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만원을 주고 중고차를 샀었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험하게 몰았던지 많이 늙어버리셨습니다.
한 번은 고속도로를 달려와 집 앞 골목에 들어섰는데 바퀴가 얄팍한 경계석 턱을 넘어서더니 서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양쪽 앞바퀴가 한자로 여덟팔자를 그리고 퍼져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행여라도 고속도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하고 생각하니 순간 오싹해졌습니다.
아내가 타고 다니는 일이 많아 더이상 위험하게 타고다닐 수는 없다는 생각을 그동안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11일, 송윤혁 청년이 조모상을 당해 문상을 가다가 덜컥 사고까지 났습니다. 갑자기 좌측에서 튀어나온 스포츠 차량이 운전석 앞을 들이받은 것입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심히 불편하더군요.
결국 질렀습니다. 새로 나온 경차, 미티즈 크리에이티브를 샀습니다.
나름대로 환경을 생각한답시고 기름을 적게 먹고 연비가 잘 나오는 수동기어를 주문했습니다.
이제 아내에게 수동기어 운전법을 가르칠 일이 태산같습니다. 절대 운전은 남편한테 배우는 게 아닌데...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은 한 40만원 손에 쥐고있고 지금 타던 차를 90만원에 파는 것이 전부입니다.
매월 25만원의 할부금을 36개월동안 내야 합니다.
솔직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렇게 질러버렸습니다.
이제 수요일이면 차가 올 것 같은데 설레는 마음으로 차가 오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집니다.
아, 결국 나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구나...
새 것을 산다는 것에 이렇게 설레고 있으니.
물건을 인터넷으로 주문해놓고 택배를 기다리던 그 설레임이 작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가, 이번 설레임이 무척 심기에 거슬립니다. 하긴 마찬가지인데 이제서야 자본주의 안에 사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니 이율배반이 분명합니다.
지구환경이 숨가빠하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더 쓰지 못하고 버리고 새 것을 사면거 설레어 하는 내 자신이 솔직이 영 미덥지 않습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나의 한계이지요.
그러고보니 몇 가지 들키기 싫었던 감정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가 차 좀 안 사주나...
교회에서 차 사주면 좋겠다...
이런 쬐끄만 차도 하나 못 사는 내 팔자...
예수 따라 살겠다고 잘난척 해봤자 경차 하나도 못 사는게 네 자신의 모습이다...
평생 이렇게나 살텐데...

그러나 이 모든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고자 합니다.
부끄러우면 부끄러운대로
그리고 설레고 기쁘면 기쁜대로!
이런 감정과 생각들이 연륜을 거치면서 정화되고 정제되고 성숙해지리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고민과 번뇌는 계속 해야겠지요.
경차 한 대 사면서 무슨 놈의 생각이 그렇게 많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 누군가에게 무척 미안하면서도 무척 설렙니다.
우리 가족은 다음주에 새 경차를 타고 휴가를 갑니다.