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묘역 공동예배 참석후기

by 존레논 posted May 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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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주에서 5.18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꼭 3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그래서인지 5월엔 여기저기서 민주항쟁관련한 행사가 많다. 5월 9일에는 전국에서 뜻을 같이하는 여러 교회들이 함께 광주민주화묘역에 모여 추모 예배를 드렸다. 나는 책방 일을 하루 접고 서울에서부터 먼 길을 따라나섰다. 목사님이 직접 운전한 봉고차를 타고 열심히 달렸지만 4시간이나 걸려 광주에 도착했다.

서울은 맑았는데 묘역에 들어서자 날씨가 제법 쓸쓸해졌다. 사람들은 햇볕이 따갑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솔직히 나는 이 묘역에 처음 와본다. 마치 묘역 주변 날씨는 언제나 이렇게 잿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울한 분위기다.

전국적인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모인 교회와 교인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는 대표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향린교회를 비롯해서 몇 개 교회만 보였고 미리 받아둔 예배순서 종이를 보니 부산이나 대구에 있는 교회도 좀 있었다. 홍보가 적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적은 사람들이 모인걸 보면 개신교회가 보수파의 우두머리 단체라는 눈초리를 받고 있는 것도 빈말이 아닌 것 같다.

두 시간 반 동안 이어진 긴 예배 동안 사람들 눈빛은 진지했다. 예배를 진행하는 성직자들 목소리에도 하나같이 굵직한 힘줄이 들어가 있었다. 예배는 구교와 신교의 통합 방식인 리마예식으로 진행했다. 하나님(God)과 예수(Jesus)를 믿는 개신교는 조직 성격과 예배형식 등에 따라 다시 여러 분파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단체는 ‘장로교’와 ‘순복음’이다. 장로교는 말 그대로 교회의 원로, 즉 장로들이 대게는 큰 힘을 갖고 있다. 그렇다보니 어떤 교회는 성직자가 아닌 장로들이 목사보다 더 큰 실세를 가지기도 한다. 이런 부작용이 교회가 부패하는 원인이 될 때도 있다.

‘침례교’는 신도에게 세례를 줄 때 한자말 그대로 ‘침례(浸禮)’ 즉, 온 몸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특이한 의식을 치른다. 침례교는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교리적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에 나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늘 광주민주화묘역에 모인 교파 중 감리교(Methodist Chruch)는 어떤 면에선 가톨릭교회와 비슷한 형태를 갖는다. 여러 교회를 감독하는 감리제도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하위 교회 각각의 부패 등에 대해서는 안전한 편이지만 감리를 하는 상위계층에 주로 문제가 생기는 편이다.

감리교회는 18세기 영국인 신학자 존 웨슬리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시작된 개신교 분파다. 영국은 헨리 8세 시대에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에서 벗어나 ‘성공회 교회(Anglican Church)’ 시대를 열었다. 성공회는 가톨릭과 비슷하지만 좀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감리교는 영국의 성공회에서 파생된 교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감리교 예배형식을 보면 가톨릭이나 성공회가 하는 그것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다. 또한 성공회의 영향으로 개혁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교파이다 보니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진보적인 사회개혁운동에 앞장서는 기독교 종교단체를 보면 보통 성공회이거나 감리교인 경우가 많다.

기독교는 그 근본이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철학이기 때문에 예배형식 또한 외국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운데 감리교는 상당부분 우리식으로 바꾼 예배형식을 쓴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향린교회 같은 경우 감리교는 아니지만 예배를 진행 할 때 국악찬송가를 사용하는 등 예배 형식과 신앙에서 우리식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는 이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성찬식에서 특별한 감동을 받았다. 많은 감리교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하는데, 이것이 예배순서 중에서 가장 서양식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나 역시 이 성찬식이라는 형식이 늘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는데 이날 성찬식은 커다란 빵을 여러 사람이 함께 뜯어먹고 포도주도 흙으로 구워서 만든 그릇에 담아 모든 사람이 그 그릇 속에 자기 빵을 적셔먹는 형식이었다.

