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 보궐선거에서 민주진영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은평을 선거구 주민들의 기자회견이 7월 7일(수) 오전 10시 연신내 물빛공원에서 열렸다.
범야권 후보단일화를 염원하는 은평주민은 지난 며칠 동안 지역주민의 연명을 받아 이날 기자회견문을 발표하였다. 7월 28일에 열리는 보궐선거이므로 728명의 서명을 받고자 하였으나 시일이 촉박한 관계로 이날 기자회견문에 연명한 인원은 149명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종교계와 지역시민단체, 지역문화예술계 등이 참여하였지만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하여 참여하지 못한 모임이 많으니 728명 정도는 머지 않아 무난하게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범야권 후보 단일화가 지체될 경우, 은평 주민들은 단일화 촉구 서명인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고 후보진영을 압박하였으니 좀더 논의가 확대될 전망이다.
이 기자회견에는 민주노동당 이상규 후보, 사회당 금민 후보 등 진보적 후보진영에서 기자회견에 참여하지는 않고 참관하기만 하였지만 후보 단일화에 대한 필요성은 공감하는 듯했다. 은평을 선거구는 한나라당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한 상태이고 민주당은 은평구을 지역위원장 고연호, 장상 전 총리서리, 김근태 전 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루머이겠지만 방송인 김재동씨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은 서울시당위원장인 이상규씨가 출마할 예정이며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던 사회당 금민 대표도 출사표를 던졌다. 은평을 선거구 주민은 지난 총선에서 삼선의원인 이재오 의원을 낙선시키고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를 선택하여 파란을 일으킨 지역이며 선거 때마다 이변이 속출되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이번 재보궐선거, 특히 은평을구의 보궐선거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6.2 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여전히 외면한 채 4대강 사업을 강행추진하고 불법사찰을 묵인하는 등 민심 역주행을 지속하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명한 반대의사 표명을 통해 사실상 통치 불능의 상태가 되도록 쐐기를 박거나 아니면 꺼져가는 촛불 같은 정권에 극적인 회생의 기회를 만들어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식적인 선택을 해왔던 은평을 주민들의 성향에 비추어볼 때 이번에도 이재오 전 의원이 당선될 가능성은 낮지만 현상황처럼 민주진영 및 진보진영 후보들이 난립한다면 섣불리 재단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민주진영은 후보단일화라는 연대의 틀을 만들어 선거에 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은평을구에서 민주진영이 후보단일화를 이뤄내고 당선시킨다면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진일보한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정치판에는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랜 속담(?)이 있다. 소위 민주진영은 중도에서 극좌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후보단일화는 쉽지 않은 문제가 분명하다. 그러나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과감한 후보단일화와 정당차원을 뛰어넘은 적극적인 지지선언들이 있었기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고 분열로 망하는 진보진영의 새로운 실험은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민주당에 전향적인 지지를 보냈던 민노당이 이번에도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단일화에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선거는 반 MB 연대라는 절대절명 시대적 요청 앞에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으로 마지 못해 따라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최대의 승리를 얻은 민주당에게 보궐선거를 통해 또 한 자리를 더해주는 것은 이미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지난 선거에 민노당과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으로부터 공천 받은 후보들이 될 성 싶은 후보들에 대한 지지표명을 하고 후보사퇴를 하였지만 이에 대한 적지 않은 내부적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이다. 군소정당이 그나마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주류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묵묵히 소신을 지키며 갈 길을 갔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향이 다른 전당과의 연대는 당의 존립을 훼손하는 해당행위로 판단될 수도 있다. 실제로 사회당 같은 경우는 스스로를 진보진영으로 분류하며 민노당은 진보와 중도의 중간 지점 정도로 자리를 옮겨갔다고 평가하고 있고 이번 은평을구의 민주진영 후보단일화와는 별도로 진보진영의 단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차이점들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남아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민주당의 태도이다. 한국의 민주진영에서 민주당이 점하고 있는 위치는 누가 뭐라 해도 독보적이다. 민노당이 점차 세력을 확보해가고 있지만 민주당에 비하면 어젼히 꼬마정당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선거에서 민노당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후보단일화에 동의해준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민주당은 자신이 민주진영의 종가집이라고 자처하고 또 그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많이 가진 이가 적게 가진 이, 갖지 못한 이를 배려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는 진보건 보수건 보기가 쉽지 않은 장면이다.
종가집이고 맏형이라면 지난 선거에서 작은 집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이번 보궐선거에서 갚을 만도 할 텐데 정치판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장상, 김근태 씨 등 거물급 정치인을 내세워 이번 선거에도 승리하여 민주당의 기세를 몰아가고자 할 것이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진보 진영의 군소정당들은 들러리나 서다가 물러나게 될 판이다. 군소정당이 독자적인 소리를 내면서 끝까지 선거에 임한다면 민주당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당이 크게 양보하여 꼬마정당의 후보로 단일화가 이루어진다 해도 상대적으로 약한 지명도 때문에 당선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게 된다. 그렇다고 무모한 도전을 하기에도 쉽지는 않을 터! 후보 단일화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평을에서 범야권의 후보단일화를 성취해낸다면 그야말로 진일보한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예포가 될 것이다. 고질적인 분열의 벽을 넘어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든다는 것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후보단일화와 더불어 모든 참여 정당이 평등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정책적 연대, 공동의 선거운동에 대한 결단이 선결되어야 한다. 타성에 젖은 민주당만으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진보적이고 꼭 필요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주장만으로도 부족하다. 현 시대 다양한 담론들이 담긴 정책을 제시하고 당선 이후에도 골고루 보직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자리와 정책을 공유하는 방식이라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기본적 여건은 갖출 수 있게 된다. 많은 문제들이 또다시 노정되겠지만 그때 가서 다시 협의하고 조율한다면 충분히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한국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의견에 대한 존중과 공존이다. 시민사회는 이미(충분하지는 않지만)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인정과 공존의 방식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흑백논리가 판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배제하는 방식이 팽배하다. 만약 정치권에서 공존의 방식을 습득하고 그에 따라 정책을 연구해 나간다면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런 귀한 정치적 사회적 실험이 은평을 주민들에 의해 요청된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물론 여러 모로 부족하다. 구체적인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이제 겨우 후보 단일화라는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합의만이라도 하자고 요청하는 수준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선거운동 기간이지만 주민을 포함한 모든 민주진영이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도 토론하는 장이라도 만든다면 그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아무쪼록 한국사회의 미래라는 큰 틀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며 힘차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