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 일요일 아침이 분주하다. 은평구에서 서오능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G교회에서 강원도 인제로 하루 동안 농촌 봉사활동을 간다고 하여 함께 가기로 했다. 나는 태백근방 황지라는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강원도라고 하면 오랜 친구같이 느껴진다. 요즘엔 자동차로 가는 길이 좋아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느린 속도로 오르는 재미는 없지만 인제까지 3시간이 조금 안 걸리다니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해도 되는 걸까 생각하며 한편으로 겁이 나기도 했다.
떠나기 전에 누구에게 이런 농촌봉사활동 얘기를 했더니, “그 교회 이단 아니냐?” 고 했다. 그도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기에 이런 말이 나온 것이다. 성스러운 주일날 어찌 예배를 안 드리고 외부 활동을 하느냐는 거다. 나는 당연히 인제에 도착해서 예배를 드리지 않겠냐고 말했는데, 돌아온 말이 나를 꽤 답답하게 했다. “본 교회에서 드리지 않는 예배는 제대로 된 예배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가 이단이 아닌지 잘 살펴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G교회로 향했지만 하루 종일 그런 말들이 마음 한 쪽에서 작은 가시처럼 박혀서 불편했다.
인제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안 됐다. 산 중턱에 위치한 농가는 컨테이너를 개조해서 만든 가건물이다. 우리가 도착하니 반겨주는 건 사람보다 동물들이 먼저였다. 커다란 개 네 마리, 그 중 한 마리가 낳은 새끼인 것으로 보이는 강아지 다섯 마리, 토끼 몇 마리, 닭 몇 마리, 돼지 두 마리가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각기 목소리를 내어 낯선 도시 사람을 맞아주었다.
간단하게 예배를 드린 후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전 점심을 대접받았다. 불고기, 두부, 김치 - 세 가지 뿐인 밥상이었지만 입안에서 느끼는 건 풍성한 강원도 한가득 이다. 특히 두부는 우리가 온다고 하여 아침부터 직접 집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두부와 달리 굉장히 담백하고 고소해서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난 뒤에도 두부만 몇 접시씩 먹었다.
점심을 잘 먹고 난 다음 힘을 내어 일을 시작했다. 남자들은 트럭을 타고 콩밭으로 가서 콩대를 잘랐다. 여자들은 고구마와 야콘을 캤다. 우리가 반찬으로 먹는 작은 콩 하나가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지는 것인 줄 정말 몰랐다. 쌀 같은 것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수고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보지 않았지만 짐작은 했지만 콩은 진짜 이날 까지 전혀 몰랐다. 콩은 그저 콩 주머니를 다서 그 안에 있는 알맹이를 툭툭 까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어린애 같이 단순한 생각이었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이 작은 콩 한 알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콩대를 자르고, 자른 것을 모으고, 털고, 정리하여 선별하는 작업까지 모두가 힘든 일 뿐이다. 과연 앞으로는 콩 한 알을 가볍게 보지 못하리라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캐 온 고구마와 야콘은 날 것으로 그냥 흙만 털어 깎아 먹어도 맛이 좋다. 나는 지금껏 야콘을 날것으로 먹어보지 못했는데 입에 넣어보니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소하면서 시원한 맛이 입과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후련하게 퍼진다. 시내에서 야콘 냉면을 먹을 때는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야콘이다.
그 다음으로는 다함께 머루를 땄다. 머루는 작은 포도처럼 생겼는데 평소에 나는 즐겨 먹지 않는 편이다. 콩대 자르는 일에 너무 힘을 쏟아서 나는 머루 따는 일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따면서 몇 개 먹어봤더니 너무 맛이 좋다고 하면서 입이 귀에 걸렸다.
비록 하루 동안 봉사활동 이었지만 많이 힘들고 지쳤다. 얻은 것도 많고 내가 거기에 버리고 온 것도 많다. 오랜만에 다녀온 내가 자란 강원도. 비록 나는 다 커서 매연 가득한 서울에 와 있지만 여전히 내 태생은 강원도 고구마다. 그렇게 좋고 따뜻한 흙이 여전히 내 발에 묻어있다. 콩처럼, 고구마처럼, 야콘처럼 나도 그 녀석들처럼 잘 자라면 좋겠다. 맛 좋게 자라서 다른 사람 밥상에 올라가는 반찬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