음식 하나를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손을 대고 먹는 문화는 우리문화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국이나 찌개를 가운데 놓고 각자 자기 숟가락을 넣어서 떠먹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참으로 비위생적인 행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렇게 음식을 나누는 일에 익숙하다. 나는 성찬식이라는 외국식문화 속에서도 충분히 우리문화를 녹여낼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예배는 우리 전통장례문화에서 긴 무명천을 여러 사람이 잡고 천천히 앞사람을 따르는 일로 마무리했다. 하늘색 무명천 행렬은 묘역을 한 바퀴 돌아 예배 장소에 둥글게 모였다. 이것 역시 서양식 기도와 우리식 기도를 버무린 단체기도이다. 이 기도는 대전 퀘이커모임에서 온 분이 모두에게 설명하고 무명천 행렬 맨 앞에 서서 인도했다.



예배를 마치고 묘역 옆에 있는 5.18민주항쟁기념관에 들렀다. 잘 알고 있다고 느낀 1980년 5월 18일의 일인데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보면서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는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한 것을 실제로 보거나 겪지 못했음에도 히틀러를 죽일 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광주에서 그와 다르지 않은 학살이 일어났고 심지어 그 일을 도모한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는 현실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노태우까지 포함하면 실제론 학살 가담자 중에서 두 명이나 대통령이 된 것이다. 정말 욕 나오는 일이 아니고 뭔가!)

그런데 민주항쟁의 역사를 다룬 기념관 맨 마지막 부분은 ‘바로잡은 역사’라는 제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 밑에 있는 글을 읽어보니 김영삼이 대통령이었을 때 특별법을 만들어서 전두환과 노태우가 감옥에 간 것을 가지고 역사가 바로잡혔다고 쓴 것이다. 다시 화가 났다. 도대체 이 기념관은 누가 왜 만든 것일까? 어째서 이 일이 이제 끝났고 역사가 바로잡혔다고 써둔 걸까. 전두환은 지금도 국가에 무슨 일만 있으면 원로처럼 등장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과 함께 그 일을 논의 할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통장에 20만 원 정도 밖에 없어서 추징금도 못내는 사람이 큰집에서 살고 골프치고, 산해진미 먹으면서 편안하게 지낸다. 광주민주항쟁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된 것이 과연 역사가 바로 잡힌 건가?

돌아오는 5월 16일에는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서 공동체 영화 상영을 한다. 3월에 개봉한 <경계도시2>를 함께 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송두율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학자이지만 한국 사람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국에 들어 올 수 없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송두율 교수가 한국에 들어오도록 허가가 떨어진 건 노무현 정권 때다. 많은 사람이 송두율 교수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걸 환영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들어온 지 열흘 후 미디어에 의해서 거물 간첩이 돼 버렸다. 결국 그는 재판을 받고 2004년 다시 독일로 떠났다.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 나라 역사는 바로 잡힌 건가? 학살자는 대접을 받고 세계적인 학자는 간첩이 되는 이 나라다. 무엇이 역사이고 무엇이 민주주의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나는 광주사람이 아니다. 정치적인 사람도 아니다. 광주라고 하면 기아 타이거즈 야구팀이나 무등산 수박 정도를 떠올릴 정도로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대도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사람이 여전히 이 땅에 살아있다는 게 못마땅하다. 광주민주화항쟁은 여전히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가장 앞에 나오는 민중 승리의 역사이다. 말했듯이 역사는, 광주의 역사는 아직 바로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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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Lima) :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구교와 신교가 만나 공식적인 통합 예배예식서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리마예식서라고 한다. 그 회의가 열린 장소인 페루의 도시 ‘리마’에서 따 온 것이다.

*세례 : 믿음을 가진 정식교인을 맞을 때 성직자가 베푸는 행위. 이것은 성경에서 요한이 젊은 예수에게 했던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찬식 : 예수가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죽기 전 제자들과 함께 나눈 마지막 식사를 예배 형식으로 도입한 것이다. 각 성도들은 성직자가 손을 얹고 기도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한다.

*퀘이커(Quaker) : 보통 미국에서 발생한 청렴한 신앙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퀘이커의 시초는 성공회, 감리회 등과 마찬가지로 영국이다. 퀘이커 교도들은 십일조 거부, 장관들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것 거부 등으로 교회에서 핍박을 받아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미국에서도 역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펜실베니아에서 드디어 종교적 자유를 보장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함석헌 선생이 퀘이커 운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고유한 신앙관인 ‘씨알사상’은 퀘이커 철학과 많은 부분이 닿아있다. 이를 시작으로 한국에도 현재 주요 도시마다 퀘이커 모임이 활성화돼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