생존을 위한 먹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많이 팔았다고 좋아하지만 자동차를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농업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곡물가가 상승하게 돼있습니다.
식량이 아니라 무기이고 돈줄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은 더이상 도덕성을 고려할 의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동차를 팔아 남은 이익의 몇 배를 주고서 곡물을 사다 먹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미 수많은 농업 생산물에서 그 결과를 경험하였습니다.
세상이 생존을 위한 먹거리를 다른 것과 바꾸려고 할 정도로 돈에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정말 큰 일입니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부모님 돌아가시는 날까지 큰 손해 없이 소일꺼리로 농사 지으시면서 건강하게 사시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이 땅의 모든 고령의 농업인구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크게 꿈을 꿔보면 이 나라 위정자들이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업을 제대로 진흥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법잽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런데 농사 지으시는 부모님 일손이 달려서 일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일오후에 강원도 부모님 계신 곳에 갔습니다.
부모님은 올해 감자농사를 많이 지으셨습니다.
농장에 도착했더니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근처 감자 밭에 감자를 캐러 가셨다고 합니다.
잠시 뒤 오셨는데 트럭 화물칸에 반 넘게 감자를 실어오셨습니다.
저녁을 먹고 감자를 크기별로 분류합니다. 주먹 만한 것은 특상품, 그보다 좀 작은 것은 대, 중 하는 식으로 분류합니다.
분류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일 밤을 보내고 월료일 하루를 더 일하고 서울로 돌아오기로 하였습니다.
아침부터 감자밭에 가서 감자를 캡니다. 밭이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일일이 호미를 들고 손으로 캐야하니 그 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호미로 캐다보니 감자들이 호미에 찍히고 긁힙니다. 그러면 상품가치가 없습니다.
그래도 마땅한 방법(예를 들어 관리기 감자캐는 기계)이 없어 손으로 해야 합니다.
해가 좀 높이 오르자 마침 수련회를 오셨던 작은아버지 교회 성도들이 열 명 넘게 일을 돕겠다고 오셨습니다.
점심나절까지 감자를 캐니 한 트럭이 됩니다.

트럭을 비우기 위해 혼자 트럭을 끌고 농장에 가서 한 트럭이나 되는 감자를 일일이 손수레로 실어 나르고 쭉 펴너 널어놓습니다.
선풍기를 틀어 물기를 말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한 트럭을 다 부리고 나시 한 시간은 족히 된 것 같습니다.
다시 감자밭으로 돌아가서 한 시간 정도를 더 캐고 돌아왔습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습니다.
이 일을 매일 같이 하셔야 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런데 감자를 캐면서 들은 얘기는 특상품 감자 29Kg 한 상자가 고작 13,000원이랍니다. 대는 1,0,000원, 중은 3,500원이랍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캔 감자 한 상자가 돈 만원 밖에 안 한다니 말입니다.
육체적인 노동의 고생은 그렇다치지만 땀의 댓가가 고작 만 원 안팎이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힘이 쪽 빠집니다.
어디 우리 부모님만 해당하는 이야기이겠습니까?
농촌에 머무는 분들이래야 거의 60 넘은 노인들인데 그 삶이란 것이 얼마나 혹독한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3년동안 눈에 띄게 마르신 아버지, 허리가 확 꼬부라진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내일은 옆집의 관리기를 빌려서 감자를 캐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후에는 옆집 관리기를 갖다가 이리 만져보고 저리 만져보면서 어떻게 사용하는건지 갖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마침 맥가이버 뺨치시는 고무부가 오셔서 밤 늦게까지 셋이서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보다가 시동을 걸고 손을 봐서 비슷한 모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잘 된다면 내일을 캐는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래도 노인들에게 무거운 감자를 주워 담는 일도 생각같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밤 11시가 훨씬 넘어서 집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인제 갔다 가는 길은 항상 마음이 무겁다'고 합니다.
일을 해서 몸도 쑤시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더 많이 쑤시는 그 심정을 저도 압니다.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은 결코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생존을 위한 먹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많이 팔았다고 좋아하지만 자동차를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농업기반이 완전히 무너져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게 될 때 필연적으로 곡물가가 상승하게 돼있습니다.
식량이 아니라 무기이고 돈줄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은 더이상 도덕성을 고려할 의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자동차를 팔아 남은 이익의 몇 배를 주고서 곡물을 사다 먹어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이미 수많은 농업 생산물에서 그 결과를 경험하였습니다.
세상이 생존을 위한 먹거리를 다른 것과 바꾸려고 할 정도로 돈에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정말 큰 일입니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부모님 돌아가시는 날까지 큰 손해 없이 소일꺼리로 농사 지으시면서 건강하게 사시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이 땅의 모든 고령의 농업인구들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좀 더 크게 꿈을 꿔보면 이 나라 위정자들이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농업을 제대로 진흥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법잽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농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