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이름이 이상하지만 말 그대로 헌책방이다. 그렇다고 서대문 시장 내에 있는 오래된 헌책방 같지는 않다. 아담하고 섬세한 배치와 진열이 헌책방 이상을 의미한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하 이상북)은 청소년들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공간이요, 도서구입 매장이면서 문화를 누리는 마당이기도 하다. 매월 한 차례씩 진행되는 (청소년)문화제는 시낭송, 영화상영, 음악공연 등으로 적지 않은 고정관객을 확보하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이다. 몇 천 원씩 받는 참가비는 공연자 사례를 제외하고 전액 지역사회 곳곳으로 보내진다. 물론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상북을 운영하는 윤성근씨는 필자가 공동으로 목회하는 좋은만남교회에 작년부터 출석하기 시작했다. 아내인 성진경씨는 은평구의 비기숙형 중등대안학교인 은평씨앗학교(은평야학의 후신) 교사이다. 이상북은 은평씨앗학교 학생들이 자주 들러 책을 보고 놀다 가는, 때로는 수업이 진행되는 공간으로 밀접하게 상호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윤성근씨는 하루 천만 명 이상 접속하는 인터넷 서버를 관리하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는 보수도 많던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함께 살기로 작정하고 몇 년을 준비하여 이상북을 열었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고 수입도 소소하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행복하단다.
3월 27일 5시에 열린 문화제는 창작판소리 문화공동체를 표방하는 바닥소리와 함께 하였다. 시작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필자는 솔직히 판소리에 대한 전이해가 없어 앉아 있기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절로 웃음소리가 새나왔다. 삼십 평 공간은 사람들로 꽉 차서 앉을 자리도 없을 정도였다.
창작판소리답게 어렵지 않았고 중간중간 현대적으로 각색된 부분이 있어 이해하기도 쉬웠고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바닥소리는 현대판 해님 달님 이야기, 나라를 구한 방귀 며느리, 이사가는 날, 전통민요 사랑가 한 토막 등을 구성지고 신명나며 재미있게 불렀다. 뜻하지 않은 초대손님이 나와 선녀와 나뭇꾼을 소리하였는데 얼마나 우습고 재미있던지 짧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모두들 깊이 빠져들었다. 빡빡 머리에 생김생김부터 재미있는 이 분은 온 몸으로 관객과 호흡하면서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를 풀어냈다.
바닥소리의 판소리는 단순하게 예술적이지만은 않다. 민중적이라고 할까, 그래서 이름이 바닥소리이겠지만! 햇님달님 이야기는 호랑이 대신 미싱(재봉틀)이 등장하여 노동자들을 대대로 착취하는 어떤 세력으로 형상화하였고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는 하늘과 땅의 분단된 상황을 극복하는 것으로 남북분단을 상징화하였다. 또 엔딩곡으로 전체가 함께 부른 이사 가는 날은 도시재개발로 삶터에서 쫓겨나는 이들의 애환을 담은 곡이다. 매번 꼭지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진심을 담은 박수를 뜨겁게 보냈다.
공연을 마치고는 행운권 추첨도 하였다. 바닥소리 음반 몇 장과 윤성근씨가 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책도 다섯 권 나누어 주었다. 당첨된 사람은 오늘 제대로 수지 맞은 날이다. 문화공연이라기보다는 축제, 잔치와 같은 느낌이다.
작은 규모의 문화공간이기에 관객과 공연자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어느 샌가 문화공연은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관객은 말 그대로 관객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처럼 작은 공간에서의 공연은 직접적으로 상호 소통하면서 관객과 공연자가 하나로 어울어지게 한다. 간접적으로나 참여하는 문화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크고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도식이 정형화된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북의 문화제는 대안적 이상을 제시한다. 풀뿌리 문화운동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상북의 문화제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상북이 우리 동네에 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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