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현장은 버스중앙차로 바로 옆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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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0일 이었다. 누구에겐 평범한 날, 누구에겐 특별한 날 이었을 거다. 누군가는 생일이었을 테고, 어떤 사람은 군 입대 영장이 나온 날일 거다. 누군가는 집에서 하루 종일 TV로 공짜 영화를 즐겼을 테고, 수많은 학생들은 PC방에 앉아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었을 거다.
용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용산구 한강로 2가에 위치한 건물 옥상에서 건물 철거에 맞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들, 경찰, 용역 직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지는 가운데 발생한 화재로 인해 여러 명이 다치거나 숨졌다. 이 일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을 입었다.(당시 MBC 뉴스 보도 인용) 이후, 이 일은 ‘용산참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니만큼 검찰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당시 현장에서의 폭력문제, 용역 직원 동원 문제, 시위 진압 과정 중 안전 문제, 과잉 진압에 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내용을 두고 조사 했지만 사건 이후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숨진 분들에 대한 장례식도 치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식 있는 몇몇 기독교 단체와 성공회 등 여러 종교 단체가 모여 12월 25일 오후 3시에 성타 예배를 드렸다. 나는 용산참사 현장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다. 그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몇 번 보았던 게 전부다.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 현상은 버스 중앙차로 바로 옆 길가에 있다. 차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면서 나는 첫 번째로 이 비현실적인 광경에 허탈한 심정을 느꼈다. 여긴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산골짜기가 아니다. 배를 타고 멀리 떠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섬도 아니다. 복잡한 대도시 서울, 용산 한복판에 있는 상가 건물이다.
정확히 3시에 도착했는데도 좁은 골목길은 이미 사람들도 가득했다. 모인 사람들이 어림잡아 천 여 명은 넘지 않나 싶다. 예배가 시작되고 순서가 거의 끝날 즈음 성찬식을 했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 준비한 성찬 음식이 다 떨어져 나를 포함해 뒤쪽에 있던 대부분 사람들이 성찬 떡과 음료를 받지 못했다.
참사현장은 골목길이라 바람이 많았다. 원래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니까 옷을 든든히 입고 오라는 공지를 받았던 터라 내복에 등산양말까지 신고 갔는데도 엄청나게 추웠다. 예배를 집도하는 강단은 골목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는데 그 너머로 십자가 보다 더 높은 건물 세 개, 용산 시티 파크가 보인다. 나는 여기서 두 번째로 비현실적인 느낌이 닥쳐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게 정말 내 눈으로 보고 있는 현실일까?
예수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민중을 위해 살다 국가 전복세력으로 몰려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 때 십자가가 세워졌던 골고다 언덕에는 예수 말고도 다른 두 범죄자에 대한 사형 집행이 있었다. 예수의 십자가가 가운데 서고 양 옆에는 각각 강도들이 있었다. 예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비롯 모든 민중들의 죄를 사하고,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을 위해서도 용서의 기도를 올리며 숨을 거뒀다. 그런데 지금 쓸쓸한 마음으로 성탄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 저 멀리 보이는 건 자비, 용서, 긍휼, 사랑의 십자가가 아니다. 무엇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높고 고급스런 빌딩이 아닌가!
철거민 다섯 명이 숨졌고 이 분들은 여전히 병원 영안실 냉동안치소에 있다. 그런데 국가에서는 이럴 다 할 조치가 없다. 도대체 이것이 인간인가? 숨진 다섯 명이 설령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망자에 대한 대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하물며 이들은 너무도 살고 싶어 폭력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사용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다. 모든 폭력은 나쁘다. 하지만, 가난하고 오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은 가장 마지막으로 남은, 자기 몸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이다. 폭력은 폭력이되 돈 많고 힘 좋은 사람들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기에 사용하는 폭력과 분명히 다르다.
한 시간 후 예배가 끝났다. 작은 노래 공연이 이어졌고 아이들에게는 성탄 선물을 나눠줬다. 참담한 현장이지만 참으로 풍성하고 따뜻한 광경이다. 한쪽에는 온통 검은색뿐인 분향소가 있는데, 거기서 몇 걸음 벗어난 다른 한쪽에는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치장한 완전히 정 반대 느낌이 나는 곳이 있다. 거기서 아이들은 성탄 선물을 받고 좋아한다. 저 멀리는 처음에 내가 보았던, 여전히 땅바닥에 깊숙이 박혀있는 듯 무섭게 서있는 골리앗들, 높은 건물이 여기를 노려보고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여기, 수 백, 수 천 명 다윗들이 있다. 조심해라 힘만 센 거인들아!’
쓸쓸하고 슬픈 크리스마스였다. 하지만 참사현장 건물에 크게 써있는 플래카드, '우린 힘들지 않다!'라는 말이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성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