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나오지 않으시지만 몇 년 전부터 저에게 컴퓨터를 배우러 오시던 여자분 둘이 있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나가는 주부들인데 우리교회에서 컴퓨터 강좌를 한다니까 와서 배우신 분들인데 꽤 오랜동안 저에게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이 많이 들어 우리 교인이나 진배 없는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스승의 날에 강좌를 끝내고 가셨는데 두 분이 다시 되돌아오셨습니다.
손에는 예쁜 꽃이 담긴 하얀 화분이 들려 있었습니다.
골에 컴퓨터 가르친다고 스승이랍시고 제게 스승의 날 꽃 선물을 해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었는지!
사실 워낙 식물을 잘 못 키워서 왕 부담스러웠지만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기쁘게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한 해를 못 넘기고 이 꽃이 사망을 하셨습니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더 커서 그저 죽어가는 카라를 보면서 아쉬워하다가 그냥 볕이 잘 드는 곳에 화분을 방치하고 말았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볕이 뜨거워지자 예배당에 있던 산세베리아 화분을 내어놓았습니다.
이 산세베리아도 옆집 할머니께서 장기간 외국에 다니러 나가시면서 교회에 주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가가 그만 화분을 작살내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산세베리아는 크게 다치지 않아서 작은 화분 둘에 나누어 심었습니다.
나누어 심을 화분을 찾다가 작년에 이미 사망하신 카라를 담았던 하얀 화분이 보여서 그 안의 흙을 덜어내고 산세베리아를 심었지요.
카라가 담겨있던 흙덩이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카라가 양파같은 알뿌리로 돼있는데 그 알뿌리에서 푸른 싹들이 너댓 개가 삐죽삐죽 올라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죽어 말라 비틀어져 있을꺼라고 생각했었는데 멀쩡하게 살아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것을 보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반갑고 감사했겠습니까!
완전한 죽음인 줄 알았는데 내 관념을 깨버리고 다시 살아났으니 이게 바로 부활이구나 생각하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다시 다른 화분을 가져다가 정성껏 싹이 올라오는 알뿌리를 심어놓고 물도 주고 주차장 쪽 햇볕 잘 드는 곳에다가 내놓았습니다.
이제는 싹이 아니라 줄기가 될 정도로 네 개 정도 자라났는데 제일 긴게 한 20센티미터 가량 자라났습니다.
그걸 보면서 마음이 참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슬픈 일이 일어났습니다.
승합차를 끌고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앞집 차가 너무 많이 나와있다 싶어 주차장에 들어가는 것이 신경쓰이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네 개 내놓은 화분 중 하나를 깨뜨리고 말았습니다.
별 일이야 있을까 싶어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려보니 하필 산세베리아 화분 세 개와 카라 화분 하나 있는 것 중에 카라 화분이 박살이 났습니다.
그래도 화분만 깨지고 별 일 아니려니 했더니만 자동차 바퀴가 카라 줄기와 알뿌리를 처참하게 짓밟고 지나간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으깨지고 상처 입은 채로 축 처진 카라 줄기를 보니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신음처럼 한 소리가 새어 나오더군요.
"카라야, 미안하다..."
내 손에 전해지면서부터 내게 참 많은 기쁨과 반가움을 주었던 카라였는데...
다시 살아난 모습을 보여주어서 내가 부활의 기쁨으로 몸을 떨었는데...
나의 부주의로
인간의 기계문명에 의해
처참할 정도로 파괴되고 짖이겨진 채로
그렇게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린 카라...
카라야, 정말 미안하구나.
카라의 죽음을 통해 제 인생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한 생명이 또다른 생명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슬픔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카라는 다시 한 번 부활할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이 카라, 이름도 없는 한 뿌리 풀이지만 내 마음에 한 생명으로 다시 부활하였음을 믿습니다.
나는 이 카라를 통해서 예수님을 봅니다.
카라야, 고맙다. 그리고 예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